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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Sep 18. 2018

추석 달

편린 25

엄마는  요리를 참 잘하셨다.  추석이면 조금씩이라도 집에서 송편을 빚어주셨다.  가족들이 떡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만들어진 떡을 사 오면  다 먹지 못하고  버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쑥가루를  넣은 것,  분홍색,  노란색으로  조금씩,  추석에  온 가족이 한 번씩 먹을  정도만  만들었다.  아버지는  번거로우니  마트에서  사다 먹자고 하셨지만   나는  그렇게 추석 전날 만들어 먹는 송편이 좋았다.   송편을  만드는  일보다는  가족들이  마주 앉아  송편을  만들며  이야기 나누던 순간이  좋았다.  아버지는  항상  늦게  퇴근하셨으니  집에는 엄마와  나,  여동생이 전부다.   여자들이  모이면  그렇듯  별것 아닌 일로  수다가  가득이었다.   


친척이  다  서울에 모여 살았으므로  귀성길에  합류한  일도 거의 없었다.   송편은  조금 만드는 대신 엄마는  고사리,  도라지,  마른 호박 같은 걸로  나물을  만드셨다.   갈비도  재우고  토란국도  만드셨다.   우리 집이  큰 집이었으므로   친척들은  우리 집으로  모였다.   그  친척들을  다  대접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아이고  허리야."

추석이 지나면  내 허리도 아팠다.   허리 아프다는 말에  엄마는  웃으며  말씀하셨었다.

"지금  이 일도  힘든데  옛날엔  어땠겠니?   우리  어릴 때는  밤새도록  송편 만들고  음식을 했었단다.   그래도  세상이  이렇게 좋아져서  다행이야.   너희 세대는  우리처럼  살지 않아서  난 참 좋아."


추석날  아침이면  한복을 챙겨 입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음식을 함께 했다.   그날의   음식 맛은  엄마와의  따뜻한  기억과 과  추억으로  가슴 한가운데 깊이 남았다.  추석날  저녁이 되면 엄마는  꼭  그러셨다.

"추석이니까  달 보면서  소원을  빌어야 한다."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 대신  명왕성이니  블랙홀이니  태양의 흑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서늘하게  내려다보던  달의  둥근 얼굴이  다정하게  느껴지던 밤이었다.   


 나중에  커서  혼자  보내던  수많은  추석을  버티게 해주었던  것도 바로  그 기억 덕분이었다.   가게에서  사 온  송편 몇 조각을  맛보면  엄마와  함께  보냈던  그 순간도  맛볼 수 있다.   송편 맛 나는  기억 덕분에  그동안  보냈던  추석은  명절다워졌다.   떠들썩하게  맞아들일  친척이 없어도,     미리 예매해서  떠날  고향이 없어도  추석은  추석이다.  추석은  송편으로,   엄마의  미소로,  크고 둥근  보름달로  기억된다.   달은  한 낮 빛나는는 태양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묵묵히 제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태양이 사라진  하늘을  지키며  어두운 세상을  비춘다.    가족을 위해  송편을 빚어주시던  엄마의  미소처럼,   달빛은 절망한  사람들의  손길을 잡아끌며  말해줄 것이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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