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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Oct 24. 2018

제1장

첫 번째 이야기




     

많은 순간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생각해 보라.

오른쪽에 있는 적병을 먼저 죽이고  나서 왼쪽으로 몸을 돌리는 것과,  왼쪽에 있는 두 명의 적을 먼저 죽이고 오른 쪽으로 총구를 돌리는,  두가지 전혀 다른 행동의 결과가  어떻게 다를 것인지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군인으로서 적진에 침투했고,  작전에 따라 그들을 조준하고 쏠 뿐이다.  머릿속에 가득한 지식과 생각은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다.  전투중 가장 쓸모있는 것은 동물적인 감각과 반사신경,  그 순간 몸의 주인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지는 육체뿐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레이첼은 아주 쓸모 없는 군인이었다.  그녀는 어제 훈련소를 제대했으며 새로 지급받은 티타늄 액체 갑옷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체구의 소유자였다.  헬멧을 쓰고도 무게는 겨우 백그램을 넘지 않는 액체 갑옷은  원체 가벼운 그녀에게 아무 도움도 안되는 것처럼 보였다.  

‘번쩍’

적이 쏜 레이저빔은 하늘에서 백여개의 열선으로 나뉘어 쏟아져 내렸다.  정확히 말하면 백 삼십이개의 열선이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우리쪽 적병을 찾아내고 쏘아져온다.  붉은 레이저빔이 레이첼 바로 머리위에서 터졌다.

‘윽’

비명과 함께 몸을 피하는 그녀의 어깨에는 ‘글리제’ 라는 이름이 새겨진 방패모양 표식이 잠시 반짝이듯 드러났다가 곧 사라진다.  다행이다.  자신을 조준한 듯한 레이저빔을 피해냈으니 순간이나마 뿌듯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훈련소에서 지겹게 반복했던 구르기와 달리기 훈련이  이런데서 쓰일줄은 몰랐다.  그녀는 들고 있던 레이저건을 고쳐잡고  적병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퍽’

작은 비명소리와 함께 땅이 패이는 소리가 들린다.  곁에서 달리던 누군가가 넘어졌다.  언뜻 눈에 들어온 군인은 모래가 많이 섞인 바닥에 코를 쳐박고 엎어졌나보다.  충격으로 반쯤 벗겨지는 헬멧 사이로 짙은 갈색 머리카락이, 빨갛게 물든 어린 소년의 얼굴이 보인다.  아마 열 여덟.. 아홉쯤 되었을까.  레이첼은 달리는 걸음을 늦추지 않고 생각했다.  

'어린아이구나.' 

 입고 있는 군복으로 미루어 볼 때 글리제 방위군 보병부대중 한명이다.  그가 누구인지, 다쳤는지 아니 살아있는 것인지 확인할 시간이 없다.  그럴 여유가 없다. 신병 레이첼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는 데 급급하다.  아니, 정확히 설명하자면 적을 공격할 무기로서 전투력을 보전하는 것 만으로도 버겁다.  

‘그냥 죽으면 안돼.  한 놈이라도 죽이고 죽어야 한다.’

훈련소 교관이 했던 말이 귓가에서 잉잉댔다.  레이첼은 부드러운 모래구덩이 곁을 지나  그림자를 만들고 막아선 붉은색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죽어라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뛰어온 거리는 겨우 십여미터밖에 안된다.  적진과의 거리가 멀어서인지 제대로 된 적군의 그림자도 못 봤다.  

‘적이 멀리 있는 경우에는 총을 쏜다.’

교관의 말은 이런 순간 의심없는 교과서와 같다.  레이첼은 날아오는 레이저빔쪽을 향해 총을 조준했다.  장전된 레이저 총은 그녀의 손끝에서 가볍게 떨렸다.

     

뭔가가 그녀 바로 곁에서 ‘푹’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가 방금까지 몸을 기대어 있었던 바로 그 바위 밑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어떤 생명체가 레이첼을  밀쳐내지 않았다면 폭발로 가루처럼 바수어진 것들은 바위 밑 모래흙이 아닌 레이첼의 액체 갑옷과 몸뚱이였을 것이 틀림없다.  레이첼을 향해 쏟아졌던 레이저 총알들은  레이첼이 방금까지도 자리잡고 앉아있던 그 곳위에  다섯 번이나 더 쏟아져 내렸다.  한 사람의 육체정도는 흔적조차 알아볼 수 없게 바수고 태워버린 것이다.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지고도 몸은 다치지 않았다.  레이첼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을 밀쳐낸 생명체가 무엇인지 확인하려는 생각이다.

“이 멍청아!”

인간이었다.  자신과 같은 액체 티타늄 갑옷을 입은 걸 보니 글리제 행성 소속 군인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같은 갑옷이라고 해도 상대의 것은 좀 달랐다.  레이첼이 입은 것이 밋밋하고 장식도 없는 기본형이라면 상대의 것은 장착된 무기가 훨씬 많다.  레이저총도  총신이 아주 가느다란 것에서부터  두꺼운 것, 중간 것, 연발총까지 여섯 개나 달려있다.  거기에다 칼도 장검과 단검 골고루 달려있는게 보였다.

“정신 차려!  적에게 우리 위치를 다 알려줄 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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