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28일 차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허허롭게 웃어 넘기기를 시전했다.

by 백윤호

우중충한 날씨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선다. 아침 6시 55분. 내 일터는 5분 거리에 있다. 월요일 아침은 주말의 그것과 다르다. 주말 아침은 조깅을 하거나 축구를 하러 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러나 월요일은 출근의 날이다. 이들도 출근을 위해 몸을 차에 싣는다.

출근 전에 커피를 한 잔한다. 부엌 창문 밖을 보니 가운을 입은 남자가 출근길을 배웅한다. 배웅하는 모습이 익숙하다. 차가 떠난 자리를 하염없이 보던 그는 등을 돌린다. 커피잔을 내려 놓았다. 출근할 시간이다.

노동을 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즐거운 일이다. 특히나 일의 성취를 나의 성취로 생각하는 안 좋은(?) 생각을 가진 나로서는 더욱 그러하다. 깔끔하고 정확하게,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면 그걸로 보람을 느낀다. 어제의 나는 보람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도 이어졌다.

갑작스런 포지션 변경이 이뤄졌다. 버벅거리며 일을 한다. 주방의 아침은 쉴새 없이 바쁘지만 그 속에서 나는 멍하니 시선을 옮기고 있다.

"이거 해."

겨우겨우 물어 잡은 일은 롤 말기. 기계가 아닌 손으로 마는 것. 테크닉은 없다. 알려준 요령을 최대한 살려 말아야 한다. 그러나 생각처럼 손은 따라주지 않는다. 이런저런 욕을 먹어가며 일한다. 일을 못한다고 욕먹는건 그다지 스트레스가 아니다. 다만 일을 못해서 받는 나 자신의 무력감이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는데 뒷목이 빳빳히 굳어간다. 매니저는 핀잔을 준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하자 왈.

"주방에서 하고 싶은 일, 하기 싫은 일 다 해야지. 너 스트레스 받지 않게 해주면서 일을 할 순 없어. 생각 다시 해야 할거야."

하기 싫은 일을 한다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내가 해서 늘지 못하는 일이다. 섬세한 일을 잘 못하는 걸 어필해도 막무가내였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 처지가 처량하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온다.

심호흡을 한 번했다. 이 주방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은 없다. 각자가 일을 하고 있을 뿐. 이런 무관심이 씁쓸하지만 당연하다. 마음을 허허롭게 먹었다. 못한다고 말을 했고 평가는 받으면 될 일. 여유롭게 천천히 일을 한다. 굳이 서두르거나 주눅들 필요 없다. 내가 받는 값어치만큼 노동을 제공하면 되니까. 결국 매니저가 포기한다.

"넌 이런 일이 안 맞는갑다. 원래 하던 거 하자."

피식 웃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리고 어필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은 분명 없다. 하지만 잘할 수 없는 일을 붙잡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어필을 충분히 했고 그걸 듣지 못한건 그녀의 책임. 시간만 버리고만 꼴. 내 손해는 아니다. 결국 가게의 손해지.

남은 스트레스는 친구들과 함께 풀기로 했다. 문자를 돌려 저녁 약속을 잡아놨다.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그쳤다. 비가 주던 고즈넉한 분위기는 햇빛의 밝음으로 바뀌었다.

저녁을 어제 먹고 남은 KFC치킨으로 때웠다. 어제 이 치킨을 셰어집 마스터와 함께 먹었다. 문득 그의 말이 생각났다.

"호주에 1,2년 어설프게 있다가 가는 사람들이 호주 좋다고 하지 사람 살기에는 안 좋아요. 여기서 살기 시작하는 순간 나가는 세금이 얼만데..."

그가 겪었던 인종차별을 하나하나 말해준다. 버스에 탔다가 뒤에서 날아오는 깡통에 맞았던 이야기. 동양인은 나가라며 린치를 가하던 이야기. 호주의 인종차별 실태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 였다. 호주라는 나라가 주는 환상은 그저 환상일지 모르겠다. 사람 사는 곳이 비슷하다지만 이곳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