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를 갔다.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사람은 수두룩했다. 그리고 민낯을 볼 수 있었다.

by 백윤호

토요일. 집회를 갔다. 하루종일 걷고 걸었다. 집회는 생애 두 번째다.

09년도 난 1학년이었다. 학보를 할 당시, 전대기련(전국대학생기자연합)에서 매해 하던 행사였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집회. 당연히 참여했다. 같이 걸었다. 나에게 있어 집회는 두려운 대상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두발자유화 서명운동으로 학교에서 한 번 '찍혔던' 적이 있었다. 그 뒤로는 집회와 관련된 행위에 대해서 흠칫할 수 밖에. 언제라도 건수만 잡힌다면 날 칠 기세였다. 08년도 촛불집회도 나가기 두려웠다. 우리의 권리는 생각보다 먼 곳에 있다. 그리고 처음으로 권리를 누렸던 날이다.

비가 살살 내리는 날씨. 옷도 거리도 젖었다. 젖은 거리에서 우비를 겨우 뒤집어 쓴 우리가 있었다. 광주 경찰들은 집회라인을 만들어줬다. 뭔지도 모르는 구호를 외친다. 함께 걷는다. 연례행사같은 집회였지만 재밌었다. 같은 또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 매력적이다. 우린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뀔지 어쩔지는 몰랐다. 그저 외쳐야하기 때문에 외쳤다. 빗나가는 주제들도 몇몇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가 그 소리를 안내면 그만. 그 자리에 최소한 큰 대의는 함께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번 집회도 그러했다. 가장 큰 집회. 벼르고 벼렸다. 지난 민중총궐기 때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100만 인파. 말그대로였다. 2시 30분부터 시작한 대학생 대오는 광화문에 진입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미어터졌다. 심지어 8시가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광화문 중심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중심으로 가려고 하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다며. 뭔가 전하고 싶다며. 사람들은 그렇게 광장에 모였다.

지난 민중총궐기 때와는 달리 의제는 하나였다. '박근혜 하야.' 여러 개로 분산된 메시지가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각자가 생각이 다르지만 '박근혜 하야'라는 공통의 목소리를 내기위해 있었다.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약간의 다름이라도 이해하고 넘어가게 된다. 공통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이자리에 있으니까. 그렇게 큰 목소리 속에 작은 목소리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신기한 건 각 대오를 지날 때 마다 시대가 보인다는 점이다. 대학생 대오에서 가장 많이 울려퍼진 '다시만난세계' 민중가요라고 불리는 노래가락 대신 '촛불하나'가 자리를 메꿨다. 동문회 대오를 들어가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민중가요들이 들린다. 노조로 넘어가니 더 강성한 목소리들이 공간을 메운다. 각자의 시간 속에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는 목소리가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혼자가는 집회는 뻘줌하다. 처음에는 어떻게 끼어들어가야할지 몰랐다. 각자의 학교 깃발 아래에서 전진을 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전문시위꾼' 파티에 껴들었다. 전문시위꾼은 달랐다. 도로 위에서 케이크를 먹는 위용(...)을 선보였다. 뭐랄까. 이런 느낌도 들었다. 아재와 대학생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것. 눈치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아재화'인지 '외국물' 덕택인지는 잘... 여하튼 재밌는 건 맞다.

시위는 시간이 흐를 수록 각자의 노랫가락으로 목소리를 채우고 있었다. 누군가는 연극을, 노래를, 춤을 춘다. 그 속에 담긴 목소리는 뚜렷하다. '하야' 눈빛이 슬쩍 스쳐가도 서로가 웃으며 눈인사를 보낸다. 곳곳에 사진을 찍는 사람들, 외국인들. 집회다. 이건 집회. 그리고 축제다. 위정자를 끌어내리기 위한 축제.

그러나 가득찬 환희만큼 각자의 민낯도 고스란히 보였다. 각종 혐오들. 술에 잔뜩 취한 사람들. 어떻게든 뚫자며 밀어내는 사람들. 100만이 모였다는 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라고 봤다. 다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 하는 걸 보면... 뭐랄까. 왜저러는지 모르겠다고 할까. 뭐를 하든 자기가 받기 싫은 짓은 하지 말아야한다는 것 정도는 숙지했으면 좋겠다.

집회는 흐른다. 평화니 폭력이니 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큰 덩어리 없이 한 부분을 키워보는 건 별 의미 없다고 본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절제'를 넘는다면 그 다음은 더 강력한 '수단'을 사용할 것 같다. 나조차도 그렇다. 이렇게 해서 안된다면 더 강력하게. 이것도 안된다면 더 강력하게. 최소한 공화국의 시민이 가진 권리를 전부 누려보려고 한다. 그대들은 나의 두려움을 자극했던 '학생부장'처럼 눈을 둥그렇게 뜨며 부라릴지 모른다.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더 성장했고 권리를 누리려고 한다. 최소한 의무라는 건 다 한 것 같다. 이제 내가 권리를 찾아올 때다.

2016년에 공화국을 찾기 위해 역사를 써내려가야 하다니. 두근거리면서도 어이없는 일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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