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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Apr 05. 2021

혼자라도 괜찮아

병실의 아침 풍경

입원병동의 아침은 소란 스러이 이른 시각에 열렸다. 더욱이 계절은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와도 칠흑 같은 어둠이 여전히 주변을 당당하게 서성이고 있는 겨울. 컴컴하고 고요한 바깥세상과는 달리, 병실  복도에서는 진즉부터 차가운 형광등 불빛과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사방으로 메아리치듯 울리며 반사되고 있었다.


마취제 기운이 내 몸에 아직 남아 있는 듯 뻐근하다.

잠이 온전히 깨지 않기를 바랐을 뿐인데 그 소박한 소망은 병실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온 간호사의 씩씩한 아침 인사 뒤로 묻혀버린다.

그럼에도 상냥히 "Guten Morgen!" 화답하려는 순간 목이 메었다. 그러고 보니 물을 마신 게 언제였나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진통제와 수액을 놓아준 간호사는 병실 문을 나서고, 약속이나 한 듯 아침식사 배급원이 들어선다.

친절했지만 음성에서 바쁨이 읽혔다.

"환자분은 오늘 맑은 수프 두 종류만 배급받습니다."라는 안내가 '당신은 선택권이 없습니다.'로 들려온다.

수프가 담긴 큼직한 머그잔 두 개만이 덩그마니 무질서하게 담긴 트레이를 병상 옆 테이블에 놓아주던 손길도 이내 총총 사라진다.


닫히는 병실 문 틈새로 외과 과장 목소리가 쩌렁쩌렁 일제히 환자들의 이른 아침잠을 깨우는 듯 울려 퍼졌다. 회진이로구나.




다시 혼자가 된 병실에서 하루 전 기억을 더듬어본다.

수술은 언제 끝난 걸까?

잠은 몇 시간씩 잤을까?

수술 결과는?

'정신 몽롱한 상태로 눈을 떠보니 입원실이었지!'

혀 고부라진 상태로 남편에게 수술 잘 마쳤으니 걱정 말라 전화를 넣고 다시 잠이 든 기억이 살아났다.

마취과를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수술 후 그 어떤 마취제 부작용 없이 자다 깨다를 수차례 반복하며 톡으로, 문자로, 전화로 소식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나의 무사함을 전할 수 있었던 기억들도 차례차례 소생한다.


내가 인위적으로 잠든 채, 띡띡 기계음 유난히 크게 울리는 수술실에 누워 있는 동안 남편과 가족들, 지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기다림의 무게가 그들을 지치게 하지는 않았을까?

불현듯 부모님께 반 백 평생에 가장 큰 불효를 하고 있는 자신이 원망스러워 마음이 시려온다.

나 또한 무의식 중에서조차 작은 기적을 위해 기도하며 애타게 소식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수술이 빨리 끝나길 간절함으로 견뎌낸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간호사가 살짝 열어놓은 창 틈으로 겨울바람 한 줄기가 비집고 들어선다. 마취 약의 잔여 효과가 그 찬 기운 타고 서서히 내게서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그제야 나는 한참 머물렀던 어제의 시제 속에서 오늘로 걸어 나온다.


병실 내 환기가 이뤄지며 식어가는 수프의 짠내가 감지되었다. 순간 울컥하며 눈가가 뜨거워졌다.

코로나 규제로 곁을 지켜주는 이 없는 병실에 홀로임이 서글프다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건만 왜지 당혹스러웠다. 마취약에 취해 잠들었다 깬 순간마다 나를 걱정할 이들을 챙긴 스스로가, 혼자 수술을 잘 견뎌준 스스로가 대견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왜 하필 후각이 느껴지는 순간 감정이 북받친 걸까?


침상 앞 벽면 높이 걸린 TV 검은 화면 속으로 무심결에 꽂혔던 초점 잃은 시선을 창쪽으로 돌려본다.

평소 위로받고 싶을 때마다 위로를 안겨주는 하늘을 올려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필 병원 건물이 ㄷ(디귿) 형태라 넓은 창 면적에도 불구, 건물 키 너머로 동트는 미명만이 가까스로 시야에 담긴다.

'아쉽네!' 한숨이 터져 나오려던 찰나,

'이게 어디야!'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불평 대신 환호한다.


세상은 내가 두렵던 순간을 지나 깊고 오래 잠든 사이에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평안을 지키려 애썼겠구나.

싸한 겨울 공기가 가슴이 아닌 머리를 식혀주며, 불평에 앞서 긍정의 소리를 내주니 수술 후 맞은 첫 하루 그 시작이 순조롭지 아니한가.


참으로 감사하다, 코로나가 극성이지만 이 세상이 그런대로 평안하여서, 그렇기에 수술도 연기되지 않고, 수술을 이겨내고 이 시간 이 병실에 있을 수 있음이!

다행이다, 이 세상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 세상에 있어서.

다행이다, 이 겨울이 지면 다시 봄이 올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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