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을 반복하는 엄마와 마주할 때

그거 아세요? 그 얘기 벌써 5번째라는 거

by 다움코치

#1. 엄마가 같은 말을 반복하신다?

"기름기 있는 프라이팬은 밀가루로 씻으면 기름기가 싹 없어진다"

엄마가 프라이팬을 닦을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다. 15번은 족히 들었으리라. 프라이팬 닦으실 때마다 옆에 있었으면 수백 번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나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저 문장을 말할 수 있다.

처음엔 "아, 그래요? 해봐야겠다"

두 번째는 "해보니 좋더라고요"

세 번째 "아, 네"

네 번째였나? "엄마, 근데 난번에 알려준 거 아시죠?"

엄마는 "내가 말했었지?"라고 하시면서 머쓱해하신다. 뭔가 아쉬워하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다음에 또...

"프라이팬 기름기는 밀가루로 씻으면 깨끗이 씻긴다"



"B권사님 둘째 아들 있잖아. 어릴 때는 공부 잘하는 형한테 치여서 그냥 보통 아들이었는데 크고 나서 권사님한테 효도다고 하네"

'흠, B권사님 아들? 레퍼토리가 아 직업, 벤츠, 문방구 아저씨였지?'

"첫째 아들은 공무원이고, 둘째는 사업하는데 사업이 잘 나가나 봐. 작년에 둘째가 권사님한테 벤츠 사줬잖아. 그러면서 어릴 적 이야기를 하더래. 어릴 때 문방구 아저씨가 형이랑 자기랑 비교해서 그 아저씨 엄청 싫어했었다고. 지금은 둘째가 엄마를 훨씬 더 잘 챙긴대"

엄마 말씀의 결론이 뭘까? 부러움? 딸도 효도하라는 무언의 압박? 가 뭘 해야 하는지 아는 말보다 론을 모르겠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 게 훨씬 힘들다.


솔직히 나는 남의 집 이야기는 별로 안 궁금하다. 아니 것보다 예전에 여러 번 말씀하셨던 사실 자체를 기억 못 하시는 걸까 봐 걱정됐다. 여러 번 말씀하신 건데도 처음인 것처럼 말씀하신다? 혹시 어디 편찮으신 걸까? 몇 년 전에 쓰러지신 적이 있었는데 뇌 쪽에 이상 있는 건 아니겠지? TV에서 연세 있으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치매의 전조 증상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의 다른 행동에는 특별히 문제가 없어 보인다.



#2. 반복하는 엄마와 마주할 때

법륜스님이 말씀하시길, 노인들이 똑같은 얘기를 계속하는 건 그저 자기 견해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식 입장에서는 같은 얘기를 계속하니까 잔소리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는 잔소리를 하는 게 아니고 생각이 바뀌지 않아서 똑같은 얘기를 계속하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충격이다.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일 뿐이며 단지 생각이 바뀌지 않아서 똑같은 얘기를 계속한다고?'


그런데 반복해서 듣는 게 힘들다면?


첫째, 그냥 아무 말 없이 들어드리는 거다.

엄마는 그저 대화의 상대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수록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 몇 안되니깐. 무슨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 그런 엄마한테 똑같은 얘기 좀 그만 하시라고 윽박지르거나 핀잔 주는 일은 엄마의 마음을 닫게 하는 최악의 행동이겠지.

'3살 아이한테는 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연세 드신 부모님을 기다리지 못할까?' 할 수 있다!

둘째, 자신의 인내 한계 횟수(5번)를 정하고,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을 때 자리를 잠시 뜨는 방법이다.

듣기 싫어서 떠나는 게 아니라 갑자기 처리해야 할 급한 일이 생각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떠야 한다.

"엄마, 잠시만요. 잊어버린 게 있어서"


셋째, 대화의 화제를 즐거운 내용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엄마, 혹시 이 얘기 아세요?"

그날 나한테 일어난 재미난 얘기를 하거나 평소에 즐거운 이야기를 준비해 두면 좋다.

"엄마, 요즘에 뭐 재밌는 일 있어요? "

듣기나 자리 뜨기보다 엄마한테 관심을 보이는 적극적인 행동이다. 엄마 스스로 즐거운 일을 떠올리는 연습도 되는 것이니 일석이조 아닐까? 혹시 엄마가 재밌는 일 없었다고 대답하면 내가 준비한 재밌는 얘기 보따리를 풀면 된다. 고수의 방법으로 최고 난이도라 생각된다.


가장 큰 고비는 엄마 말이 내 생각과 다를 때다. 그때 엄마 생각을 바로잡거나 바꾸자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법륜 스님 말씀처럼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네. 엄마, 그렇게 할게요"

이 말이 도저히 안 나올 때는 간단히 "네"라고 하면 된다. 참으로 어려운 한마디다.

"네, 엄마"


40년 산 나 자신도 못 바꾸면서 60년 넘게 사신 엄마를 바꾸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명심하고 또 명심한다.


부모는 안 바뀌는 존재예요.
안 바뀌는 존재인데 자꾸 바뀌기를 바라니까
결국 자기만 괴로워져요.
그래서 부모와의 사이에 갈등만 깊어집니다.

그러면 부모는 어떻게 대해야 갈등이 없을까요?
항상 맞춰주는 거예요.
어머니가 뭐라고 해도
"네,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뭐라고 해도 맞춰 주는 거예요.

"틀린 얘기를 하는데 어떻게 맞춥니까?"
그러나 사실은 틀리고 옳은 게 없습니다.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은 다 내 마음이 짓는 것이지,
본래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어요.

- 엄마 수업(법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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