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독 같이 하실래요?
- 꾸준히 출석하는 애는 어김없이 실력이 늘었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얼마나 평범하거나 비범하든 간에 결국 계속 쓰는 아이만이 작가가 될 테니까
좋은 이야기는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내가 먼저 무언가를 내주어야만 그들도 소중한 것을 나에게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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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어린애에게> -김지은-
안녕! 나 같은 어린애야! 이제부터 내가 인생사는 법을 알려줄게. 일단 드래곤볼 만화는 꼭 봐야 할 만화야. 그리고 살면서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은 초밥과 불닭볶음면이야. 초밥은 싱싱한 생선이 쫄깃쫄깃함과 시원한 맛을 느끼게 하고 밥이 식감을 높여주고 와사비와 간장이 조금 짜고 맵게 음식의 맛을 맞춰줘...또 태어나서 괌이라는 섬은 가보아야해. 특히 괌에 호텔 앞바다는 엄청나게 아름다워. 그리고 인생 살면서 밤은 새봐야 해. 왜냐하면 놀 시간이 많아져서 좋아. 내가 말한 것을 하면 인생이 행복해질 거야. 행복이란 너가 원하는 것을 하는 거야.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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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말하지 말고 나머지는 글로 써줘. 중요한 이야기를 말로만 하면 힘이 약해지거든. 마무리는 꼭 글에서 지어줘"
박민규 작가가 말하길, 좋은 글은 두 가지로 나뉜 댔다.
"노인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 혹은 "소년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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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열다섯 살이었던 김서한이라는 아이는 원고지에 이렇게 적어서 들고 왔다.
"나는 모든 음악에 맞춰 춤을 출수 있다. 또 나는 친구와 먼산으로 가는 수다를 떠는 걸 좋아한다. 그러고 나면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고 사이가 더 돈독해지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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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내 영원한 베스트 프렌드 김찬영이고 가장 싫어하는 사람도 김찬영이다. 감찬영은 나랑 세 살 차이 나는 남동생인데 게임과 노래를 좋아한다. 찬영이 가수가 되면 좋겠다(70페이지)
'나'였던 주어가 남으로 슬쩍 넘어갔다. 그 대상은 애증의 남동생이다. 가장 싫어하는 남이자 영원한 베스트 프렌드라니. 이 간극에서 관계의 탄력을 본다. 언제까지나 너와 가까운 친구일 거라는, 흔들리지 않는 전제 위의 다툼은 금세 회복되기 마련이다(70페이지)
매주 한 편의 글을 완성하며 몇 개의 계절을 통과하다 보면 아이들은 어느새 다른 인물에게 숨을 불어넣는다. 숨을 불어넣는 방식 중 하나는 큰따옴표다. 아이들이 주어를 남으로 설정한 뒤 큰따옴표를 쓰는 순간을 나는 눈여겨보게 된다. 그건 다른 사람의 말을 거의 외워야 가능한 일이기 대문이다. 자신이 했던 말만 기억해가지고는 큰따옴표를 잘 사용하기 어렵다(70페이지)
글쓰기는 대부분 그런 순간에 시작되는 거 같아. 하고 싶었는데 못한 말들로부터. 혹은 안 했으면 좋았을 텐데 괜히 내뱉은 말들로부터. 후회와 아쉬움은 글쓰기의 중요한 씨앗들 중 하나잖아. 세아는 그 씨앗을 잘 활용해서 글을 쓰는 것 같아 난감하거나 고생스럽거나 억울하거나 부끄러운 일들을 잘 기억했다가 한 편의 글로 완성하지. 세아에겐 언제나 재료가 장전되어 있는 느낌이야. 심지어 꼬질꼬질한 양 모양의 필통만 가지고도 너는 참 재미난 글을 쓰지(91페이지)
너의 주저함을 너무 좋아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어. 주저하고 눈치를 살피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이 있잖아... 내가 거의 올해의 문장으로 뽑고 싶을 만한 것을 너는 썼지. "우리는 꼭 마지막이 해피엔딩으로 끄나지 않는 영화를 찍으며 즐거움을 느꼈다." 너는 너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천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92페이지)
너는 무슨 주제를 주든 핵심을 단번에 캐치하고, 개떡 같은 설명도 찰떡같이 알아듣지... 그런 너에게서 의외의 까칠한 모습이 보일 때 나는 약간의 쾌감을 느꼈어. 네가 히스테릭할 때도 있다는 사실은 너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 삼 남매 중 첫째 누나로서의 단호한 권위가 드러나는 글을 네가 쓸 때면 난 늘 깔깔깔 웃으면서 읽어. 많은 일을 너무 야무지게 잘 해내기만 하는 사람이 가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 때 독자들은 큰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아... 너의 애독자들을 위해 가끔씩 어긋나 줘. 다들 너에게서 더욱 헤어 나올 수 없을 거야(93페이지)
<너에게 쓰는 인생 사용 설명서> - 열다섯 살 윤예영 -
이번에는 좀 네가 행복할 수 있는 걸 알려줄게.
