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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윤호 Jun 28. 2017

<폴리아모리 관계 속 주체성과 불안정>

시루가 듣고 후기 쓰다.

 5명의 폴리아모리스트를 만나다.


 ‘비독점적 다자연애’. 폴리아모리스트에 대서는 퀴어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대학교 신입생때부터 얼핏 들어왔던 것 같다. 오직 한 사람에게만 몰두하는 것이 진솔한 사랑이라고 믿어왔고, 그것이 이상적인 것이라고 규범화해온 나에게 있어서 폴리아모리는 다소 부도덕한듯 보이면서도 이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최근 미디어 콘텐츠 등에서 폴리아모리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기인한 호기심과 흥미로움 때문이 아닐까?

 2017년 2월, 비독점적 다자연애자-폴리아모리스트-를 자처하는 A군과 접촉할 기회가 생겼다. 마침 해당 학기에 과제의 주제를 폴리아모리로 설정했었는데 기적처럼 우연히 실제 폴리아모리스트와 만나게 된 것이다. 내 눈앞에 살아있는, 실천하는 폴리아모리스트가 있다는 것에 마냥 신이 나서 급작스럽게 친해지기 시작했고, 대화를 통해 폴리아모리 관계의 실천과 폴리아모리스트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더욱이 A군의 인맥을 통해 4명의 폴리아모리스트를 추가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되면서 폴리아모리 연구의 표본집단도 커졌다.


 실제로 직접 대면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던 5명의 폴리아모리스트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A군  23세 남성

B양 25세 여성

C양 22세 여성

D군 22세 남성

E양 22세 여성


프리랜서로서 일하고 있는 B양을 제외한 4명의 인터뷰이는 서울권 4년제 대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들이었으며, 5명 모두 20대 초중반의 젊은 연령대에 속해있었다. 각 인터뷰에 소요된 시간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였고, 약 25문항 정도의 질문들을 준비하여 반구조적 심층면담을 진행했다.


 폴리아모리, 기존 사랑으로부터의 일탈이기만 할까?


 이번 폴리아모리 심화편 녹음 도중에 안똔은 폴리아모리에 대해 ‘일탈’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폴리아모리는 여타 퀴어 인권운동과 같이 인정투쟁을 위한 사회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며, 이들의 관계 실천이 기존 사회 구조를 전복하지 않다는 지적들을 제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동안 안똔의 지적들을 고민하며 몇 차례나 인터뷰 속기를 다시 읽었다. 분명 인정투쟁을 위한 뚜렷한 기조를 공유하는 조직으로서의 폴리아모리 집단은 현재 한국 사회에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속에서 기존 사랑 규범과는 구분되는 폴리아모리를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이들은 기존 구조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폴리아모리스트는 기존 사랑 규범 및 연애 관계 실천에서 일탈했을 뿐인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폴리아모리를 규범 이탈로만 규정지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관계 실천과 지향성은 기존의 사랑 규범에서 일탈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관계 속에서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내고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노아모리, 좀 이상하지 않아?


 나는 폴리아모리스트 정체화와 폴리아모리 관계 실천 과정 전반을 ‘규범 – 탈규범 – 재규범’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규범’이란 한 개인이 사회화를 통해 습득하게 되는 사랑의 양태와 그 기저에 깔린 가치관이다. ‘사랑’을 하나의 뚜렷한 개념으로써 정의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소위 ‘이상적인 사랑’, ‘정상적인 사랑’이라고 불리는 것은 모노아모리-모노가미의 형태에 기반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C양: “그냥 얘도 좋고, 쟤도 좋고. 굳이 1대 1이어야 하나?라고 자신한테 질문할 때부터 정체성에 균열이 난 것 같아요.”


B양: “사랑이 굳이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감정은 아니겠다라고 처음 생각했어요”


사회의 대다수는 당연히 한 사람을 사랑하는 모노아모리 형태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에 기반하여 사랑이라는 감정을 구축해온다. 폴리아모리스트는 이러한 기존 규범에 대해 균열을 겪으며 과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기존 사랑 관념에 대한 거리두기를 하는 경험을 한다. C양의 인터뷰 답변처럼 ‘굳이 1대 1이어야 하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의구심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기존 사랑 규범을 거부하고 결국 일탈함으로써 <규범 – 탈규범>의 과정을 겪는다. 


 우리, 어느정도 거리를 둬야 해.


기존 사랑 및 연애관계에서 회의감을 느끼고 균열을 겪은 이후 이들은 스스로를 ‘폴리아모리스트’로서 규정짓는다. 스스로를 비독점적 다자연애주의자로 천명하는 것이다. 저번 폴리아모리 후기에서 언급한 것에 덧붙이자면, 폴리아모리 관계 실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도덕적인 축을 꼽자면 ‘상호 주체성’과 ‘비독점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호 주체성에 기반한 비독점성’이 핵심이다.                     


