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린 20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말이 있다. 나는 항상 산을 바다보다 더 좋아한다고 대답하는 쪽이다. 산에 가면 그곳에만 있는 적막함이 좋다. 벌레소리, 새소리, 사람들 발소리로도 덮을 수 없는 침묵이 흐른다. 그 침묵을 듣고 있으면 수많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미국에 있을 때는 '애팔래치아 산맥'에 있는 트레일 코스에 간 적이 있다. 약 15도 되는 경사에 완만한 구릉이었다. 열심히 한동안 걷고 돌아왔다. 어릴 때부터 수영을 배웠고 아침마다 피트니스 센터에 운동하러 간다.
여기까지 들은 사람이라면 흔히 내가 아주 운동을 잘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만하다. 그러나 나는 운동과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다. 달리기도 항상 하위권이었고 오래 달리기는 정말 못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무서운 놀이기구도 타지 못하는 데다가 자전거도 못 탄다. 지구력이나 순발력도 거의 없어서 5분도 못 뛴다. 잘 하는 운동은 걷기 뿐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운동 깨나 하게 보이는지 '마라톤' 동호회에서도 함께 하자는 권유를 받았다. 운동은 못하지만 등산은 좋아한다. 한국에 와서도 등산 가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지난가을에는 남산에 갔고 이번 봄부터는 높은 산에도 도전해 볼 계획을 세웠다.
4월에 친해진 친구는 한 마디로 운동 마니아다. 자전거, 마라톤, 등산에 철인 경기까지 두루 섭렵했다. 겉으로는 한 없이 순해 보이고 책만 읽게 생긴 사람인데 운동만 시작하면 눈빛이 달라진다. 처음에 친구가 등산 가자고 했을 때는 모든 게 쉬울 거라 생각했었다. 청바지에 가벼운 하얀색 반팔 티를 입고 나타난 나를 보더니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입고 산에 가면 위험해. 특히 청바지는 신축성이 없어서 산을 오르다 다칠 가능성이 있고 하얀 티는 산행하다 더러워질 가능성이 너무 많아."
등산복에 등산 스틱, 배낭, 등산 바지, 등산화까지 다 갖추어 입어야 한다는 게 친구의 생각이었다. '히말라야 가는 것도 아니고...' 몇 마디 불만을 말해 봤지만 친구는 엄격한 눈빛으로 말했다.
"제대로 갖춰 입고 가지 않으면 고생할 텐데... 너도 직접 경험해 보면 알게 될거야."
결국 나는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날은 근처 미술관에 들러 시간을 보내고 다음에 등산 모자에 스틱, 등산화에 바지까지 제대로 갖추어 입고 다시 친구와 만나기로 한 것이다. 친구는 '가까운 동네 산부터 가자.' 했다. 가까운 동네 산이라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동안 나름대로 매일 운동도 했고 체력도 많이 좋아졌다.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겨우 두 시간 걸린다는 말에 "그럼 점심은 내려와서 먹기로 해!" 큰소리를 쳤다. 그날은 동네 뒷산에 오르고 다음 날에는 다른 동호회 사람들과 수락산에 오르기로 했다. 몸을 만들어 산악인처럼 건강해지자고 결심했다. 만나기로 한 날에는 새벽 네시부터 깨어 설쳤다. 비록 두 시간 산행이겠지만 오며 가면서 먹을 커피와 시원한 물도 챙겼다. 간식거리도 잔뜩 챙겼다.
아침 일찍 친구를 만나러 갔다. 커피와 모닝빵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했다. 가볍게 산에 올랐다가 점심은 맛집에 가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무척 들떠 있었다. 내 등에 짊어지고 온 무거운 배낭을 친구가 걱정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배낭을 가득 채운 간식거리야 산행중에 다 먹어서 없어질 건데 싶어서다. 우리는 '동네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자신감은 등산 시작한 지 십 분도 안되어 다 무너졌다. 완만한 구릉으로 이루어진 미국 산과 달리 '한국 동네 뒷산'은 그 경사만도 놀랍도록 가팔랐다. 거기에 하얀 바위가 그 표면을 거의 덮고 있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하얀색 수직 벽이 세워진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처음으로 써보는 등산 스틱도 말썽이었다. 두 발로 바위 타기도 버거운 나에게 등산 스틱까지 들고 기어오르라는 것은 새로 걸음마를 배우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틀비틀, 바위산을 오르려니 식은땀이 났다. 경치 보는 것은 포기하고 오로지 한 걸음 앞만 보고 올라갔다. 계단 수백 개를 오르고 또 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결국 바위계단 근처에서 중심잡기도 버거운데 나무뿌리에 걸려 심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왼팔로 짚으며 넘어졌는데 처음에는 팔이 부러진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아팠다. 다행히 멍만 들었지만 친구 보기에 여간 창피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민망함에 헛웃음만 계속 웃었다.
