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133일 차

스테이크를 먹었다. 익숙한 길을 지났다.

by 백윤호

가장 여유로운 월요일이다. 일도 가장 적고 하기 편한 날. 크게 문제될 것이 없으면 온전히 내 시간이 많은 날이다.

저녁은 전쟁이었다. 친구는 애인 덕분에 전쟁같은 날을 보내고 있었다. 같이 사는 나는 참전관으로 그들의 전쟁을 듣고 있었고. 그들은 아니 친구는 취한 그녀를 데리러 갔고 케어를 해줬다. 덕분에 내 잠은 그들의 전쟁과 함께 사그라들었지.

4시간 남짓 자고 일을 간다. 군것질을 확 줄였다. 먹으면 힘은 나지만 몸은 그렇게 좋아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고민거리나 집중해야 할 일이 있으면 더욱 그러하다. 최근의 고민은 집. 확실하진 않지만 한 번 더 이사를 해야할지 모른다. 막연한 고민이 불러오는 답답함은 몸만 더 피곤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어디다가 해소할 수도 없는 일. 그저 잘 달래는 수 밖에.

이런 날에는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닌다. 맛 좋은 음식이 주는 달콤함은 잠깐이나마 마음을 달래주니까. 예전부터 노렸던 스테이크를 먹으러 간다. 파인인. 파라마타 로드 근처에 있는 펍. 이 길을 지나던 친구가 적극 추천한 곳.

"꽤 많이 줘. 가봐."

집에서 걸어 나왔다. 차를 끌고 나오지 않았다. 운전하기도 피곤하고 레드펀에 있는 카페를 가기로 했기 때문. 20분을 걸으니 보이는 파인인. 입구를 더듬더듬 찾는다. 주차장을 지나 안으로 들어선다. 주방은 오픈 준비로 바쁘다. 첫 손님이 됐다. 럼 스테이크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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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에 칩스, 샐러드까지. 11.8불 치곤 꽤 많은 양. 폭풍흡입을 한다. 이 펍은 음침한 분위기였다. 곳곳에 보이는 중국어와 한국어를 봐선 중국인과 한국인이 자주 찾아오는 모양. 내 뒤로 온 손님도 한국말을 하는 사람일 정도 였으니. 약간 질긴감은 있었지만 그럭저럭 맛도 괜찮다. 꽤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

카페로 오면서 익숙한 길을 지났다. 밤마다 지나가는 길. 그떄는 '지나가는'것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주위를 바라본다. 사람들이 보이고 간판이 보인다. 그들의 얼굴이 보이고 행동이 보이고 생존이 보였다. 이 풍경이 주는 낯섬이 색다르다. 굳이 레드펀까지 온 보람이 있다. 지루한 하루에 낯선 경험.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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