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떠나기 : 송악산/이중섭거리/올레시장/하도해변/동문시장
금, 토 비 소식에 살짝 기운이 빠졌지만
아침 일찍 움직이기로 했다
녀석은 요즘 엄마보다 외출 준비가 길다
컬러렌즈도 끼고 머리도 땋고
가벼운 섀도에 틴트로 마무리
다행히 팩트는 쓰지 않으니
나는 적당한 선까지는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편이다
꼬맹이 공주님은 학교에 보내고
바다를 따라 그리 가파르지 않은 언덕길이라 나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날씨가 좋았으면 마라도와 한라산도 볼 수 있었겠지만 비바람이 부는 오늘은
산방산 하나로 만족해야 했다
일찍 일어나서인지
녀석은 도착하자마자 배가 고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밥부터 먹기로 하고 주차장 옆 건물 2층에 있는 해물라면집으로 올라갔다
제주 3개월 차인 친구는 단골이라면서 전복이랑 콩나물 많이 넣어 달라한다
ㅋㅋㅋ어디서든 통하는 아줌마 정신!
덕분에 라면 하나에 전복이 네 개씩 들었다
라면 하나에 만원이라니 비싼 듯했으나
우리는 두 개 시켜 셋이 배부르게 먹었다
따뜻한 국물에 몸을 녹이고 이제 출발~
그런데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친다
"여기선 바람막이랑 등산모자가 필수품이야~"
우산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래도 올라가면서 비도 조금씩 그치고
내려올 때는 제법 날이 갤 듯 환해졌다
아침부터 제주바람과 제대로 만난 녀석은
머리가 날려 엉망이라며 인상을 쓰면서도
바다를 보니 좋은가 보다
나는 햇살 없는 하늘이었지만
녀석의 걸음마다 셔터를 눌러댔다
시작이 나쁘진 않다
커피 생각이 간절했던 우리는
친구가 가보고 싶었다던 바다가 보이는
카페로 향했다
잠시 해가 비쳐 모든 것이 반짝거리고
마치 외국에 온 듯 예쁜 풍광이 우릴 반겼다
제주 해안가엔 이렇게 예쁜 카페와 집들이 가득하다
언젠가 이런 곳에 살고 싶다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커피맛도 좋고
오후 일정은 다시 녀석과 둘이다
중문 색달해변이 예쁘다고 해서
갔는데 하필 공사 중~~^^;;;
카페에서 시간을 많이 지체해서
살짝 마음이 조급해졌다
동쪽 끝에 있는 해변까진
1시간 조금 넘게 걸릴 듯해서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지만
그런대로 다니기에 불편하진 않았다
이중섭거리는
대구 김광석 거리보다는 규모도 작고
볼게 많지는 않았지만
이중섭 생가도 있고
구석구석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다
주말에는 이런저런 행사도 하는 모양이었다
녀석은 작은 소품 가게들을 돌아보다
별 모양 티타늄 귀걸이를 하나 샀다
살짝 시장한데 저녁 먹기는 이르고
흑돼지 꼬치를 줄 서서 먹는 집이 있다는 포스팅이 떠올라 일단 가보기로 했다
이것저것 검색을 하도 많이 했더니
오히려 머릿속이 뒤죽박죽~
그래도 차가 있으니 힘들이지 않고 생각보다 잘 다니고 있다
시장 안 공영주차장은 30분 무료
해지기 전에 해변에 도착하려면
주어진 시간은 30분 정도
미션을 수행하듯 꼬치집을 찾아 걸었다
가는 길에 눈에 들어온 귀여운
사진 찍으면 하나 공짜
재미있는 문구에
6개 3000원 한 봉지 사들고
흑돼지 꼬치 파는 집을 물으니
바로 알려주신다
평일이라 그런지 다행히 줄은 서지 않았다
녀석을 세워두고 나는 한라봉 주스를 사 왔다
한입 물더니 녀석 눈이 동그래진다
"엄마, 이거 완전 맛있는데?"