E양: “‘너는 내꺼야’ 같은 말 들으면 그냥 ‘저게 무슨 개소리야’ 난 내꺼고 넌 니꺼니까 신경꺼’”


A군: “애인이 저를 통제하려고 하면 싸울 것 같아요.”


순정만화나 TV드라마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사랑 대사이자, 연인 관계에서 드물지 않게 언급되는 대사인 “너는 내거야.”와 같은 말도 폴리아모리스트에게는 전혀 달콤한 말이 아닌 듯하다. 누군가에게 소유된다는 것, 또한 누군가를 소유한다는 것에 대해 이들은 거부감을 느낀다. 상호 동등한 권리를 가진 평등한 인격체는 또 다른 인격체를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가치관인 것이다. 비독점적 다자연애자로 스스로를 규정한 후에 이들의 연애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규범은 바로 이것에 기초하여 생성된다. 따라서 폴리아모리 관계의 성립과 지속에서 ‘합의’가 중시되는 것이다. 상호 주체성을 해치지 않기 위한, 각자가 독립된 개인으로 있음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관계의 장치가 합의이다. 이들은 상호 합의에 의거하여 자신의 감정을 통제받지 않고, 사랑하는 이의 감정을 통제하지 않는다. 이것이 상호 주체성에 기반한 비독점적 다자연애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자유롭고 힙하지만은 않아요.


독립된 개인인 연인이 각자 서로의 다양한 연애 감정에 솔직할 수 있고, 이를 상호 인정해준다는 지점에서 폴리아모리 관계는 일견 자유로운 사랑의 형태로 평가받기도 하며, 더 나아가 기존 연애 관계의 문제점을 극복한 대안적 연애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폴리아모리를 실천하는 이들은 진정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독점적인 사랑에서 벗어난 관계는 긍정적이기만 할까? 나는 인터뷰를 통해 폴리아모리스트들에게서 자신만의 뚜렷한 선 긋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자신의 연인이라고 할지라도-의 간섭을 배제하고 스스로의 감정 소모를 거부하는 모습들을 포착했다. 어쩌면 자신이 온전한 개인으로 있기 위한, 연인이 온전한 개인으로 있도록 하기 위한 폴리아모리 관계는 자유로우면서도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C양: “이 양반이 나한테 뭘 기대하잖아요. ‘거기까지 해줄 수 없어!’라는 사인을 강하게 보내요.”

D군: “그 사람들(전 애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많이 소모해왔기 때문에 부담이긴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그렇게 깎여나가는 게 너무 피로해서 그만 만나게 된 경우가 많긴 하네요.”

여타 사회적인 인간 관계에서도 그러하듯이 연인 관계 또한 상대방과의 교류 속에서 일정부 감정적인 소모가 따르기 마련이다. 오히려 연인관계는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서 이와 같은 감정적 헌신 및 소모가 더욱 두드러지는 관계이기도 하다. 반면 인터뷰 내용에서처럼 폴리아모리스트들은 사랑하는 이에 대해 기꺼이 자신의 자원-시간, 돈, 감정 등-을 투자함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헌신’은 제한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을 고갈시키지 않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범위를 설정하고 그 이상 연인이 요구하는 경우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폴리아모리 관계가 상호 주체성이라는 규범에 충실한 관계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로 인한 필연적인 불안정성을 내포한 관계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상호 독립적인 주체 간의 연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사적 영역을 보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합의를 진행하고 세부적인 관계 상의 규범들을 조율해나가야 한다. 만일 각자의 사적 영역을 합의 없이 침범하는 경우 혹은 합의된 내용을 어기는 경우가 발생하면 해당 관계는 종결되거나 재협상을 해야한다. 예를 들어, 모노아모리 관계에서 일반적으로 연인에게 기대하는 것을 상대방의 합의 없이 그대로 적용한다면 오히려 연인의 주체성을 훼손하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폴리아모리 관계의 규범을 사회 속에서, 외부 미디어 등을 통해서 차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내적으로 상호 합의하에 생성해야하기 떄문에 관계의 실천은 조심스러워야 하고, 관계의 유지와 지속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독점성에 기반한 기존의 사랑 관념(일명 ‘낭만적 사랑’)을 거부하고 이로부터 일탈한 폴리아모리스트들은 결국 스스로가 빚어낸 재규범 하에서 자유롭되 불안정하다.


 마치며


 5명의 폴리아모리스트와 만나면서 그들의 연애 실천과 가치관을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매우 값진 경험이었다. 하지만 분량상으로 후기와 폴리아모리 심화편 녹음에 이 생생함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었던 것이 매우 아쉽게 느껴진다. 혹여나 독자들에게 딱딱하고 현학적인 글로 다가갈까 우려스럽지만 나름의 고민과 분석을 담았고, 녹음에서는 조금이나마 폴리아모리 실천의 세부적 양상을 생생하게 소개하고자 노력했으니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P.S. 

아마도 이번 폴리아모리 심화편에서만큼 안똔과 시루가 의견 차이를 보일만한 주제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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