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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수 Sep 30. 2015

층간소음에 고함

촌PD의 세상바라보기 아홉번째 이야기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다. 아래층에서 컹컹~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에 심장박동이 갑자기 빨라졌다. 아드레날린 호르몬은 강한 박동을 타고 내 몸속 어딘가를 자극하여 ‘분노’라는 심리상태를 만들었다. 요즘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층간소음 문제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아파트 생활 약 25년 만에 소음분쟁을 겪게 된 것이다.     

 전 국민의 75%가량이 다세대 주택 혹은 아파트라는 주거형태에 거주하는 우리나라에서 벽 하나를 두고 이웃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니 분쟁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실제 2014년 한해만해도 1만 6천 건이 넘는 분쟁 조정 상담사례가 환경부 산하기관에 접수 되었다고 한다. 바야흐로 주거 공해 시대가 도래 했다.    

 요즘 아랫집 윗집 사이에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내일처럼 여기는 이웃사촌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제 이웃은 사촌이 아니라 나의 아웃오브 마인드(Out of Mind)에 있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집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닌 복잡한 사회생활에서 온전한 나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재산으로서의 가치만 올라갔다. 그래서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한 침범은 아무리 이웃사촌이라 하더라도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다. 거꾸로 내 재산의 영역을 침범했으니 응징 받아 마땅하다는 식이다. 그래서 층간소음 강력범죄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그리고 층간소음이 발생했을 때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미흡하다. 층간소음 분쟁위원회가 있지만 결국 이웃간에 발생하는 일이라 좋은 선에서 합의를 유도한다. 아파트 관리사무실은 어떤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 결국 층간소음 문제가 발생하면 개인이 이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이 문제가 상호간의 폭력사태로 번지기도 한다. 편하기 위해 아파트 생활을 하는데 역설적으로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은 너무나 복잡하다.     

 평소 무관심의 영역이었던 이웃을 만나는 일은 두렵다. 혹은 그 이웃이 참아왔던 나의 감정의 마지노선을 자극할까봐 두렵다. 왜냐하면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무관심의 대상과 싸우기 위해선 나만의 무기가 필요한데 우리가 대부분 장착하고 가는 무기는 바로 ‘이기심’이다. 내 입장에서 상대방의 행동이 얼마나 무례한 것인지 보여주는 최고의 무기인 것이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서로 공격하는 게임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일단 이웃 간의 가장 큰 지혜는 배척이 아니라 ‘배려’이다. 나만 생각하는 감정은 상대를 배척하게 되지만 상대방까지 생각해주는 행동은 곧 배려가 된다. 그 배려의 에너지는 전염성이 강해 내가 배려하면 상대방도 배려의 태도로 나를 맞이한다. 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랫집 강아지에 고통 받고 있던 나는 퇴근길에 빵집에서 케익을 하나 샀다. “나는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아요”라는 일종의 신호인 셈이다. 그리고 그 분이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이 무엇이고 몇 년정도 되었는지 물어봤다. 관심을 가져주고 그 이웃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겪고 있는 어려움도 하소연 했더니 늙은 노부부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하신다. 어른의 머리를 숙이게 만들었더니 되려 내가 미안해진다. 결국 서로 죄송하다는 훈훈함을 남기고 헤어졌다. 대신 강아지가 짖는 원인을 노부부를 대신해 알아봐 드리기로 했다. 아웃(Out)이었던 이웃이 내 영역에 들어온 것이다. 이제 내일 아침의 강아지 짖는 소리는 짜증보다는 어르신의 따스했던 미소를 떠올리는 매개체가 될 것 같다.

            (사진설명 : 아파트 시대에 사는 우리... 공원에서 바라보는 아파트는 저리도 고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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