"다행이네~ 많이 먹어~"
떡이랑 파프리카 버섯까지
녀석이 좋아하는 것들에
소스도 매콤 달달 맛나다
시장 안에는
흑돼지고로케, 흑돼지 만두 등
흑돼지로 만든 간식들이 아주 다양하고
앉아서 먹을 수 있도록 시장 가운데 길을 따라 편리하고 재미있게 꾸며놓았다
짧은 시장 구경을 마치고 동쪽으로 출발
우리 목적지는 하도 해변이다
녀석은 어제 책에서 본 행안리 바닷가 마을도 가보고 싶어 했지만 해가 빨리 지기 때문에 한 곳만 선택해야 했다
한 시간 남짓 달리면서
서울서 가져온 유에스비로
음악을 듣는다
다니면서 먹으라고 친구가 손에 들려준
가는 길에 아무데나 차를 세우고
녀석의 요구대로 사진도 찍었다
파파라치 맘에겐 더없이 감사한 순간이다
녀석은 여행 내내 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하루 종일 친구들에게 전송한다
서로 톡으로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
가끔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지만
여행 온 너그러움으로
디지털 세대 녀석들의 문화려니 슬쩍 받아들여 본다
날도 살짝 어두워져
마치 무인도에 온듯한 착각이 들만큼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해가 없는데도 제주바다는 우리에게 예쁜 바다색을 보여줬다
녀석은 망설임 없이 운동화를 벗고 발을 담근다
낮에 도착했으면 풍덩 들어갈 기세다
카메라 배터리도 아슬아슬하고
해가지기 전에 녀석의 모습을 담으려고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렌터카 반납 시간은 8시
공항 근처까지 6시 반 정도로 예상
이번엔 녀석이 라디오 주파수를 맞춘다
제주는 북쪽과 남쪽이 주파수가 다르다
네시 김창렬의 올드스쿨이 끝나고
박소현의 러브게임 시간인데
낯선 남자목소리가 들려온다
제주 지역방송 아나운서인 듯
생방송으로 신청곡 보내라는 멘트에
녀석이 폰을 든다
"보내려고?"
"응~ 근데 신청곡만 달랑 보내면 안 되겠지?"
"안 되겠지~"
"머라고 보낼까?"
"엄마랑 둘이서 제주 한 바퀴 도는 중이라 그래 바~"
보내 놓고 한참 신나게 달리는데
진짜로 사연이 소개됐다
좋은 추억 만들고 서울 가서도 방송 들어달라는 멘트와 함께
신청곡 버스커버스커 '처음에 사랑이란 게'가 흘러나온다
차를 반납하고 저녁을 먹으려면 공항에서 해결해야 할 것 같아서 녀석에게 혹시 저녁으로 회를 먹고 싶냐고 물으니 좋다고 한다
출발 전날 지인이 추천해준 곳 중에
회가 싸다고 한 게 기억나서
검색하니 공항에서 멀지 않았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금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참을 안으로 들어가서야 회센터가 보였다
다른 가게들은 한산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광어를 주문했다
녀석이 원래 광어만 좋아하기도 하지만
주문받는 직원들이 지금 광어가 철이라고 얘기한다
광어 1kg 25000원(상차림 1인 3000원)
둘이 먹기 양이 푸짐한 편이었다
시간도 좀 부족하고 해서
매운탕은 포기하고 회덮밥 하나를 시켰다
살이 통통한 광어회를 녀석은 맛있다며 열심히도 먹는다
주차비 500원을 내고
렌터카를 반납하러 가는데
주유소가 안 보인다
출발할때 6칸 중에 4칸이 비었다
사장님한테 전화하니 괜찮으니 그냥 오란다
8시 5분 전에 도착!!!
눈금 한 칸에 7000원씩 기름값 28000원을 계산하고 무사히 반납 완료~
공항까지 직원 차로 데려다준다
친구 집으로 가는 버스는
8시 49분 출발이라 30분 정도 여유가 생겼다
녀석은 감귤초콜릿을 사달라고 조르더니
기다리는 동안 반을 까먹었다
755번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꼬맹이 공주님이 기다린 듯 반긴다
씻고 나와서 우리는 넷이 나란히 앉아
집에서 가져온 스마트빔으로 영화를 봤다
친구가 팝콘도 튀기고 오징어도 굽고
맥주 한 캔 앞에 놓으니 심야 영화관이 따로 없다
감사한 하루가 지나고
녀석과 나는 한 침대 위에 누워 잠을 청한다
내일은 친구랑 다시 애월 쪽으로 가보기로 결정~
어느새 단꿀같은 여행이 하루 남았다
글, 사진: kossam & daye
버스커버스커ㅡ처음에 사랑이란 게[출처: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