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원한 이방인 Jan 17. 2017

애틋했던 아날로그 시대

기다림의 미학


현대사회에서 차츰 거리를 두고 멀어져 가는 것 중 하나가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긴 기다림일 필요도 없다. 핸드폰, 이메일의 등장 이래 인류는 잠시의 기다림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의적으로 늦는 게 아니라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로 연락조차 닿지 않는 누군가를 발 동동거리며 기다려본 기억이 있는가? 서로 연락할 길 없이 약속 장소로 나선다는 사실조차 요즘 세대들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현실이 되었고, 그런 상황을 이해할 필요도 없이 인류는 어느새 항상 연락이 닿는 매체와 한 몸체가 된 듯 살아가고 있다.

 

삐삐나 핸드폰이 발명되기 이전 아날로그 시대 만남의 끈은 ‚믿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상대가 늦어져도 오리라는 믿음, 내가 늦어도 나를 기다려줄 것이라는 믿음.

그렇게 설렘이 있어 만남은 성사되었고, 보고픈 마음이 있기에 애타는 기다림도 감수하던 그 시대.

 

약속시간이 좀 지나면 ‚곧 오겠지‘ , 어느 순간부터는 ‚왜 안 오지?‘ 짜증 반, 걱정 반으로 공중전화 박스를 찾기 시작한다. 혹시나 남겨놓은 메모가 있을까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보며 애간장이 타다 못해 기다리던 상대가 나타나는 순간 안전하게 온 그 존재의 무사함에 안도의 눈물마저 핑돌던 그 시절.

 

반면 오늘날 기다림의 모습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핸드폰의 부재는 생각할 수 없는 시대에 살다 보니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에 도착하지 못하면 영락없이 "어디쯤이야?", "왜 안 와?" 줄지어 연락이 온다. 불과 몇 분만 늦어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누군가는 습관처럼, 누군가는 기다림에 익숙지 않아서, 누군가는 걱정스러움에 그럴 것이다.

 

기다림이란 행위는 설렘 그리고 기대가 함께 동반될 때 진정한 의미를 발한다. 지각이 습관화되기도, 시간관념을 다소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조차도 누군가를 지나치게 애타는 상황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를 품지는 않을 것이다. 애틋함이 더해지면 만나지는 순간의 대가 또한 비례적으로 커진다 해도 늘어지는 기다림의 시간이 때로는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살아오며 누구라도 한번쯤은 경험해 봤을 때문이다.

오히려 버튼 하나면 언제든지 연락이 되는 현대시대의 인프라 속에서 기다리는 이와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에 당면하면 그 애타는 마음이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그런 일이 다반사였기에 그 절실함이 오기까지 기다림을 기꺼이 감수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현대의 우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무료전화도 가능해진 첨단 시대에 살아간다. 하지만 국제전화는 두 말할 필요 없이 국내 통화료도 비싸 내 안부를 전하고, 상대의 소식을 전해받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따뜻한 체온을 담아 손으로 적어 내려간 편지였던 시절이 있었으니‚ 아날로그 시대와 현대에서 ‚기다림‘의 의미 자체가 판이하게 달라졌음이다.

 

나는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도 하물며 는 바로 옆 동네에 사는 친구들과도 수많은 편지들을 주고받았다. 전화 통화는 비쌀뿐더러 기록을 남길 수 없었지만 손으로 정성껏 써 내린 편지는 읽고 또 읽어 내려가며 소중하게 보관할 수 있었기에 그 연락통을 더 선호했었다. 답장이 올 날수가 채워지는 날 방과 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없이 경쾌했고, 우체함 속 내가 수신인으로 지목된 한 통의 편지로 세상을 모두 가진 듯한 기쁨에 취했다. 진정한 아날로그 감성이 이런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우스울 수 있으나, 그때는 그것이 일반적인 연락 방식이었고, 하여서 몇 날 며칠의 애타는 기다림, 간절한 기다림이 더욱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이리라.  

 

기술의 발달은 인류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하지만, 그 편리함에 지나치게 익숙해지다 보니 세상의 맛깔스러운 정과 따뜻한 관심이 식어져 간다. 긴급상황이 아니라면 잠시 상대를 기다려주는 여유를 품어보면 어떨까? 서로의 안부를 오랜만에 나의 손맛이 담긴 편지 한 장의 정겨움으로 전해 보면 어떨까? 나 스스로에게도 '아날로그 시절의 향수에 잠시 젖어보고 싶노라' 나지막이 속삭여주자.  

아날로그라 불리던 그 시절, 공중전화박스 안에서 얼마나 많은 추억들이 탄생했는가 웃으며 한참 옛이야기 나눠보자. 마음 따뜻하고 흐뭇한 미소가 피어오를 빛바랜 청사진들을 하나 두울 추억 속에서 소환시켜보자.

 

연락할 길 없이 발을 동동거리며 길고 긴 기다림을 날 것으로 그대로 감수해야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면 솔직히 인류가 이루어 놓은 이 모든 현대 기술을 마다할 자신은 없다. 그럼에도 그 정겹던 시절이 한없이 그리우니 이래서 인간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스럽다 하는가 보다.

 

약속시간에 늦는 이유도 모른 채 긴 기다림을 감수해낸 만큼 기쁨 역시 충만했던 애간장 녹이는 만남이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기다림을 이제는 걱정이 앞서서라도 감수해낼 자신이 없지만 그 시절 절실했던 기다림의 순간들만큼은 고스란히 내 몫으로 오래 품고 간직하며 기억하려 한다.

고맙다 정겨운 추억거리 풍성한 그 시대를 거쳐올 수 있었음에...

아날로그 시대, 추억 속에서라도 영원하기를.



* 월간수필문학지 2020.5월호 (통권 338),

   한국수필문학가협회 2020년도 대표수필선집 수록


매거진의 이전글 아름다운 귀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