바로 방탄이야. 아, 물론 굳이 콘서트나 팬싸를 안 가더라도 난 네가 행복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는 거야. 그들은 보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지거든. 그니까 유튭에 방탄 한 번쯤은 쳐 봐. 좋아하고 안 좋아하는 건 네가 결정하는 거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알려줄게. 초등학생까지는 학원 다니지 마. 별 상관없어. 넌 중학생이 되면 더욱 힘들 거거든. 0점 한번 맞아보고 쉬원하게 놀아. 제발 점수 때문에 실망하고 남과 비교하지도 말고 차이 중학교 가면 해야 돼. 물론 6학년 때 중1 예습 한 번쯤 해보는 것도 좋아.
지금까지 내가 알려준 것 말고도 넌 많은 일들을 겪을 거야. 네가 내 성격과 같다면 실수도 많이 하고 모르는 것도 많을 거야. 애가 좀 어리바리해서 바보 같고 그래도 괜찮아. 그걸 다 풀어나가다 보면 많이 성장해 있을 걸?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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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애에게 쓰는 인생 사용 설명서> - 13살 기세화 -
1.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른 사람과는 어울리지 마. 그 애가 나중에 너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어
2. 학원은 다니지 않아도 돼(물론 네가 필요하면 다니고). 학원을 다니지 않고 학교에서 배워. 그것이 더 나을지도 몰라. 시험 때는 벼락치기로 공부하렴
7. 남자애들과 싸울 때는 욕을 잘하는 여자애를 데리고 오거나 가운뎃손가락을 날려. 그다음 유유히 퇴장을 해.
10. 너와 잘 맞는 친구가 있으면 바로 같이 놀아. 혈액형으로 알아보는 친구 따윈 믿지 마. 너와 잘 맞는 친구면 돼.
"지금부터 내가 비겁했던 순간에 대해 써보겠다. 난 비겁했던 적이 많아서 다 기억나지는 않기 때문에 아주 잘 생각나는 것만 쓸 것이다" 이것이 열두 살 주현이의 문장임을 아이들은 금세 알아챈다. 그는 늘 자신이 무엇을 쓸지 독자에게 예고한 뒤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장에서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지금까지 비겁함에 관한 얘기였다. 이제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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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아이의 과제에는 이런 마지막 문장이 적혀 있다.
"동생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이 한 줄 만으로도 아이들은 열두 살 정우의 이름을 외친다. 정우의 글은 언제나 무언가를 궁금해하며 끝나는 경향이 있다. 선생님이 왜 이런 주제를 준 건지도 궁금하고 옆자리에 앉은 형은 글을 쓰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궁금하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자마자 글을 마치기 때문에 답이 적히는 경우는 없다. 나는 그에게 마지막 문장이 아닌 첫 문장에 질문을 써보자고 말한다. 호기심으로 끝나는 문장 말고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사랑은 궁금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135페이지)
아이들 각자의 이 방식들을 나는 글투라고 말한다. 말하는 사람 모두에게 말투가 있듯 글 쓰는 사람 모두에게 글투가 있다. 글투는 문제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는 표정'이기도 하다. 과제에서 이름을 지워도 글쓴이의 표정은 지워지지 않는다(136페이지)
영화 <매니페스토>에는 한 글쓰기 교사가 등장한다.
