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토요일

잊힌(?) 토요일

by 샬롯

나이가 들면 교만했던 인간이 겸손해질까? 과연 그럴까?

자신감이 떨어지고 기가 죽는 상태와는 뭔가 다른...

대자연 앞에 겸허해지고 내 뜻대로, 노력만큼 다 잘될 거라는 치기에 가까운 그런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된다. 물론 다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어느 신을 믿든, 신앙을 갖게 되면 고개 숙이고 '기도'라는 행위를 하게 된다.

'회개'가 먼저라고 했다. 뭔가를 바라지 말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어온 모든 죄를 속죄하면서 용서를 바라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감동이 몰려왔다. 수긍이 갔다. 종교는 원래 수긍이 가는 게 시작은 아닐 텐데...

어찌 됐든 나의 감화는 여기까지였다.


종교 얘기는 언제나 어렵다. 코 시국의 시발점에서 누구에게나 비난받았던 그 종교마저 말 꺼내기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교양수업에서 배웠던 종교학 시간에 세계 유수 대학의 종교학자들이 우리나라 종교를 연구하러 온다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이렇게 다양한 종교가 퍼져 있는데도 심한 갈등과 반목이 없는 나라로 유명하단다. 그 말도 코 시국 훨씬 전의 일이다.


조카가 3살 때부터 쯤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중학생이 되었으니 벌써 10여 년...

여동생은 나를 그 교회로 이끌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집밥 해준다며 불러놓고 식탁에 자꾸 성경과 노트를 펼쳐 놨다.


그 후 몇 년간 이어졌고 한 달에 한두 번 갔다. 아마 동생도 알 것이다. 조카들을 보면 좋아 죽는 내가 조카 보러 가는 구실이라는 것을...


"헌금을 예배 날 몇 번이나 해?"

내 질문은 묵살되기 일쑤고 교회만 가면 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이렇게 큰 교회는 목사님이 저 꼭대기층에 사시는 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질문 좀 하지 마!"


'질문이 좀 그렇긴 하지...'


성경을 선별해서 따로 공부했다.

"난 시편이 좋은데..."

"그냥 하라는 대로 따라와! 아무것도 모르면서..."


영어원문 성경에 하나님은 복수로 표현되었다면서 나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질문할 수 없었다.

'그래, 그냥 듣기만 하자, 귀찮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노래 제목이 떠올랐다.

'god is a woman'


어쨌든 헌금봉투에 항상 천 원을 구겨 넣으면 동생은 천 원짜리 믿음이라며 농을 치기도 했다.

"몇 년을 다녀도 언니는 믿음의 성장이 없네?"

웃어넘겼다. 예배 날인 토요일은 예배 후에 조카들과 놀기 바빴다. 그게 나의 즐거움이었다.


항상 야무지고 똑똑하단 소리를 들으면서 성장해온 동생은 경제관념도 투철해서 돈을 잘 모았다. "언니는 돈 관리 못하니까 나한테 맡겨. 그래야 안 쓰지... "

바로 수긍했다.


코 시국에 교회를 못가도 토요일마다 부모님 집에 모였다. 난 집밥을 먹는 게 첫 번째 목적이고 조카들을 보는 게 두 번째 목적... 예배는...


이사를 급하게 결정하게 되면서 5년 치 통장정리를 했다. 동생에게 보낸 돈이 5년 동안 2천만 원가량 되었다. 동생에게 자료를 보내주고 통화하다 뒷목이 당겼다.

"이걸 내가 다 썼겠어? 교회에 헌금도 하고..."

"뭐라고?..."


그 일이 일어난 게 작년 8월쯤이었으니까, 벌써 6개월이 지났다. 그 이후로 난 동생과 조카들 연락처를 모두 차단시켰다. 화는 한 달쯤 후에 가라앉긴 했는데 동생을 언제 다시 보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른다.


토요일 예배 보는 교회, 아리아나 그란데의 그 노래 제목이 떠오르는 교회, 교회에 가지 않아도 계좌로 헌금을 보내는 교회...


야무지다고 어려서부터 평가받던 동생은 그 교회에 다니고, 어려서부터 어리바리하다고 평가받던 나는 동생에게 돈을 맡겼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결론이 안 나는 글쓰기... 열린 결말이어서가 아니라 쓰다 보니 더 이상 안 써도 될 것만 같다.




<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

~ 찰리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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