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풍경 소리

계절과 계절 사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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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인

그렇게도 뜨겁던 여름이었는데 지난 며칠동안 내리던 비로 더위가 식었다. 대신 모든 것이 젖어버렸다. 그 더위가 식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내 말에 친구는 "벌써 9월이네. 이렇게 금세 내년이 될 걸." 하고 대답했다. 이렇게 여름이 끝나고 있구나, 문득 깨달았다.

계절은 항상 떠나고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같은 이름의 계절도 항상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가 떠나곤 했다. 어떤 여름은 첫사랑을 떠나보내고 앓다가 보냈고, 어떤 겨울은 참 따스했었다. 이렇게 계절을 떠나 보낼 때는 몇 년 전 지인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난다. 그때 우리는 '언제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에 대한 이야기를 한동안 나누었다. 나는 '사랑에 빠졌을 때'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사랑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인은 '이별하고 나서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건 그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을까, 막연히 추측하며 대화를 끝냈었다. 아직도 나는 사랑에 빠졌을 때와 이별하고 난 후, 언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로 열병처럼 마음이 들떠있었고, 떠나 보낸 후에는 마음의 상처 때문에 몸도 시간도 앓았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온도는 너무 뜨거워도, 너무 차갑게 얼어 붙어도 곤란하다. 평상시의 체온 보다는 조금 낮고, 차가운 돌바닥 보다는 좀 더 따뜻한 온도가 좋다. 너무 행복한 것도 아닌, 가슴 아프게 슬프지도 않은 시기가 좋다. 여름과 가을 사이, 간절기의 짧은 한때처럼 아직은 사랑했던 감정이 남아 다 이별하지 못한 순간이 좋다. 헤어졌지만 떠나지 않았고, 미워했지만 이제는 씁쓸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랑과 이별 사이, 행복과 슬픔 사이, 그리고 계절과 계절 사이의 한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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