성천여검 星天女劍 27화

( SF 무협판타지 ) 화염자심火焰自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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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었고,

남산의 바위는 붉은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동방박사 발타자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그림자가 짐승처럼 길게 늘어졌다.


“이번은 네 차례야.”


연화의 눈동자가

천천히 타올랐다.


“불은 다루는 게 아니라—”

발타자르가 속삭였다.

“견디는 거야.”


바람이 멎었다.

찰나.

공간이 갈라지며

불꽃이 피어났다.

그러나 그 불꽃은

바깥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연화의 등 뒤에서,

심장 깊은 곳에서,

숨결 사이에서—

피어났다.


그 불꽃 속에서

또 하나의 연화가 걸어 나왔다.

머리카락은 불꽃처럼 흩날리고,

눈동자는 용암처럼 흐르고 있었다.

붉은 창을 쥔 채.

아름다웠다.

잔혹할 만큼.


“넌 아직도 계산해.”

불꽃 연화가 말했다.


“아군을 생각하고,

거리를 재고,

피해를 줄이려 하지.”


그녀가 창을 한 번 돌렸다.

원호圓弧.

공중에 그려진 불의 선이

꽃잎처럼 흩어졌다.


“난 다 태워버린다.”


쾅—!


첫 충돌.

두 창이 부딪히는 순간,

불꽃이 나선螺旋을 그리며 솟구쳤다.

화룡승천火龍昇天.

연화의 발이 땅을 박차고

허공을 가르며 회전했다.

허리를 낮추고,

어깨를 틀고,

창끝을 밀어 올린다.

동작은 짧고,

숨은 깊다.

그러나—

불꽃 연화의 움직임은

더 부드러웠다.

유연무쌍柔軟無雙.

몸은 물처럼 흐르되,

창은 번개처럼 떨어졌다.

콰앙—!

바위가 녹아내렸다.

“왜 멈추지?”

불꽃 연화가 웃었다.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소모될 운명이었어.”

“그렇다면.”

창끝이 붉게 번뜩였다.

“아름답게 타야지.”

연화의 숨이 흔들렸다.

그녀의 안에서

불꽃이 일렁였다.

분노.

질투.

두려움.

그리고—

해방의 욕망.

한순간.

불꽃이 폭주했다.

천지개벽(天地開闢)처럼

화염이 산을 뒤덮었다.

하늘이 붉게 찢어지고,

바위가 액체처럼 흐르며,

공기가 비명을 질렀다.

연화는 그 한가운데에 섰다.

눈을 감았다.

불꽃은 그녀를 태우지 않았다.

대신—

속삭였다.

“다 태워.”

“아무것도 남기지 마.”


그때.


하연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스쳤다.

“등은 맡겨라.”

청연의 말이 겹쳤다.

“기록은 남는다.”

설안의 침묵이

그 뒤를 받쳤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연화가 눈을 떴다.

불꽃이

조금 낮아졌다.

그녀는 창을 쥐고

한 걸음 내딛었다.

동작은 느렸지만

의지는 단단했다.


금강불괴金剛不壞는 아니어도—

심화불멸心火不滅.

불꽃 연화가 돌진했다.


유성추락流星墜落.

붉은 창이

직선으로 떨어진다.

연화는 비켜서지 않았다.

정면.

창을 낮게 끌어내리며

회전.

반월참半月斬.

불꽃의 궤적이

달처럼 휘어졌다.

두 불꽃이 교차했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그리고—

폭발이 아닌,

흡수.

불꽃이

불꽃을 삼켰다.

불꽃 연화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왜… 꺼지지 않지?”

연화가 답했다.

“난 태우기 위해 불이 아니야.”

“비추기 위해 불이야.”

창이 마지막으로 그려낸 선은

가늘고 길었다.

바람처럼.

꽃잎처럼.

그리고—

불꽃 연화의 형상이

빛으로 흩어졌다.

남은 것은

잔잔한 열기.

연화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숨은 거칠었으나

눈은 맑았다.


발타자르가

조용히 박수를 쳤다.

“아름답네.”

“불을 억누르지 않고—”

“품다니.”

연화는 창을 어깨에 걸쳤다.

바람이 불었다.

이번엔

뜨겁지 않았다.

따뜻했다.

멀리서 하연이 웃었다.

“어땠어?”

연화가 미소 지었다.

“태워버릴 뻔했지.”

잠시 멈추고.

“하지만 남겼어.”



밤하늘에

잔불이 떠올랐다.

작은 불씨들.

누군가를 태우지 않고,

누군가를 밝히는 불.

화염자심火焰自心.

불은

밖에 있지 않았다.

안에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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