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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Oct 29. 2018

같이 여행가요

여행의 책

언젠가부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다.
'잠'을 읽은 이후부터였던가.'상상력 사전'을 읽은 후부터였던가.그의 책은 항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은 묻는다.
"당신은 초현실 주의자인가요, 아니면 실존주의자인가요?"

이 책은 중고 서점에 들렀을 때  얼른 손이 갔던 작품이었다.  두께가  얇고  크기가 작은 것이  항상 가방에 담고 다닐 수 있겠다 싶도록 앙증맞아 보였다.  덕분에  책을 산 날 이후  뜨겁던 여름을  거의 매일 나와 함께했던 작품이다.  

어떤 책을 좋아하고  특정 작가를 좋아하는 것은 완전히 내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일이다.  아주 뜨겁지도 않지만  또 딱딱하게 굳을 만큼 차갑지도 않은 온도,  딱 그만큼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좋았다.    처음에는  여행에 대한 책일까  첫 표지를 열어보고 읽으면 읽을수록  '철학서'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는다.  세상을 여행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독자 자신의 내면을 여행하는 것에 대한 책이었으니.

공기와 흙과  불과 물의 세계를 여행한다.  중의적인 단어를 사용했으므로  여행기라기보다는 '시'에 가깝다.  아니,  묵시록이나 예언서에 더 가깝다고 보면 된다.   언뜻 보면 공기와 흙, 물과 불로 세상을 나누어 놓은 것 같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그 모든 요소가  독자의 영혼,  의식세계,  삶을 대하는 방식 같은 것들의 전체를 아우르는 요소임을  깨닫게 된다.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두기로 하자.  
인생에 대한 고찰을  시처럼 풀어나갔다고는 해도  이 책은 다소 지루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드라마처럼  극적이지도 않고  영화처럼  CG 처리도 할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은  아침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정리해야 하고  배가 고프면  뭔가를 먹어야 하는 단조롭고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그 생활은  지루하지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밥벌이를 하기 위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꿈을 펼칠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일상의 무게를 참고 견딘다.  

일상의 무게가  머리를 짓누를수록  '여행'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달콤하고 신성해진다.  여행은  어디론가 떠나는 행위고  '삶의 굴레와  궤적에서 벗어나는 일탈의 순간이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놓고 갈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갑자기 밀려든 일 때문에  휴가 내기 어려운 직장 스케줄이라든지 별일 없이 잘 쓰던  핸드폰이 갑자기 고장 난다든지 하는..  다음 주까지 써야 할 원고가  있다거나   갑자기 부모님이 아프시다는 소식을 받은 날들은.
마음에도  무거운 돌을 얹어놓은 것처럼  지치고 축 늘어지던 날들은.
좋아하지 않는 일들을  선택지 없이 해야만 하는 날들은.

양손에 들고 있는 돌덩이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크기는 타조 알만 하다.
색깔은 어두운 회색쯤
무게는 양손으로  들고 서 있기 약간은 버거운 정도라고 상상해 본다.

상상을 더 해 볼 수도 있다.  나에게는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이 있다.   비행기 티켓과  여권,  여행을 떠날 만큼 충분한 돈이 함께 들어있는 지갑은  배낭 안쪽 주머니 깊숙한 곳에 들어있다고  상상해 본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가장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맞다.
들고 있던 돌을  내려놓는 일.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어쨌든 빈손이 되어야 할 테니 말이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여행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어느 지역으로 갈 것인지,  그곳에 도착하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한다.  
정보를 찾아보고  시간을 정한다.
정보를 검색해 봐도 좋고  가이드북을 찾아봐도 된다.
가장 좋은 것은 함께 갈 친구를 찾는 일 일 수도 있다.
나보다  그쪽 지역에 대해 좀 더 아는 친구,
길 눈이 밝고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친구.
길을 잃어도  당황하지 않고  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친구.
함께  가는 여행의 목적과  취향이 비슷한 친구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런 친구가 필요한 경우 첫 장을 펼쳐 보면 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친구 같은 녀석이므로.
책 읽는 내내 함께 웃고  울고  서로를 다독이며 위로받는다.
읽기 시작하면  책장을 덮기 싫은 책.
역시 베르베르...


'그대가 바라보고 있는 나는
작은 글자들로 덮인 네모난 종잇장이다.
이제 그런 식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은
그만하는 게 좋겠다.
그대의 눈길이 나를 쑥스럽게 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하고
그대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한 권의 책인  내가 그대로 하여금
경이로운 일을 하게 했다고.
그러나 진정 경이로운 것은
그것을 수행한 그대,
오직 그대뿐이다.

안녕.'

- 155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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