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원한 이방인 Sep 01. 2017

우연은 인연을 잇는 고리

재회 그 기쁨

간절하면 그 마음이 하늘에 닿는 게 분명한 모양이다. "단 한 번이라도 다시 뵐 수 있다면..."이라는 바램 수년간 품고 지냈더니  예상치 못한 곳에서 너무도 뜻밖에  만나지는 걸 보니!


장기화가 되어도 썩 회복세를 보이지 않는 목디스크를 비롯, 두 번의 교통사고 연타로 인한 허리 통증, 그리고 테니스 엘보까지 겹쳐 개인 트레이닝에 집중하느라 수개월째 등한시했던 헬스장.  발걸음이 뜸해지니 꾀가 생겨 기부하는 마음으로 회비를 내고 있었는데 그 날은 왠지 이왕 내고 있는 회비가 몹시 아까와서라도 들러야 되겠구나 싶었다. 건성으로라도 땀 내는 척 좀 하다 집에 가자라는 순수하지 않은 목적으로 헬스장으로 향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끌렸다.

한 치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만나질 귀한 인연이 있었기에  무의식 중 뭔가에 사로잡힌 듯 발걸음이 그곳으로 내디뎌진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필 바로 그 날 그곳으로 향한 동기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무슨 계약 해지 기한이 이렇게 길어 투덜대며 회비가 아깝다 생각한 건 하루 이틀 아니니까.

그 핑계로라도 수십 번 들렀다 집에 가자 다짐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니까. 하지만 매번 실패였다.

일대일 개인 트레이닝에 워낙 만족하고 있기에 솔직히 고독한 혼자만의 운동이 더 이상 필요하다 느끼지 못했다. 수년간 혼자 즐기는 맛에 꾸준히 다녔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그래서인지 동네 초입에 이르기까지 '간다, 만다'  꽃잎을 상상으로 떼어가며 망설인다. 갈림길에 당도하는 순간, 머리는 헬스장으로 가야 한다고 명령하지만 그 명령이 내 신체의 제어장치에 전해지기도 전에 차는 집으로 향하는 골목으로 접어들기 일쑤였다.


여름 햇살이 몹시도 눈부셨던 금요일, 미스터리 할 정도로 망설임 없이 당도한 헬스장. 옷을 갈아 입고 탈의실 긴 복도를 걸어 나오는데 샤워실에서 누군가가 스쳐 지난다.

습관처럼 시선을 돌리는 척 곁눈질을 한다.

한국 어르신 같다.

다른 방향으로 향하던 두 사람.

서로 지나치던 순간 "혹시 누구 아니니?" 

내 이름을 부르는 곱고 나지막한 그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확신이 섰다, 근래 계속 소식이 궁금했던 바로 그 분이라는 걸!


아! 너무 다행이다!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 뵙게 되어 너무나 감사해서.

소식 아는 지인도 없고, 어디서 수소문 해봐야할지 엄두도 못내 생전에 다시 뵐 수 있으려나 자포자기했는데 하늘은 이렇게 뜻밖의 순간에 우연처럼 인연을 연결해주시는구나. 벅찬 감동이 인다. 뇌리에 케케묵은 추억의 순간들이 번갯불처럼 번뜩대며 교차한다.


나의 애틋했던 10대 후반, 부모님이란 울타리를 일찍 벗어나 시작된 홀로 아닌 홀로서기 같던 독일 생활 초기. 스스로 외로움을 달래기도 벅찬 마당에 손아래 동생에게 의지할 만한 든든한 배후자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어깨 무겁던 시절. 동생이 잠든 후 친구들이 선물해준 이문세 4-5집을 이어폰으로 나지막이 들으며 동생에게 약한 모습 덜 들키려고 혼자 삼킨 고독 그리고 그리움의 눈물들로 얼룩진 시간들.


어렸지만 음악이라는 꿈을 위해 언니와 단 둘이 해외로 보내진 동생. 겨우 3살 차이의 언니가 엄마를 대신하기엔 너무 철부지였기에 마음이 많이 허했을 텐데 내색 한 번 않고 꿀떡꿀떡 홀로 삼키며 배불렸을 여린 동생... 그렇게 십대 소녀 단 둘이 서로 의지하고, 보듬어주던 시절. 기뻐도 외로워도, 웃어도 울어도 부모님 품이 늘 그립던 시기, 그 시간들 속에 한 줄기 빛이었던, 멀리 있는 가족보다도 가까이에서 우리 가슴을 온정으로 채워주신 분들이셨다. 


돌아보니 당시 이분들은 지금 내 나이보다 훨씬 젊었다. 그런데 마음 씀씀이가 지금의 나보다 더 성숙하고, 깊으셨다. 또 많은 것을 젊은 나이에 이루신 부러운 가정이었다. 마당이 있는 큰 집을 이쁘게 꾸며놓고, 이쁜 아이 둘을 키우며 사시는 모습이 부러웠다. 우리 식구들도 이렇게 한 지붕 아래 모여 살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생겼다. 당신 아이들과 또래도 다른 우리를 틈틈이 그 이쁜 집으로 불러 따뜻하고, 맛난 집밥을 손수 차려 주시며, 독일 땅에서 갑갑하게 갇힌 생활을 하던 우리에게 소소한 일탈을 가능하게 해주신 분들.


"남의 언어로 공부하기 힘들지? 공부만 파지 말고, 친구도 많이 사귀면서 놀 때는 놀아도 돼."

당시 어른들의 주 레퍼토리인 "공부해"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신선했던 멘트. 부담의 무게와 지친 마음이 그 한 순간 녹아내리며 편안해짐을 느꼈으니 이를 의도한 위로의 한 마디가 아니었겠는가.


또한, 수년 후 내가 비자 문제에 직면해 취업길이 막히자 당신의 사업체에 일자리까지 만들어 나를 채용해 주시고,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회계업무까지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시며, 월급까지 꼬박꼬박 챙겨주신 은인이시다. 그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느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때 배움을 토대로 나는 대기업에 취직해 내 길을 찾았고, 꾸준히 그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그 은혜를 어이 잊을까.


마지막 뵌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세월이 지났건만 스쳐 지나는 순간, 나보다 먼저 나를 알아봐 주시고, 내 이름 석자 잊지 않고 기억해주신 것이 얼마나 큰 감동인지 이 기분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선 헤아리기 힘들 것 같다.


더욱 놀랍고 신기한 것은 다음 날 한국으로 들어가셔서 수 개월 후에 다시 독일로 들어오신다는 것이다. 그 즈음에는 내 헬스 계약이 끝나 더 이상 내가 이 곳에 올 이유가 없었을 테니 우리는 바로 그 날 다시 만날 인연 아니 어쩌면 반드시 다시 마주할 운명이었나보다.


인연의 고리란 참으로 신기하다.

일방적으로 끊어낼 수 없는 고리로 맞물려, 쉬이 내려놓을 수 없는 무게를 짊어진 채 만나야 할 인연이라면 먼 길을 돌아서라도 언젠가는 다시 마주하게 될 귀한 생의 선물. 오래 가슴 깊숙히 품어왔던 감사한 마음과 그리움만큼 다시 만나진 인연의 더 아름다운 내일을 기약하며 그 날의 감동을 또한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한다.


다시 재회하고픈 인연 하나 품지 못한 가난한 가슴이 있다면 새로이 용기내어 스치는 옷깃 속 귀한 인연을 놓치지 않고 품어 보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