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문득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졌다.
한동안 구름 낀 하늘만 보다가 새로 청명한 하늘을 만났을 때
지난 며칠 동안 마구 먹어댔는데도 몸무게가 오히려 내려갔을 때
새로 산 예쁜 옷을 입고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
나를 위해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카페를 찾아냈을 때
원하던 표현이 걱정보다 쉽게 형상화되었을 때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눈길이 예전보다 더 따스하다고 느꼈을 때
"사랑하고 있다."
고 고백하고 싶어 졌다.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걷다 바람 한 점을 만났을 때
깨끗하게 설거지된 그릇을 제자리에 정리해 놓을 때
지난해에 입던 고급 원피스가 지금도 잘 어울릴 때
당신이 보내준 음악이 내 마음을 흔들 때
내가 쓴 문장에 내가 감탄할 때
그리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당신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칠 때
아무 말 없이 웃어주는 당신의 눈을 들여다볼 때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다
멈췄다.
부드러운 태양빛이 나를 향해 웃어줄 때
피곤해져 돌아온 집이 아침 그대로 깨끗할 때
지난해 입었던 원피스를 본 사람들이 어디서 샀느냐고 몇 번이나 물어볼 때
당신이 마시던 맥주가 문득 마시고 싶어 졌을 때
그리고
당신에게 중독된 나 자신을 깨달을 때
그랬구나
사랑한다는 말은 가끔
뭐든 표현하는데 몹시도 모자란 말이었구나 알게 되면
사랑한다는 말은
아껴두는 것이 더 낫다는 걸.
사랑한다는 건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거라고
작은 눈빛과 미소로도 전할 수 있는 거라고
가벼운 키스와 스치는 인사만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거라고
그렇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