"독창적인 것은 없다. 어디서든 훔쳐올 수 있어. 영감을 주거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거라면 뭐든지 얼마든지 집어삼켜. 옛날 영화, 요즘 영화, 음악, 책, 그림, 사진, 시, 꿈, 마구잡이 대화, 건물, 구름의 모양, 고인 물, 빛과 그림자도 좋아. 너희 영혼에 바로 와닿는 게 있다면 거기서 훔쳐오는 거야. 독창성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훔쳤다는 걸 숨길 필요 없어. 원한다면 얼마든지 기념해도 좋아"
그런 뒤에 교사는 이렇게 덧붙인다.
"하지만 장뤼크 고다르가 한 말은 꼭 기억해야 해. '문제는 어디서 가져오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가져가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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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쏟아지는 말들 중 어떤 것을 기억하고 실천할지를 고민한다. 답장은 하지 않는다. 궁색한 해명이 되기 쉬우므로. 일일이 해명하거나 응답하는 대신 내 글을 고친다. 그리고 새로 쓴다 다시 잘해보겠다고 다짐하며 움직일 수밖에 없다. 몸과 마음과 시간을 들여 새롭게 애쓸 각오를 하면 해명의 말을 꾹 참을 용기가 조금 생긴다(206페이지)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장편소설 <올리브 키터리지>의 한국판 띠지에는 김애란 작가의 짧은 추천사가 적혀있다
"울지 않고 울음에 대해 말하는 법"
소설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데니즈가 슬펐다고 말하지 않는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쓰더라도 작가가 먼저 울어서는 안 된다고 나의 글쓰기 스승은 말하곤 했다. 그럼 독자는 울지 않게 될 테니까. 작가가 섣부른 호들갑을 떨수록 독자는 팔짱을 끼게 될 테니까. 울지 않고 슬픔을 말하듯 웃지 않고 재미에 대해서도 잘 말하고 싶었다(207페이지)
치유를 위해 글을 쓰지 않지만 글쓰기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스스로를 멀리서 보는 연습이기 때문이다(210페이지)
할까 말까 하는 기로에서 나는 대부분 하기를 선택하며 살았다. 그러고는 물론 많은 후회를 해왔지만, 이번에도 애를 써보기로 했다(214페이지)
누군가가 덜 쓰는 방식으로 자신을 숨긴다면 민하 선생님은 마구 더 쓰는 방식으로 자신을 숨겼다. 문장에 문장을 덧칠하고 뒤범벅하며 글 속에 숨었다(218페이지)
좋은 글은 장면을 선물한다고. 읽는 이의 마음속에 몹시 인상적인 이미지를 그려서 글을 내려놓고도 이야기가 자꾸만 떠오르게끔 한다고. 어떻게 해야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보여줄 수 있을지, 텍스트로 이뤄진 문장을 가지고 이미지의 세계로 가는 방법은 무엇일지 열심히 고민해보자고(229페이지)
돈 때문에 하는 일만으로 삶을 채워서는 안 된다고 내 스승은 말하곤 했다(234페이지)
글을 잘 쓰려면 우선 꼭 잘 들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 줘.
글방에서 '듣기'란 무엇인가
1. 귀를 쫑긋 세운다
2. 눈을 번쩍 뜨고, 말하는 사람을 본다
3. 나의 입을 꼭 다문다(종이 소리, 물통 소리 내지 말기)
(257페이지)
우리 아빠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일단 맛있는 온소바를 해줘서 좋은 놈이다. 그런데 내가 잘못했을 땐 버럭 화를 낸다. 그럴 땐 나쁜 놈이다. 그리고 아빠는 자기가 사실 이순신이라면서 장난을 친다. 이상한 놈이다. 좋고 , 나쁘고, 이상한 건 엄마도 마찬가지다(267페이지)
제하의 글에서 아빠와 엄마는 앞면과 옆면과 뒷면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이다. 제하는 아는듯하다.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하거나 이상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는 걸. 다들 좋은 놈과 나쁜 놈과 이상한 놈을 자기 안에 데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변화무쌍하며 결코 고정적일 수 없는 그들을 설명하려면 '좋은, 나쁜, 이상한'보다 더 세세하고 정확한 분류가 필요할 것이다. 글쓰기 수업에서 우리는 풍부한 타자를 위한 풍부한 언어를 찾아나간다(268페이지)
그림책 <소년의 마음>
박민규 <아침의 문> / <자서전은 얼어 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