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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May 09. 2017

[초보 고딩엄마의 분리불안 극뽁일기 06]

엄마, 고마워요

2017년 4월 9일 월요일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는 일은

한 살 때나 열일곱 살 때나

마음 쓰이긴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지난가을 남동생의 늦결혼으로

겨우 자유를 찾은 엄마에게

몇 달 후 다시 녀석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라

나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통학은 시간이 너무 길고

자취는 허락할 수 없었고

11월 서공예 합격 발표부터 두 달간

그렇게 녀석과 나의 맘고생이 계속되었다




천안 이사를 결정한 것은

오로지 내 마음이 원해서였다

처음으로 아이도 가족도 다 배제하고

나  자신만을 위한 결정이 얼마만인지

이래도 되는 건지 두렵기도 했지만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을 잠시 외면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서공예 합격 후, 서울에 남고 싶었던 녀석은

결국 외할머니께 편지를 썼고

가족회의 끝에

엄마는 녀석과의 동거를 결심하셨다


워낙에 궁합이 잘 맞는 두 사람이기에

큰 걱정은 안 되었지만

가족들은 녀석을 중간에 두고

나와 부딪힐 일을 걱정했다

엄마와 나는 늘 평행선이다

싸우고 서로 걱정하고

그것이 우리 모녀의 오래된 사랑방식이다

엄마가 혈압과 함께 여기저기 아프신 뒤로

가족들은 늘 노심초사다

나는 엄마도 크게 아프시지 않고

녀석도 편안하게 학교 다니고

무사히 3년이 지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엄마는 녀석이 아기였을 때

녀석을 봐주실 때면

모든 일을 올 스톱 한 채

녀석에게만 집중했다

온 집안을 어지르며 같이 놀고

정성스레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같이 자고 같이 씻고

내가 엄마지만 나는 절대 그러지 못했던 것같다

그래서 녀석과 엄마의 유대감은

어쩌면 그 이상의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 예전 어느 날,

잠시 질투심과 위기감을 느꼈던 그 순간처럼

엄마는 그런 할머니였다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해도

워낙 꼼꼼하고 예민한 엄마는

녀석의 양말, 속옷 손빨래부터 교복 손질까지 신경을 쓰신다

1학기엔 저녁 급식을 신청 안 한다고 해서

저녁도 챙겨 먹이고

아침저녁으로는 지하철역까지 픽업도 하신다


녀석이 숙제를 하다 잠이 드니

덜렁이 녀석의 지갑을 열어보고

만 원짜리 한 장을 넣으신다


"용돈 따로 주는데 뭘 그리 챙겨?"

"얼마나  이쁜지 몰라. 아침에도 잘 일어나고

말도 잘 들어. 잠이 부족해서 걱정이다."

엄마는 동문서답이다


까칠한 녀석이 외할머니한테는 좀 유순하다 해도

어찌 예쁘기만 할까

어찌 힘든 일이 없을까

떨어져 지내는 딸 마음 헤아려

아무 내색 안 하시는 거지

녀석을 맡기고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는

못난 딸이다




어느 날, 학교 앞 자취하는 친구들이 많은 터라

같이 공부하고 자고 가면 안되냐는 전화에

엄마는 불같이 화를 내고는

기어이 녀석을 데리러 가셨다

내가 말했으면 절대 듣지 않았을 녀석이었다


그랜맘(녀석이 부르는 애칭)이 너무 챙겨줘서

미안하고 걱정인 녀석은 나를 만나면 하소연을 한다

"손빨래는 내가 한다고 하지 말라는데 자꾸 하잖아!"

"그랜맘이 하기 전에 네가 먼저 해버려 그럼~~^^"

투덜투덜 심술이 났지만

복에 겨운 녀석이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학교를 데려다주고

아침마다 다리미로 청바지 주름까지 잡아주던 엄마가 생각났다

내 고등학교 동창들은 지금도 엄마가 싸준 도시락 얘기를 한다


이제 녀석에게도 그리 해주시겠지

생각하니

그 시절이 아득히 그리워진다


녀석도 엄마도 나가고

혼자 남아 집을 둘러보니

벽마다 온통 녀석의 사진들이 가득하다

16년 동안 그랜맘과 할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으로 자란 녀석

외삼촌이 결혼을 했으니

곧 동생이 생기면

그 자리를 내주게 되겠지만

이 감사함을 녀석도 알겠지


엄마가 있어 정말 다행이다


글ᆞ사진: kos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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