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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윤호 Feb 27. 2018

조각난 언어들 독서모임

3월 3일, 이광수

3월 3일(토) 오후 2시, 조각난 언어들 독서모임에서는 이광수의 서간체 소설 「어린 벗에게」를 함께 읽는다. 1917년 《청춘》에 발표된 「어린 벗에게」는 꼼꼼히 읽더라도 30분 정도면 독파할 수 있는 짧은 분량의 단편으로, 지금까지 신소설에서 근대 소설로 발전해나가는 도정상에서 드러나는 이광수의 한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평을 자주 들어왔다.

실제로 김동인 이래 많은 논자들이 이광수의 서간체 소설 「어린 벗에게」에 구조적 결함이 있다고 지적해왔음이 사실이다. 긴 분량을 차지하는 계몽적 논설 대목, 개연성을 결격한 우연적 전개 등은 미흡한 신소설 특유의 자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각난 언어들은 지금까지의 국문학 연구사에 있어 비교적 부족해 왔던 퀴어 비평적 접근을 통해 이러한 해석을 전복해보고자 한다. 기존의 해석은 작중 서신의 수신자로 설정된 미지의 "어린 벗"이 지닌 정체의 문제, 그리고 이광수의 자전적 요소를 간과한 오류일 공산이 있다. 이 시선을 급진적으로 전개해본다면, 기실 "결함"이라 지칭되는 「어린 벗에게」의 일그러진 구조는 이광수 본인의 다자연애적, 동성애적 욕망이 은폐되는 과정 속에 발생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강현국은 자신의 논문에서 「어린 벗에게」의 구조가 욕망을 억압하고 은폐하는 꿈을 닮았음을 올바르게 지적하였으나 서신의 수신인, 그리고 김일련의 정체가 당연히 여성일 것이라 무비판적으로 전제하였다. 하나 편지를 쓰고 있는 화자의 "사랑하는 벗"인 수신자가 여성이라는 말은 작중 어느 곳에도 없다. 또한 이광수는 「상해 이일 저일」에서 김일련의 모델이 신철임을 짧게 밝혔다. 「상해 이일 저일」에서는 자신이 아팠을 때 돌봐준 신철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표하는 정도로 그쳤지만, 정작 「어린 벗에게」에서의 간병 묘사는 매우 격정적이며 센슈얼하다. 참고로 신철의 정체는 신형모로, 해방 후 초대 국방장관이다.

이광수는 「사랑인가(愛か)」, 「윤광호」 등에서도 남성간 동성애를 그렸으며, 일본 유학 시절 스스로 다른 남학생과의 동성애적 관계를 경험한 바 있다. 「어린 벗에게」에서 “나는 朝鮮人[조선인]이로소이다. 사랑이란 말은 듣고, 맛은 못본 朝鮮人[조선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는 이광수-화자의 문학 세계는 종국에 조선에 근대/서구라는 시공간이 틈입하는 과정이자, 근대의 사적 영역에 위치한 (남성과의) 자유연애가 처음 실험되는 공간이자, 이것이 「방황」의 “나는 朝鮮[조선]을 唯一[유일]한 愛人[애인]으로 삼아 一生[일생]을 바치기로 作定[작정]하기에 이르지 못하였다.”라는 고뇌와 부딪쳐 고아 이광수가 고대했던 근대 국가로서의 조국, 「민족개조론」을 향하여 종합되어 지양되는 충돌의 장이다.

조지 L. 모스는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에서 남성 호모에로티시티가 근대 내셔널리티의 형성과 결부되는 단면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이광수가 근대 소설의 개척을 향해 나아가며 남성간 동성애를 작품에 등장시켰다는 점은 그렇기에 더욱 의미심장하다. 조각난 언어들 독서모임은 이 지점에서 백 년 전 이광수의 작품을 재발견하며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민족, 근대, 그리고 성애란 무엇이었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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