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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May 27. 2018

이상한 게 뭔데요?

이상한 정상가족

한 달에 한 번 가는 독서모임에서  골라 주신 책이다.   한동안  잭 케루악의 소설과  재즈 듣기에  빠져 있던  나에게  이 책은  재즈음악을  놓아두고 K-pop을 다시 켜는  계기로  다가왔다.    저자는  한국에서의  가족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   당면한 문제를  조용한 목소리로 다루었다.


어릴 때는  나중에  가족을  이루면  아이를  많이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낳은 아이들 뿐 아니라   대 여섯 명 아이들을 입양해서  대가족을 이루고  살고 싶다는 꿈을 가졌었다.   미국에 있을 때는  다른 나라에서  입양된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몇 번이나  맞닥뜨리기도 했다.    그중  한 명은   자신의  신체를  자꾸  절단하는  증상으로   입원했었다.   손가락  한 마디,  한 마디를  절단했던  그는  그때  겨우  서른여섯이었고  입원 당시  한 손에는   손가락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었다.    거의  모든  대화를  거부했기  때문에   겨우  인사만  할 수 있었던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가 한국에서  입양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에  대한 것에는 입을 열지 않았었다.    그에게는  가족이란  상처였고   증오,  미움,  배신의  함축된 응어리 같은 거였다.    덕분에  입양된 아이들의  입장이나  입양한 가족의  문제를  깊이 생각했던 적이 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자신의  가족은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다.   성인이 되어  돌아보면   부모님들은   어리바리할 때   나를  낳으셨고   여러 가지로  힘드셨지만  나를  키워주신 분들이다.   저녁마다  한 공간으로  돌아와   서로의  고단을  비비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오해나  서운함도 분명  있었다.  세상 모든 것들이  그렇듯  가족이란  떠올리면 '행복'이나 '그리움' 한 가지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기억을  지니고 있다.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보다는  서운하고  괴로운 기억도  많았다.  혼자서  살기도  고달픈 세상인데  가족까지 이루고 살려니  부담이 버겁게  다가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비혼 주의자의  대열에  끼어들었다.  


어제  전화 한 친구가  

"내가  무서운 이야기 하나 해줄까?"

하기에  들어보니

"지금 안방에  시어머니가  와계셔."

한다.    사랑하는 남편의  가족이지만  어딘지 불편하고  어색한  이름이 '시'자 붙은  가족들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지만   쉽게 낳을 수 없는 것도  문제다.   경제적인,  사회적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아이를  낳아 두면  어떻게든  자라겠지 하고  내버려 두지는 못한다.   적게 낳더라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강하고   자신의  아이는 최고가  되었으면  싶어 한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느낄 때는  비혼 주의자,   아이를  원하지 않는  부모가 된다.   분명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힘들지만  행복하고  축복받은 일일 텐데   '여건'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포기하게 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공감했던 것은  저자가  심도 있게 다룬  입양과  외국인 가정에  대한 문제였다.    이전 시대에는  다루지 않았던   문제를  열린 시각으로  다룬 책이어서,  작가의 논조가   설명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책을  좋아한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몇 년쯤  지난 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전자책만  읽게 되는 날이 올 거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다.   예전  가족의 의미가  생활과  생산의  단위였다가  지금은  변화한 것처럼  세상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가치관이  예전과  달라진 것뿐이지   이상한 것은  아니다.  '이상한 것'이란  내 생각과  다르다는 의미이지   비정상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지만  내 마음대로   변화를  무조건  거부할 수만은 없는 것처럼   시간에 따라  가치관이  변화하고   그에 따라  사회의 모습이 변화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단지  그 속에 사는  인간으로서  변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사는 것뿐이다.   


그런데  바꾸어  생각하면  우리에게  변화를 강요하는 존재도  사실은  없다.   변화에  굳이 발맞추어 가지 않아도  괜찮다.   '변화해야 한다,  변화하고 싶다'는 것은  세상 물정에  어두워지고 싶지 않은  개인들의  욕망이다.   이 시대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사상의  흐름에  합류하는 것은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비혼 주의자가  될 필요가 없듯이   당신이  원하는 가족의  모습이  다른 이들의  것과  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에게 있어  어떤 방식의 가족에 속해있느냐가  중요한  것은  가족은  가장 작은  사회적  단위이며   그 가족의 형태가  사회의  형태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세상의  주체로서   어떤  종류의  가족을  창조하고 싶은지  선택하고 싶은  당신에게,   혹은  세상이  너무 빨리 변화해서  적응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차근차근  지나간  세상을 정리해주고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대해  설명해 주는 이 책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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