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군인 백윤호는 그 날 작업을 하고 있었다. 5톤 덤프트럭을 몰고 가평 어딘가로 향했다. 포 사격 훈련장. 정비가 필요했다. 그 때 같이 갔던 사람은 내 후임과 포크레인 조종수.
2. 포크레인 조종수는 연신 투덜거렸다.
"원래 이정도 작업하면 먹을거라도 줘야 되는데."
그는 전라도에서 온 임 모씨 였다. 조정 운동을 했던 친구. 나이도 나와 같았다. 소위 짬은 나보다 아래였지만 타 중대 사람이었다. 우린 친구 먹었다. 그는 이곳 부대 행정보급관이 짠돌이라고 흉을 봤다.
3. 투덜거리는 그를 다독이고 작업에 돌입했다. 작업은 간단했다. 그가 포크레인으로 퍼주는 흙을 가지고 모처에 가서 버리는 일. 내 선탑자는 하사. 그는 연신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오전 작업을 거의 끝낼 무렵 그가 말했다.
"배가 침몰했다는데?"
나에게 세월호는 그렇게 다가왔다.
4. "구했답니까?"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날 아는 사람들은 내가 그렇게 '감정동요'가 심한 편이 아닌걸 알 수 있다. 이성적일 때는 그렇게 냉정하다. 사건을 담담하게 말할 수 있다는게 내 장점이자 단점. 여하튼 난 담담히 물었다.
"응. 다 구했다는데. 전원구조."
별 일이 아니었다. 그때까진. 그저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는 추신과 함께 작업은 끝.
5. 오후작업까지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일과 시간 이후로 돌아오는게 부지기수다. 생활관이 텅 비어있어야하지만 동기들은 TV앞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뭐야?"
TV에는 세월호가 비추고 있었다.
"구했다며?"
아뿔싸. 오보란다. 점점 가라앉는 저 배에 아직 아이들이 남아있단다. 그때부터 우리는 세월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6. "구해야되는데."
모두가 한 마음이다. 배는 점점 가라앉고 있지만 생존자는 나오지 않았다. 사망자와 생존자 숫자가 화면 한 구석을 차지한다. 우리는 숫자의 변화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사망자 숫자의 변화만 있을뿐. 생존자는 더 이상 늘지 않았다.
7. 그 때부터 대략 1주일 간은 뉴스가 인기였다. 매일 점심, 저녁마다 뉴스를 확인했다. 혹시나 생존자가 없는지. 새로운 소식은 없는지. 방법은 없는지. 군대에서 동기들과 함께 본 처음이자 마지막 뉴스인 것 같다.
"혹시 군 투입되면 우리도 가야되는거 아니냐."
누군가가 말했다. 혹시나 그렇다면 자원하리라. 파견가서 도울 수 있는건 도우리라. 육군이 뭘 도울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혹시 몰랐다. 운전병은 필요할지도. 가서 한 몫 도우리라.
그러나 군은 뒤늦게 투입됐다.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한다던 군은 어디에 있던건가.
8. 세월호 1000일. 우리는 사건이 된 사고를 기억한다. 최선을 다했다면 어쩌면 구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최소한 '사건'이 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1000일이란 시간동안 누군가는 '사고'라며 발악을 하고 누군가는 '진실'을 외치고 있었다. 누군가는 한껏 자신의 그것을 발휘하여 '쿨 내'를 진동했고 우리는 거기서 악취를 맡았다. 우리가 맡겼던 권력은 우리를 위협했다. 보호하라고 의무를 주니 그것이 국민이 아닐줄은 몰랐다.
9. 그리고 그는 지금도 세월호를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군에 있던 나조차도 기억나는 사안이다. 그날 무엇을 했는지 세세한 사실은 틀릴 수 있다. 그러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놀라울 따름이다. 국정최고책임자가. 그것도 1000일간 끊임없이 '진실'을 외치던 유가족들이 있었음에도. 들어야 할 사람이 듣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하다.
10. 이렇게 글로 1000일을 기록한다. 그가 억울해할 순 있다. 그러나 결국은 자신이 초래한 일이지 않나. 오늘 읽었던 문장이 생각난다.
'하늘이 만든 화는 피할 수 있지만 자신이 만든 화는 피할 수 없다.'
그는 결코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