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을 것 같은 이야기.
장강명/은행나무/12000원
오랜만에 읽는 소설. 그간 이론서나 미디어와 관련한 책 위주로 읽었다. 이 소설은 '휴식'이라 생각하며 꺼내들었다. 그러나 휴식이 아니었다. 뭔가 속이 꽉 막힌 느낌이랄까.
이 소설의 모티프는 국정원 댓글여론 조작 의혹사건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댓글을 통해 조작할 수 있다는 현실 속 의혹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소설은 더욱 현실을 그려냈고. 실제로 팀-알렙처럼 인터넷 바이럴을 유도하는 업체가 있다고하니 리얼함은 배가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입맛이 그리 좋진 않는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갈등들이 마치 이들의 수작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특성상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선동을 한다면 우리도 모르는 새에 '악의'로 나아갈지 모르게됐다. 심지어 기자까지 속이고 인생을 파멸로 이끌 수 있을 정도라면.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는 너무 쉽게 감정적이 되는건 아닌지.
이들이 말하는 방법은 작가의 상상이다. 그러나 현실이다. 누군가 이 방법을 가지고 커뮤니티를 붕괴시킨다면 당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현실에서는 자정작용이 발생하겠지만 이 소설이 보여주는 방법은 제대로 먹힌다면 커뮤니티 자체를 괴멸시킬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것과 비슷한 경우를 자주 마주친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문제, 한 개인에 대한 조롱, 젠더를 비롯한 각종 현안에 대한 갈등 등등. 특히나 우리가 스스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우리 내부에서 쉽게 한다. '줌마카페'에서 이뤄지던 조리돌림이 대표적. 그들은 스스로를 '진보'적이라 일컬으며 정의롭다하지만 그들이 내부에서 벌이는 짓은 그리 정의롭지 못하다. 장강명은 그 폭력성을 꼬집어 보여준다.
씁쓸한 점은 기자가 정의를 실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도 '악의'에 희생된 사람일 뿐이다. 팩트체크보다는 제보자의 말을 쉽게 믿은 점. 그 자신도 '국정원이라면 그럴 것이다.'라며 확신을 가지고 근거를 붙여나갔던 점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날아가게 만들었다. 작가는 어쩌면 제보라면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과 맞다면 쉽게 믿어버리는 모습을 그려내고 싶어하진 않았을까 싶다. 커뮤니티가 그런 것 처럼 기자도 그럴 수 있다고. 내가 경계해야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책은 현실적으로 끝난다. 누구도 이기지 않는다. 그저 '악의'를 가진 집단만이 계속 움직일뿐. 그들은 '풀살롱'에서 질펀하게 놀며 회의를 한다. 가장 추악한 장소에서 추악한 일을 하며 추악한 짓을 즐기는 '본부장', '팀장', '삼궁'. 힘있는 자는 '팀-알렙'을 소모품으로 사용한다. 본부장에게 있어 '삼궁'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하다. 몇 년 더 살려둘 가치가 있는 소모품. 결국 이런 일은 거창한 '대의'가 없는 특정 집단을 위한 사익이란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제주 4.3평화문학상을 수상한 것도 이 때문 아닐까. 폭력성이라는 점을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사태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이런 폭력성이 가져오는 무서움을 알리고 이에 대한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 비현실적인 소설이 더 현실로 다가온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