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그리고 기다림
그 어느 해보다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며 달려온 2017년이 어느새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버티고 견디는 것 밖에는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여름보다 뜨거운 낮과 겨울보다 추웠던 밤을 보낸 이 시간들을
또다시 나는 먼 길을 걷다 걷다 돌아보게 되겠지
조금은 다르겠지만
녀석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을 거라 생각되니
가슴이 찌르르 아파왔다
녀석의 방학 일정에 영화 촬영 스케줄이 살인적으로 잡혀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랑 남해 안 갈래?"
"거긴 왜?"
"네가 전에 상주해수욕장 다시 가고 싶다 했잖아"
"응~ 그랬지"
"아저씨랑 갈 건데 괜찮으면 같이 가자"
아주 잠시 생각하던 녀석이 대답했다
"갈래"
"그럼 학교에 얘기해야겠다. 하루는 빠지고 가야 해"
"응~ 근데 아저씨한테도 물어봐야지"
"아저씨는 좋다고 할텐데 머"
"그래도 물어봐.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 그래.
속으로는 싫을지도 모르잖아.
나도 엄마랑 둘이 가는 게 더 좋은데
아저씨도 아마 그럴걸?
내가 가면 돈도 더 많이 들고"
"그래 물어볼게"
속이 꽉 찬 소리를 하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느새 이렇게 컸나
아팠던 상처에 얼마나 큰 딱지가 앉아서 저런 소리를 하나
코끝이 찡해왔다
몇 년 전 일본 여행 전의 녀석과는 분명 다르다
왜 셋이 가야 하냐며 정색을 하고 목소리 높여 따지던 녀석이었다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일본이었음에도
녀석은 그냥 엄마랑 아저씨랑 둘이서 가라며
심통을 부리며 내 속을 쓰리게 했다
내 욕심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알면서도 꼭 같이 가겠다는 결심으로 결국 녀석을 설득했다
한참을 싸우다가 나는 녀석의 속마음을 알아버렸다
엄마의 사랑을 나눠갖기 싫었던 것이었다
혹시나 엄마와 아저씨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낄까 겁이 났던 것이었다
나는 서운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언제 어디서든 늘 엄마한테는 녀석이 최우선이라고 말해주고는 둘이서 자유여행 가기에 엄마는 아직 조금 무섭다고 얘기하니
녀석도 이내 눈물 그렁한 얼굴로 받아들였다
물론 녀석과의 도쿄 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힘들면 힘든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대로
녀석과 온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것으로
감사한 시간이었고
브런치엔 동행한 것조차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담아준 그림 같은 사진들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아직도 녀석을 두고 혼자 즐기지 못하는
분리불안 엄마라서 그렇다고 쳐도
나는 그냥 이런 내가 좋다
억지로 노력해서 극복해 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언젠가 자연스럽게 그리 될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새 녀석이 생각도 마음도 자라서
엄마와 아저씨를 받아들여준 것처럼 말이다
그 마음에 용기를 얻어
브런치 3년 만에 처음으로 조심스레 용기 내어본다
싱글맘이라는 것을 오픈할 때는
오히려 당당했는데
싱글맘의 사랑이야기에는 왜 스스로 당당하지 못했는지 새삼 그 사람에게 미안해진다
"다예가 같이 가도 되냐고 물어보래요"
"나야 좋지~"
망설임 없는 대답이다
늘 묵묵히 우리 모녀에게 그늘이 되어준 사람
무너지지 않게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
가끔씩 말도 안 되게 철딱서니 없는 나에게 늘 관대한 사람
세상 누구보다 예쁜 모습으로 녀석과 나를 담아내는 눈을 가진 사람
몇 시간 후면
마지막 날까지 열심히 고된 밤을 지새운 우리는
더운 바람을 가슴가득 시원하게 맞으며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글ᆞkossam
사진 & 편집ᆞ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