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치 않은 노동은 칼이 되어 날아온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익지 않은 손놀림으로 롤을 만다. 지적은 계속 된다. 노소 관계없다. 이 주방에서 일을 늦게 하는 사람은 죄인이다. 게다가 일로 남에게 피해 입히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성격아닌가. 스스로 자책도 심해진다.
사수없이 맞이한 일요일은 끔찍하다. 호주에서 들었던 지적보다 오늘 하루 들었던 지적이 더 많은 것 같다. 부족한 테크닉은 칼이 되어 날아온다. 신경쓰며 롤을 마니 시간은 더디다. 3시간 동안 싼 롤이 겨우 40여개. 느리다. 지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날아온다.
호주를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온전히 혼자서 지내는 도전이었다. 내가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모습이 바뀌는지. 단점은 무엇인지. 장점은 어떤지 알고 싶었다. 한국은 나의 장,단점을 가리거나 돋보이게 해주는 사람들이 그득하다. 그러나 뿌리가 불안정하면 나무가 위태하듯 내가 얼마나 발전, 지체, 퇴화 됐는지가 파악되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호주로 온 것이다.(이런 되돌아보기는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범위가 지금처럼 극단적이진 않을 것이다. 그땐 고려해야될 사항이 많을테니.)
극한으로 몰리니 의지하려는 본성이 깨어난다. 그때마다 흠칫 놀란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떠넘기려는 안일함. 경계해야한다. 그러면서도 틈을 놓치지 않고 들어오는 지적질은 머리 끝까지 화를 가득 채운다. 2일. 14일 간 다른 포지션에서 일을 익혔다. 그리고 2일 속성으로 다른 포지션을 수행하게 됐다. 이 생각이 지적을 당할 때 마다 억울함을 불렀다. 그리고 속이 답답해졌다.
뾰족한 시간이 지나고 한숨을 돌렸다. 이를 악 물고 견뎠다. 어차피 핑계로 들릴 이야기다. 죽어도 그렇게 발악하는 것은 싫었다. 도망치는 것보다 맞서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이 굴뚝 같지만 다시 삼킨다. 삼킨 말은 마음의 곳곳을 두드린다. 답답하다.
일이 끝나고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셰어마스터가 태우러 온다고 연락이왔기 때문. 밖에 비가 많이 온단다. 의외의 모습이다. 그런 것 신경쓰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호주에서 승용차는 처음 탔다. 운전석이 오른쪽에 위치해있다. 그곳에서 운전하는 모습은 신기했다. 진행방향도 우리와 반대다. 뒷자석에서 내 나름대로 운전을 한다는 생각으로 손을 휘휘 돌렸다. 사고가 안나면 다행이다.
비가 온다. 정말 많이 온다. 소나기 수준이 아니라 퍼붓는 비다. 답답했던 마음이 비를 보니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다.
"쏴아아아"
호주의 비도 한국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비가 오는 정겨운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익숙해지기 전까진 스트레스를 받아야겠지.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생존에 얽매여 있는 현재는 정말.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이 상황을 벗어나기 전까진 극기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