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여검 星天女劍 28화

( SF 무협 판타지 ) 광소진심狂笑眞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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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밤공기가 얇아졌다.

불의 잔향이 아직 남아 있었으나

그 열기 위로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발타자르가 물러나자

이번에는 가스파르가 앞으로 나섰다.

눈을 가린 채.

그러나—

모든 것을 보는 자의 태도로.


“웃는 자.”

그가 말했다.

“네 차례다.”

홍몽이 활짝 웃었다.

“아, 나?”

“나 이런 거 제일 싫어하는데.”


딱.

손가락이 튕겨졌다.

세계가 찢어졌다.


홍몽은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사방은 어둠.

머리 위에는

단 하나의 등불.

고독무대孤獨舞臺.


그리고—

객석에는

수천의 그림자.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을 수도 없는

죽을 것 같은 침묵.


박수 소리가 울렸다.

천천히.

비웃듯.

그리고—


무대 뒤에서

또 하나의 홍몽이 걸어 나왔다.

눈동자는 비어 있었고

입꼬리는 찢어질 듯 올라가 있었다.


“넌 아직도

농담으로 버텨.”

그 홍몽이 말했다.

“상처도.”

“두려움도.”

“패배도.”

홍몽이 웃었다.

“그럼 울까?”

그의 발끝이 미묘하게 틀어졌다.

보법步法.

가볍다.

그러나—

숨은 무겁다.


거울 홍몽이 먼저 움직였다.

찰나일격刹那一擊.

허공이 갈라졌다.

홍몽의 뺨에

피가 번졌다.

객석의 그림자들이

일제히 웃었다.

하하하하—


“봐.”

거울 홍몽이 속삭였다.

“넌 약해.”

“그래서 웃지.”

“웃으면 아무도 네 진심을 묻지 않거든.”


홍몽의 웃음이

한 박자 늦어졌다.

눈동자 깊은 곳에서

미세한 금이 갔다.


“그래.”

홍몽이 중얼거렸다.

“난 무섭지.”

“항상 무서웠어.”

그의 손이 떨렸다.

그러나—

웃음은 지우지 않았다.

거울 홍몽이 돌진했다.

연속참격連續斬擊.


칼날이 비처럼 쏟아졌다.

홍몽은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피했다.

비틀었다.

흐트러졌다.

난형난제難兄難弟.


서로 닮았다.

너무 닮았다.

칼날 하나가

홍몽의 어깨를 깊게 베었다.

무대 바닥에

피가 떨어졌다.


객석의 그림자들이

더 크게 웃었다.

“웃어.”

“계속 웃어.”

“그게 네 역할이잖아.”



그 순간.

홍몽의 웃음이

멈췄다.

완전한 정적.

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그는 웃지 않았다.

“그래.”

홍몽이 낮게 말했다.

“난 겁쟁이야.”

“그래도—”

그의 눈동자가

천천히 또렷해졌다.

“도망치지는 않아.”

거울 홍몽이

잠시 멈췄다.

“뭐?”

홍몽이 칼을 들어 올렸다.

이번엔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무심일도無心一刀.

단 한 번.

직선.

망설임 없음.

콰앙—!

충돌.

칼날이 깨졌다.

그러나—

거울 홍몽의 가슴에

균열이 갔다.


“넌 웃음이야.”

홍몽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난 사람이다.”


객석의 그림자들이

흔들렸다.

박수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거울 홍몽의 얼굴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웃지 않으면—”

그가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버틸 수 없어.”


홍몽이 답했다.

“웃지 않아도.”

“버틸 수 있어.”

칼을 버렸다.

주먹을 쥐었다.

정면.

쾅—!

주먹이

거울 홍몽의 얼굴을 꿰뚫었다.

무대가 붕괴했다.

객석이 사라졌다.

등불이 꺼졌다.



남산으로 돌아왔을 때,

홍몽은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연화가 물었다.

“웃음은?”

홍몽이 한숨 섞인 웃음을 지었다.

“필요할 때만.”

가스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가면을 벗기지 않았다.”

“하지만—”

“가면에 지배당하지도 않게 되었군.”


밤하늘이 맑아졌다.

광소진심狂笑眞心.

광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주인이 바뀌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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