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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윤호 Mar 08. 2018

독서모임 2주차 안내

조각난 언어들

1. 이효석, 양가적 작가

3월 10일(토) 오후 2시, 조각난 언어들 독서모임에서는 이효석의 중편 소설 「거리의 목가牧歌」를 함께 읽는다. 흔히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로 유명한 이효석은 사실 복잡한 작가이다. 그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그의 복잡함은 예측 불가능한 운동이라기보다는 양 극단을 오가는 진자의 운동이다. 고로 이효석은 양가적인 작가이다.

예컨대 그는 사회주의에 어느 정도 찬동하는 동반자 작가인 동시에, 불 밝힌 쇼윈도가 발하는 페티시즘에서 그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아름다움을 감각했던 작가였다. 이효석 작품론을 쓴 신경득은 이효석이 “언제나 친일과 반일이라는 작두날 위에서 뜀뛰기를 한 셈”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근대의 산문적 현실을 혐오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효석은 영화관의 은막 속에 상영되는 서양의 여배우들, 화려한 백화점, 진과 큐라소를 파는 뒷골목의 “빠아”들을 사랑하였기에 그들을 자신의 도시 소설에 담았지 자연으로 돌아가 시를 쓰며 살지 않았다. 그 자신의 성향이 그러하였듯이, 이효석의 작품들은 도시의 고층 빌딩들 사이로 놓인 위태한 줄을 밟고 걸어가는 곡예사처럼 언제나 리얼리즘과 낭만주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1937년 10월부터 1938년 4월까지 《여성》에 연재된 「거리의 목가」는 이효석의 작품 중 비교적 연구자들의 주목을 덜 받아온 소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부족했던 관심이 곧 이 소설이 주목받을 가치 없는 작품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양가성이라는 뷰파인더를 통해 이 작품을 들여다본다면, 독자는 진동하고 있는 어느 소부르주아 모단뽀이의 상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효석과 도시

“도시의 미로를 방랑하는 외로운 그는 '기분전환을 찾기 위해 도시복합체를 보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방랑하는 목적도 없고 자기만족적이며 오만한 부르주아'이다.”-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이효석이 그리고 있는 1930년대 경성의 풍경은 오늘날의 서울과 큰 차이 없는 근대 도시이다. 사람들은 옥상 정원에서 미니 골프를 치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다. 자동차를 타고 길거리를 다니고, 가수를 뽑기 위한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을 청취한다. 이 시공간에서 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은 구별되지 않는다. 도시의 욕망은 춤춘다.

「인간산문」과 같은 다른 소설에서도 드러나듯이 이효석은 「거리의 목가」에서도 도시의 추악한 거리들을 폭로하지만, 역시나 그의 태도는 진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효석은 도회로부터 온전히 정서적으로 떠날 수 없는 도시인이다. 도시의 불빛은 아름답다. 그리고 이 음습하면서도 휘황찬란한 경성의 가로등 아래로 이효석은 주인공 영옥을 던져넣는다. 때로는 경성에 진절머리를 내면서도 바로 그 경성에서 스타가 되기를 꿈꾸는 영옥의 욕망은 과연 그녀만의 욕망인가, 혹은 다른 누군가의 욕망인가. 현대 서울을 살아가는 우리의 욕망과 영옥의 욕망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도시의 아케이드처럼 연결된다.

3. 이효석과 여/성

「사내녀석들 같이 주제넘고 불측한 동물들이 있을까. 여자를 마치 물건인 양 중간에 세우고 제멋대로들 거래를 하려는 어느 세상이 되면 그 버릇이 고쳐질까.」-이효석, 「거리의 목가」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측면은 영옥이 도시를 욕망하는 근대의 여성이라는 지점이다. 영옥의 꿈을 비집고 들어와 그녀를 가수로 만들어주겠다고 말하는 경성의 남자들은 모두 영옥에게서 애정, 또는 섹스를 원한다. 그들은 상대를 바꿔가며 춤을 추듯 때로는 친절하게 때로는 위협적으로 영옥에게 접근하며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공모한다. 강간을 시도했다가도 반성에 진입하며, 자신의 공범에 역겨움을 느끼고도 또 타인을 용서한다.

이는 비단 등장인물들의 태도일 뿐만 아니라 작가 이효석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는 「豚」, 「분녀」 등에서 강간을 폭력인 동시에 여성이 성에 눈을 뜨는 계기로 설정한다. 마찬가지로 「거리의 목가」에서도 이효석은 자주 인식론적 위치를 교환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성을 반성하다가도 다시금 남성의 한계로 후퇴한다. 영옥과 영옥이 사랑하는 순도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기존 서술을 뒤에서 뒤엎어버리기도 하며,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집단 억압을 폭로하다가도 다시금 정조의 훼절이라는 인식으로 돌아온다. 성을 바라보는 이효석의 시선, 그리고 남성 등장인물들과 심지어 여성 등장인물들의 시선조차 분열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80년 전의 작품인 「거리의 목가」의 문제적 진동과 그리 다를 것 없는 진자 운동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도시와 성의 문제에 많은 작품에서 천착해온 이효석을 오늘날 읽는다는 것은 결국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근대성을 재검토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사실 이효석도 이러한 자신의 모순적 태도에 대하여 이미 변명한 바 있다. 「문학진폭 옹호의 변」에서 “갑이 갑의 입장에서 쓰는 문학을 을이 을의 입장에서 논란할 바 못됨은 을이 을의 입장에서 쓰는 문학을 갑이 갑의 입장에서 논란할 바 못됨과 일반이다.”라고 쓴 것이다. 정녕 그것이 그의 뜻이라면, 결국 마찬가지로 모순되고 분열된 우리는 직접 그의 문학 속으로 들어가 그가 바라보는 세계를 살필 수밖에 없다. 그러함으로써 우리는 이효석의 시적/산문적 경성을 경유하여 현실의 서울로 회귀할 수 있을 것이다.

신청링크: https://goo.gl/forms/xXN1UAEqv0Jk9Jo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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