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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게나 전시장에서, 박물관에서 그릇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릇이란 만들어진 재질과 색깔, 용도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굳이 박물관에 전시된 그릇이 아니라도 그릇이라면 당연히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무겁지만 도자기로 된 밥그릇과 국그릇을 상에 놓으면 고전적이고 소박한 웃음소리가 차오른다. 유기그릇은 한국적이어서 흰 밥 위에 나물로 장식한 후 반숙된 계란 프라이를 서니 사이드 업으로 살짝 올려놓아야 할 만큼 우아하다. 가볍고 예쁜 색깔 접시에는 알록달록 카나페와 김밥처럼 아기자기한 속삭임이 찰랑인다. 한 손에 다 들어오기도 버겁게 크고 깊은 맥주잔에는 시원하고 짜릿한 여름이 크림색 거품처럼 넘실댄다. 양은 냄비에는 고단하고 서글픈 외로움이, 두꺼운 주물 냄비에는 오래 끓여야 제맛이 나는 국물처럼 진한 마음이 담긴다. 그릇은 제 나름의 용도와 느낌을 지니고 존재한다.
요즘 수채화를 한 장 그렸다. 고등학생일 때 수채화로 헤세의 초상을 그려 책상 앞에 붙여둔 일이 있었는데 이번엔 움베르토 에코의 초상화를 그려 벽에 걸어둘까 해서다. 문구점에서 수채화용 물감을 사 오고 동글동글 하얀색 도자기 그릇에 물을 담았다. 수채화 특성상 투명하고 그윽한 색이 나도록 붓을 자주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깊지 않은 그릇이어서 인지 붓이 담기지 않는다. 붓을 휘저어 물감을 씻어낼 때에도 도자기가 깨질까 봐 조심하느라 원하는 색을 낼 수 없다. 몇 번 그림을 망칠 뻔하다 결국은 예쁘고 고운 도자기 그릇을 치우고 깊고 큰 플라스틱 그릇을 쓰기로 한다.
나도 예쁜 그릇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화려한 영국식 찻잔이나 기하학적 무늬로 마음을 끄는 중동의 도자기처럼, 황금색 반짝이는 이집트식 물병처럼 아주 아주 특별하고 비싼 그릇이 되었으면 했다. 세상에서 단 하나 있다는 보석 박힌 주전자나 일 년 내내 향기로 젖어있을 맑은 크리스털 꽃병이 되고 싶어 했다. 그때 나는 어렸고 그릇이란 뭘 담아야 쓰임새가 있다는 걸 몰랐던 것 같다. 사실은 나라는 그릇에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지, 담는다면 얼마나 담게 될 것인지, 쓰임새는 어떤 것인지 몰랐던 모양이다. 내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길고 힘들어서 때때로 처음부터 스스로의 용도가 정해져 있고 쓰임새대로 사용되는 그릇이 부러웠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배우는 것들이 있다. 이미 정해져 버린 그릇 자체의 재질보다는 그릇 안에 뭘 담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고귀하게 만들어진 그릇도 있지만 고귀한 것이 담기면 그 그릇도 고귀해진다는 걸. 겉모양이 화려하고 예쁘다고 해도 속이 비어있다면 쓸모없는 그릇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여태 살아온 내 인생만큼 긴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나 더 허락될지 알 수 없지만 정해진 모양에 안주하며 만족하기보다는 변해가고 채워가는 시간을 통해 무엇을 얼마나 담을 것인지 고민하고 배워가는 과정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믿는다.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들을 담으며, 때로는 비워내며 커지는 그릇의 모습, 내 인생의 다른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