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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Feb 14. 2017

아름다운 귀인

열여섯에 찾아온 인연

한 친구가 있다.

"이 이모가 엄마의 유일한 친구야!"

라고 망설임 없이 아이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으쓱함과 동시에 가슴 한편이 싸하다.

그 위로 그윽한 애잔함이 피어오른다.

미안한 고마움으로 코 끝이 시려온다.


우리는 열여섯 나이에 만났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이었다.

학교 동창도 아닌 우리는 "일본"이 맺어준 인연이나 다름이 없다.


1980년 초반 출범한 한국 청소년연맹이 우리의 인연 고리었다. 사는 동네가 다르고, 다니는 학교도 다른 우리의 공동 분모는 이 연맹의 중학생 모임인 "누리단"이었다. 정권이 바뀐 후 현재는 이 단체의 존재조차 잊힌 듯 하지만 우리의 우정은 그와는 반비례적으로 더욱 돈독함을 다지고 있다.


당시 우리는 전국에서 선발된 중학교의  누리단 단장 중 서울팀으로 만나 문화교류 및 현지 탐방을 취지로 떠난 일본 연수에 동참했다.

지금은 정확히 몇 박 며칠이었는지 기억조차 없다. 단 몇 날 몇 밤을 함께 한 인연이 이렇게 오랜 세월을 나와 함께 견뎌 줄 줄이야!


연수가 끝난 후에는 편지를 오가며 간간히 방학 때 얼굴을 볼뿐 자주 만날 수도 없었지만 어쩌면 그 감질난 만남이 우리를 더욱 끈끈히 이어준 연결고리가 된 것은 아닐까?


사노라면 이런저런 이유로 주야장천 붙어 다니던 단짝과도 의도치 않게 연락이 단절될 수 있다.

나 역시 중고등학교 때 서로 죽고 못 산다던 친구가 상당수였다. 그러나, 나의 거처가 일찍이 독일로 옮겨졌고, 서로 사회진출 또는 결혼과 더불어 사느라 버거운 시기에 접어들 즈음 자연스럽게 동창들과의 연락이 하나 두울 끊어지게 되었다.

나의 삶 또한 녹록치 않았기에 그때는 잃어가는 인연의 고리에 매달릴 여럭도 없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중에도 만난 이래 유일하게 단 한 번도 연락이 끊긴 적 없었던 벗! 우리의 운명이었을까?

많던 친구들과 예외없이 모두 소식이 끊긴 후에도 유일하게 그 친구와는 서로의 삶에 시련이 찾아온  시기일수록 묘하게 얽히고 설키며 만나 지고, 그런 사정을 접했기 때문이라도 서로에게 더욱 의지하며, 챙기며 연락을 끊을 수 없게 되었던 모양이다.


꽃답던 십 대에 만나 삼십 년 넘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 한 단락도 빠짐없이 서로의 힘든 시기를 함께 걸어왔다는 유대감이 우리 둘의 자산이며, 그 누구도 범할 수 없는 영역이다.

온갖 굴곡을 함께 나누며 알몸처럼 서로의 구석구석을 다 내어보인 친구이기에 그 관계의 깊이는 그 무엇과도 비교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서로가 살아온 굴곡진 삶을 직간접적으로 함께 나누며, 상대의 아픔까지 품고 있기에 성립되는 진국같은 관계는 흔치가 않다.


그 친구는 내게 있어 한국에 갈 때마다 가족과 동등하게 제1순위로 꼽히는 존재이지만 일상 복귀 후에는 서로가 연락도 뜸한 채 지내기 일쑤다. 그럼에도 우리 우정은 모든 것을 이해하고, 덮어줄 만큼 넉넉한 깊이를 갖추었기에 괜찮다. 수개월 수년을 못 보고 지내다 재회해도 어제 만났던 듯, 어색함 전혀 없이 따로 걸어온 시간들까지 극복해내는 우리니까!


실제로는 나보다 오히려 많은 지인을 둔 그 친구가 나를 유일한 벗으로 삼아줌이 내 어깨를 우쭐케  한다. 항상, 무엇이던 그리고 먼저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며, 달려와주면서도, 늘 챙김만 받는 나를 유일한 벗으로 지목한 "너"는 내게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가장 소중한 인연, 아름다운 귀인!


인생이 왜 이리 고달플까냐고 한숨짓던 내게 친구는 어느날 묵묵히 한 마디 위로를 던져 주었다;  

"조금만 더 참고, 극복하자.

그래야 함께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잖아." 

내 삶에 다가온 시련의 시기마다 나의 버팀목이 되어준 친구는 중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기댈 어깨를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다.

그가 있기에 아름답게 늙어갈 내일을 소망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친구야,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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