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린 24
얼마 전 바나나 몇 송이를 산 적이 있다. 아침에 바나나와 커피로 식사를 대신했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지 작은 파리 같은 벌레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나나 근처에서 몇 마리만 보였는데 점점 그 수가 늘어났다. 바나나는 점점 줄어드는데도 날벌레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심지어 바나나가 다 없어지고 나서도 벌레 수는 줄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창문을 열어두고 일부러 벌레를 쫓아보려고도 하고 표백 살균제를 곳곳에 뿌려놓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조금 적어졌다 싶은 벌레의 수는 곧 다시 많아지고는 했다. 벌레들이 무엇을 먹고 번식하는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사진을 찍어 검색도 해보고 생물도감도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벌레는 더 많이 번식했다. 이제는 나 따위는 무섭지 않다는 듯 뻔뻔하게 눈앞을 날아다닌다.
친한 친구에게 조심스레 벌레 이야기를 했더니 다이소에 가서 '벌레 잡는 채'를 사보라고 했다. 전기 충전을 해서 두었다가 벌레가 채에 닿으면 전기 충격으로 죽게 된다는 말도 해주었다. 친구의 조언을 듣자마자 '벌레 잡는 채'를 사러 뛰어갔다.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에 같은 기능을 하는 도구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집으로 돌아와 사온 벌레 잡는 채를 충전기에 연결시켜 두었다. 충전되는 동안 사용설명서를 열심히 탐독했다. 채를 한 손으로 잡고 벌레 가까운 곳으로 채를 움직이면서 손가락으로는 버튼을 누르면 된다고 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채를 써보았다. 아무 소리도 없는 채에서 딱! 소리가 나더니 벌레가 동그랗게 몸을 말면서 땅으로 떨어졌다. 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던 벌레들이었지만 '딱' 소리와 함께 사라져 가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배드민턴이라도 하듯 허공에 채를 휘둘렀다. 한 동안 휘두르던 채를 멈춘 것은 마치 신이라도 된 듯 벌레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내 모습이 어딘지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바닥에 떨어진 벌레를 치우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벌레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 것인가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또 한 무리의 벌레를 발견했다. 어제 보다는 그 숫자가 적어졌다고 애써 생각해 보려 해도 어제 못지않은 수의 벌레들이 또 허공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물어보는 나에게 친구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날벌레는 아주 작아서 채에 닿아서 받은 전기 충격으로는 죽지 않는 것 같더라고. 잠시 기절은 했다가도 나중에 보면 다시 날아다니고 있는 걸 본 기억이 있어. 그래서 나는 벌레가 벽에 붙어있을 때 채로 벌레를 누른 다음에 한 동안 전기 충격을 계속해서 주는 방법을 써. 완전히 죽을 때까지 말이야."
친구의 경험담을 소중히 기억하며 나도 친구의 말대로 벌레를 잡아보았다. 벽에 붙어있는 벌레를 채로 가두고 한 동안 누르고 있으니 생뚱맞게도 사마천이 쓴 사기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제일 좋은 정치는 국민의 마음에 따라서 다스리는 것이고
그다음으로는 이익으로 국민을 유도하는 것이고
세 번째가 도덕으로 국민들을 설교하는 것이고
아주 안 좋은 것이 형벌로서 국민들을 겁주는 것이고
최악은 국민과 다투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 중에서
흔히 정치상황에 빗대어 인용되는 부분인데 나에게는 작은 날벌레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어쩐지 마음 불편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내 피를 빨아먹는 모기도 아니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과일을 먹는 초파리처럼 보이는데 이렇게 까지 죽여야 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좀 더 알아보면 날벌레가 싫어할 것들을 찾아내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굳이 다 죽이지 않더라도 집에서 쫓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손에서도 힘이 빠졌다. 채를 탁자 밑에 집어넣었다. 한동안 갖은 민간요법을 다 써보며 지냈다. 아는 언니의 말대로 계피 가루를 탄 물을 플라스틱 병에 담아 놓아둔 적도 있고 벌레가 싫어한다는 초음파를 발생시키는 기구도 사다 두었지만 벌레는 줄지 않았다. 과일도 더 이상 없는데 뭘 먹고들 살아있는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친구가 나에게 물어본 것은 그때쯤이었다.
"나 너 사는 집에 놀러 가도 돼?"
친구는 벌레를 극도로 싫어한다. 한국으로 돌아와 여러 가지 사소한 것들로 도움받은 걸 기억해 보면 아직 한 번도 초대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지경이기는 했다. 나는 몇 번이나 친구의 집에 가서 친구가 해주는 음식을 먹기도 했었고 영화를 보기도 했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더더욱 "안돼"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있잖아. 아직 아무도 초대한 적이 없어서...."
나는 소심하게 거절해 보았다.
"그건 나도 그래. 내 집에 놀러 온 사람도 부모님 말고는 너 밖에 없었단 말이야."
"그래....?"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유난히 깔끔한 성격의 친구가 수많은 날벌레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싶어서였다. 집에 도착해서 씻고 옷을 갈아입자마자 전기 벌레잡이 채를 들고 나섰다. 채를 휘두를 때마다
"미안해."
벌레들에게 사과하고 또 휘두른다. 결국 그날 이후 적당히 평화스러웠던 벌레들과 나의 공존은 끝이 났다. 벌레를 꼭 죽일 필요가 있을까 싶던 마음도 친구 앞에 내보일 내 자존심을 이기지 못했다. 청소도 다 해두고 벌레도 거의 없앤 어느 날 드디어 친구에게 물었다.
"언제 놀러 올 거야?"
친구는 언제나처럼 시크하게 대답했다.
"나중에 가도 돼? 요즘은 야근이 자주 있어서 시간이 안될 것 같아."
결론은 이러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친구가 놀러 오는 그 날까지 벌레라는 벌레는 다 죽여야만 한다는 것. 벌레들과 나의 운명은 생각보다 훨씬 잔인하고 슬픈 인연이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