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의 아침 풍경
입원병동의 아침은 소란 스러이 이른 시각에 열렸다. 더욱이 계절은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와도 칠흑 같은 어둠이 여전히 주변을 당당하게 서성이고 있는 겨울. 컴컴하고 고요한 바깥세상과는 달리, 병실 밖 복도에서는 진즉부터 차가운 형광등 불빛과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사방으로 메아리치듯 울리며 반사되고 있었다.
마취제 기운이 내 몸에 아직 남아 있는 듯 뻐근하다.
잠이 온전히 깨지 않기를 바랐을 뿐인데 그 소박한 소망은 병실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온 간호사의 씩씩한 아침 인사 뒤로 묻혀버린다.
그럼에도 상냥히 "Guten Morgen!" 화답하려는 순간 목이 메었다. 그러고 보니 물을 마신 게 언제였나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진통제와 수액을 놓아준 간호사는 병실 문을 나서고, 약속이나 한 듯 아침식사 배급원이 들어선다.
친절했지만 음성에서 바쁨이 읽혔다.
"환자분은 오늘 맑은 수프 두 종류만 배급받습니다."라는 안내가 '당신은 선택권이 없습니다.'로 들려온다.
수프가 담긴 큼직한 머그잔 두 개만이 덩그마니 무질서하게 담긴 트레이를 병상 옆 테이블에 놓아주던 손길도 이내 총총 사라진다.
닫히는 병실 문 틈새로 외과 과장 목소리가 쩌렁쩌렁 일제히 환자들의 이른 아침잠을 깨우는 듯 울려 퍼졌다. 회진이로구나.
다시 혼자가 된 병실에서 하루 전 기억을 더듬어본다.
수술은 언제 끝난 걸까?
잠은 몇 시간씩 잤을까?
수술 결과는?
'정신 몽롱한 상태로 눈을 떠보니 입원실이었지!'
혀 고부라진 상태로 남편에게 수술 잘 마쳤으니 걱정 말라 전화를 넣고 다시 잠이 든 기억이 살아났다.
마취과를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수술 후 그 어떤 마취제 부작용 없이 자다 깨다를 수차례 반복하며 톡으로, 문자로, 전화로 소식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나의 무사함을 전할 수 있었던 기억들도 차례차례 소생한다.
내가 인위적으로 잠든 채, 띡띡 기계음 유난히 크게 울리는 수술실에 누워 있는 동안 남편과 가족들, 지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기다림의 무게가 그들을 지치게 하지는 않았을까?
불현듯 부모님께 반 백 평생에 가장 큰 불효를 하고 있는 자신이 원망스러워 마음이 시려온다.
나 또한 무의식 중에서조차 작은 기적을 위해 기도하며 애타게 소식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수술이 빨리 끝나길 간절함으로 견뎌낸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간호사가 살짝 열어놓은 창 틈으로 겨울바람 한 줄기가 비집고 들어선다. 마취 약의 잔여 효과가 그 찬 기운 타고 서서히 내게서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그제야 나는 한참 머물렀던 어제의 시제 속에서 오늘로 걸어 나온다.
병실 내 환기가 이뤄지며 식어가는 수프의 짠내가 감지되었다. 순간 울컥하며 눈가가 뜨거워졌다.
코로나 규제로 곁을 지켜주는 이 없는 병실에 홀로임이 서글프다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건만 왜지 당혹스러웠다. 마취약에 취해 잠들었다 깬 순간마다 나를 걱정할 이들을 챙긴 스스로가, 혼자 수술을 잘 견뎌준 스스로가 대견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왜 하필 후각이 느껴지는 순간 감정이 북받친 걸까?
침상 앞 벽면 높이 걸린 TV 검은 화면 속으로 무심결에 꽂혔던 초점 잃은 시선을 창쪽으로 돌려본다.
평소 위로받고 싶을 때마다 위로를 안겨주는 하늘을 올려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필 병원 건물이 ㄷ(디귿) 형태라 넓은 창 면적에도 불구, 건물 키 너머로 동트는 미명만이 가까스로 시야에 담긴다.
'아쉽네!' 한숨이 터져 나오려던 찰나,
'이게 어디야!'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불평 대신 환호한다.
세상은 내가 두렵던 순간을 지나 깊고 오래 잠든 사이에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평안을 지키려 애썼겠구나.
싸한 겨울 공기가 가슴이 아닌 머리를 식혀주며, 불평에 앞서 긍정의 소리를 내주니 수술 후 맞은 첫 하루 그 시작이 순조롭지 아니한가.
참으로 감사하다, 코로나가 극성이지만 이 세상이 그런대로 평안하여서, 그렇기에 수술도 연기되지 않고, 수술을 이겨내고 이 시간 이 병실에 있을 수 있음이!
다행이다, 이 세상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 세상에 있어서.
다행이다, 이 겨울이 지면 다시 봄이 올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