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은 과학이다'
몇몇 물의를 빚은 연예인을 두고 어느 댓글창에 달린 타이틀이다.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왜 그들은 그렇게 많은 재물과 부동산에 열을 올릴까? 그것이 왜 편법과 지하세계의 음행을 저질러서라도 쌓고 싶은 부의 축적일까? 욕심이 과하고 교만하면 그것이 곧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이라고 믿었다면, 그 사람에게 더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마흔이 넘으면 촉이 더욱 발달한다. 어쩔 땐 내가 신끼 있나 싶을 정도로 뭔가를 잘 감지해서 소름 끼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연륜 탓인가, 아니면 나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나, 뭐 등등 영양가 없는 공상에 빠질 때도 있지만 의미 없다.
모든 만물이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 특유의 에너지가 있을 뿐이다. 그 에너지가 좋게 다가올 때도 있고 거부감이 들 때도 있고 가깝게 지내지 말라는 신호로 올 때도 있다. 사람을 가리고 따지는 문제와는 좀 다른 문제다. 나와 주파수가 잘 맞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다.
초등 고학년만 돼도 가면 쓰고 사람을 대하는 자기만의 방식이 생기기 때문에 누군가가 싫어도, 잘 보여야 할 때나 상하관계라고 생각될 때 거짓 미소를 지을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 거짓 미소조차도 마흔이 넘으니 분별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진실되고 진정성 있고 겸손한 사람에게 더욱 끌리는 것이다. 가식을 빨리 알아채기 때문에...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것이다. 나이가 꼭 성숙도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험이 쌓여서인지, 개인적인 촉이 강해져서인지 모르지만 감히 말하건대 최소한 진실되고 순수한 사람은 가려낼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고 자부한다.
껍데기가 완벽하고 흠잡을 데 없는 인기인인데 왠지 호감이 가지 않는다면, 한 발짝 물러서길 권유하고 싶다. 20대 치기 어린 사랑을 하던 시절에는 그 구분이 불가능했다. 자신을 갉아먹고 뭔가 눈물을 쏟고 속 쓰린 날들이 지속돼야 그게 사랑인 줄 알았다.
사랑의 감정이 그런 게 아니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사랑은 평화롭고 온유하게 서로를 감싼다. 등을 쓸어주면서 허그할 수 있는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서로 격렬하게 싸우고 감시하고 욕지거리하다가 다시 격렬하게 서로의 몸을 탐닉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불장난이다.
사랑의 정의를 감히 내가 내리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