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수 Sep 30. 2015

촌넘어 뉴욕으로

촌PD가 바라본세상 일곱번째 이야기 

 적당히 덜컹이는 기차의 바깥은 온통 가을 빛 나무들이 가득하다. 평야가 나타나면 적당한 갈색 습지위에 갈대가 춤추고, 숲을 지나갈때면 누런 빛 떡갈나무 잎이 정겹게 손을 흔든다. 이곳은 뉴욕에서 보스턴 가는 아침 기차 안이다. 필자는 지금 보스턴의 하버드 대학교에 세미나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다. 이 세미나는 고맙게도 필자에게 뉴욕의 가을을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뉴욕... 이미 우리가 많은 매체를 통해 간접 경험했던 곳, 그래서 항상 가보고 싶은 도시 1위에 빛나는 곳, JFK공항에서 맨해튼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영화의 한 장면이 실사화 되는 그런 곳... 그래서 다가 갈수록 치열해지는 느낌을 주는 도시, 다만 자유롭게 치열하라고 말하는 도시, 그곳은 분명 꿈과 낭만의 도시 뉴욕이었다. 

 뉴욕의 교통상황은 그야말로 지옥수준, 맨해튼에 들어서자 나를 태운 택시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곳곳에선 자동차 경적소리가 심포니처럼 울린다. 이제야 ‘진짜 뉴욕’을 실감 할 수 있었다. 턱을 반 이상 들어야 꼭대기가 보이는 건물들 그래서 건물들 사이에 난 길은 햇볕이 들지 않았지만 대조적으로 하늘은 무척 파란색 이었기에 음영의 조화가 멋들어졌다. 

 잠시 거리를 걸어보기로 했다. 마치 귓가에 수많은 뉴욕을 찬양하던 팝송을 듣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싶어서 일거다. 이곳의 거리는 무척 복잡하다. 수많은 인종의 얼굴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숨쉬고 있으며 거리는 일정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걸음이 빠르고 늦은 것은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센트럴 파크쪽인가 아니면 맨해튼의 멋들어진 사무실 쪽인가 였다. 그 방향성으로 인해 누군가는 사랑스런 곳으로 가고 있고 누군가는 차가운 방향을 향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 

 거리의 곳곳 서있는 사람들은 무뚝뚝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익살이 숨어있다. 눈빛이 매섭지 않고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 익살을 끄집어내고 싶은 장난기가 얼굴 언저리 끝을 싸악 하고 지나간다.     

 호텔을 나와 북쪽으로 몇 블록을 걸어가니 거리 사방천지가 번쩍이는 네온사인으로 가득하다. 오후 세시의 햇살도 무력화 시키는 인간들이 만든 빛... 이곳은 타임스퀘어 광장이다. 실제로 보는 타임스퀘어 광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이곳에서 내뿜는 빛을 따라 세계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웅웅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 현기증이 지나갔다. 빨강색 전광판부터 파란색, 주황색 등등 여기는 전기로 만든 꽃밭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 움직임엔 운율이 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공연을 했을 싸이는 이 운율에 맞춰 얼마나 격하게 심장이 뛰었을까? 이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위의 높이만큼 올라 노래하고 춤춘다는 것은 아마도 굉장히 멋진 일 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설명 : 타임스퀘어 광장 광각렌즈 촬영)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브루클린 공원으로 향했다. 무한도전의 사진으로 유명해진 곳, 익살스런 멤버들을 시크함으로 무장시켰던 그 배경, 그래서 사진기 꼭 챙겨들고 그 도시의 시크함을 찾아 나섰다. 현재시각 오후 5시 30분, 하늘빛은 추워지고 노을이 마지막 불빛을 태우면 브루클린 다리 너머로 맨해튼의 빌딩숲에서 하나 둘 조명이 켜지기 시작한다.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었으며 허드슨 강의 건너편의 도시는 검은 실루엣을 남기며 반짝이기 시작한다. 그런 도시사이로 브루클린 다리가 가로지르며 시원하게 쭉 뻗어있다. 이 고풍스런 다리의 교각은 뉴욕이 오래된 역사를 지닌 도시임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던, 댄디, 시크라는 형용사는 뉴욕이 오리지널 일 것이다.

      (사진설명 : 왼쪽부터 브루클린,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보이는 맨해튼야경, 브루클린 브릿지 흑백촬영)


 사실 뉴욕 자체의 건물은 굉장히 오래 된 것이지만 새롭게 리노베이션을 거쳐 여전히 모던하고 트렌디하다. 사실 저 높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 시절을 겪고있을 당시 1930년도에 지어진 빌딩이라는 점만 하더라도 적잖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필자가 유명한 도시 몇 군데를 방문하면서 항상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생각을 함축해 보면 ‘개성’과 ‘낭만’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뉴욕을 자유의 도시로 표현하곤 하는데 실제 수많은 군중속에서 서로에게 무관심 할 자유는 아주 멋진 일이었다. 최소한 내 옷차림과 말투 행동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이곳에 모여든 전 세계인은 개성으로 존중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 뉴욕의 색깔을 정의하자면 황금빛으로 볼 수 있겠다. 자본주의를 고풍스럽게 치장하는 곳 그래서 돈과 물질에 관해 결코 가볍지 않은 향수를 자극 하는 그런 색깔이 있는 곳, 그래서 달러의 색을 말하라면 뉴욕의 황금빛 건물들의 색깔이 뇌리에 스쳐지나간다.     

 이곳 뉴욕에는 수많은 인파가 있지만 사람은 없다. 낭만이 있지만 현실은 없다. 그래서 뉴욕은 삶의 영역에 있는 도시가 아니라 꿈의 영역에 있는 도시이다. 최소한 뉴요커가 아닌 우리에겐 그렇다. 하지만 이런 황금빛 도시는 내 감정의 회로 속에 무언가 아련한 기억의 영역을 자극시켜주었다. 뉴욕을 떠나며 가슴 언저리가 아파오는 것도 분명 이 감정의 한 부분 이었을 것이다. 떠나가는 나에게 뉴욕이 말한다. “당신은 꿈을 꿀 준비가 되었느냐고...”

                         (사진설명 :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바라본 맨해튼 전경)

매거진의 이전글 수많은 미생의 이름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