"많이 아프면 내려갈까? 근데 괜찮다면 여기에 또 언제오게 될 지 모르는데 너를 꼭 정상까지 데려다주고 싶어. 건강이 최우선이긴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아깝잖아."
피도 나고 검게 멍든 팔을 보더니 친구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나도 그만두고 내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정상이 가깝다는 친구의 말에 오기가 생겼다. 열 살 남짓한 어린애들이 바위 사이를 뛰어오르는 것도 그렇고 내 또래 사람들은 나비처럼 날아다는 걸 보고 나서는 이를 악물었다.
'올라가보자 . 끝까지 가보는 거지, 무얼. 죽기야 하겠어?'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나를 바라보던 친구는 자신의 가방에서 반창고를 꺼내 다친 내 팔에 붙여 주었다.
"산에서도 언제든 이런 사고가 불시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구급약같은 준비물을 잘 챙겨가야 해"
처음에는 친구가 너무 조심성 많은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직접 다쳐보니 이제야 친구의 말을 믿게 되었다. 친구는 말 없이 내 배낭을 짊어지고 내 손을 이끌고 오르기 시작했다. 동네 뒷산이라고 우습게 봤던 걸 후회하면서 두 시간이 넘게 걸려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감회가 남달랐다. 내려오는 데 다시 두 시간 정도 걸렸지만 하산하는 길은 언제나 그렇듯 가볍고 쉬웠다.
"등산할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산을 오르고 내리는 일은 인생하고 비슷한 구석이 참 많아."
친구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태도로 산에서 내려오더니 한 마디를 던진다.
"오르막길은 항상 힘들지만, 오르막의 끝에는 편한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잖아?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놓으면 안 돼. 항상 사고는 방심한 가운데 일어나는 법이니까. 무사히 집에 잘 도착할 때까지가 항상 여행의 끝이라고 생각하거든."
이미 여러 번 앓는 소리로
"아이고 죽겠다"는 말을 했던 나는 친구의 말에 숙연해졌다. 거대한 애팔래치아 산맥에 올라가 봤다고 해서 작고 낮은 '동네 뒷산'을 쉽게 생각했던 것은 내가 아직도 인생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산이든 오르고 내리는 일은 고달픈 것이다. 모든 인생에 경중을 매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야 조금은 익숙해진 스틱 쓰는 법이라든가 배낭에 가득 음식을 담아온 미련스러움도 하나씩 배운 하루였다. 인생은 언제나 배우는 과정이고 누구에게서나 배움을 얻을 수 있다고 하더니 나는 동네 뒷산의 위엄을 새로 배우는 하루를 보낸 셈이다. 우리는 동네 근처에 있는 '갈비탕'집에 들러 뜨끈한 국물로 늦은 점심을 했다. 오후 네시가 훨씬 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길 위에서' 1권을 읽느라 하마터면 내릴 역을 지나칠 뻔했다. '길 위에서'는 요즘 빠져들어 읽고 있는 책이다. 주인공은 작가이며 여행가다. 미국 동부태생인 그가 아주 특별한 친구를 만나서 서부로, 북부로 떠돌아다니며 인생을 배워가는 내용이다. 책 내용처럼 인생은 정말로 길위에서 깨닫고 배우는 점이 참 많은 듯 하다. '길 위'를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결국은 길위로 돌아와 다음 걸음을 시작하는 것도 인생과 비슷한 점이다. 넘어졌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정상에 오를 수도 있고 넘어지지 않아도 포기하면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
운이 좋아서인지 다행스럽게도 내릴 역을 놓치지 않았고 산 정상에도 올랐던 하루다. 매일매일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히느라 내 정신과 생각이 다 해체되었다 다시 조합되는 느낌이 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기를, 더 나은 작가가 되어보기를, 더 좋은 글을 쓰다 죽을 수 있기를, 내 삶이 거름이 되어 괜찮은 작품을 남길 수 있기를.... 산 위에 기도하며 남겨둔 소원들이 조용히 속삭이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