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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3. 2018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트루먼 쇼

얼마 전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카페에서  앉아 책을 읽다가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나왔기 때문이다.

평일 오전인데도  카페는 노트북을 들고 와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덕분에 책이 찍힌 배경에 자꾸 사람들이 함께 찍혔다.   SNS에  그 사진을 올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배경을 잘라 내고   보여주고 싶은 색으로 약간의 보정을 한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남기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은 잘라낸다.'

사진이라는 예술 도구의 특징이며 장점이다.    어쩌면 SNS도 마찬가지다.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한 순간을 잡아 보여주기 싫은 것은 잘라내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것은.


트루먼 쇼는  그런 것들에 대한 영화였다.   삶에 대한 진심과  겉으로 보이는 삶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작은 섬에 사는 30세 평범한 회사원  트루먼 버뱅크'는 누구나 꿈꾸는 완벽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아름답고 우아한 아내와  어머니,  좋은 친구들과  안정된 직장을  가진 남성이다.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항상 웃음 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있을 때는 곧잘 슬픈 표정을 짓고는 한다.



"우리는 진짜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 눈 앞에 보이는 세상만을 진짜 현실로 착각할 뿐이다."

-영화 트루먼쇼에서



그의 삶은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왔다.


그를 사랑해 주던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실종되었다.  모험가가 꿈이었지만  현실은  네모진 은행 책상에 갇힌 '성실한 은행원'이며 사랑하던 여학생이 있었지만 결혼하게 된 아내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대로'  이루어지는 중이다.  트루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것이 다 현란한 가짜였다는 걸로 허탈해지는 데서  영화는 획기적인 반전을 가져온다.


SNS 계정을 가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편집'된 삶을 보는데 익숙하다.    봄에는 꽃 사진,  여름에는 바다,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눈으로 덮인 사진으로  도배하고  맛있는 음식 사진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그 사진들이 보여주는 '상(像)' 사이에  행복이나 사랑이  숨어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트루먼이 피지로 떠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아내는 그를 나무라며 말한다.

"우리에게는 갚아야 할 집세와 자동차 값이 있어요.  아이는 낳지 않을 건가요?  제발 그런 것들에 신경을 좀 쓰세요."

장난감처럼 예쁜 집에서  미인 아내와 살며 자동차를 굴리고 평범하게 사는 게 진정한 행복이라면  트루먼이  틀린 것이다.  이 영화의 묘미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주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데 있다.


내 삶에 스며 있는 '진정한 행복'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그리고

그 행복을 바라보는 내 시각에 대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아름다운 일이다.  트루먼이 모험을 떠나겠다고 다짐할 때마다  '세상은 위험한 곳이야!  이곳이 가장 안전해!'를 속삭이는 사람들은 트루먼의 선생님이거나 가족이거나  가장 친한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충고가 진심일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트루먼은 항상 꿈을 접고 일상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가슴 한구석은 언제나 공허하고 쓸쓸하다.   


'꿈을 찾아 떠나는 것'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자유의지 중 하나다.   그 꿈을 접고 포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이유를 가진다.

그 첫째는 꿈을 알지 못하는 경우.

다시 말하면 자신의 잠재 능력을 깨닫지 못하거나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유명한 사진작가인 데이비드 두쉬민은  '프레임 안에서'라는 저서에서

'비전을 보정하는 필터는 없다.'

는 말을 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볼 수 있는 세상은  비전을 가진 사람이 보는 세상과 다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과  가지지 못한 것들이 뭔지 파악하지 못하고  무조건 달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잊어버리게 된다.   진짜 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 추구하는 것을  따라가는 곳에 있다.  인간에게 꿈이나 비전은  세상을 바라보는 잣대와 같다.  그 잣대가 없을 때  보이는 것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삶의 행복을 향할 방향을 잡지 못한다.  


두 번째는 꿈은 있지만  트루먼의 경우처럼  '주위의 반대로' 꿈을 접는 경우다.   꿈을 접고도  행복했을까?   포기했으니  안심했을까?   그렇다면 그런 것이고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꿈을 포기한  당사자뿐이다.   주위 사람은 그가 진정으로 행복한 것인지 판단할 의무도  자격도 없다.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꿈을 포기한 사람은  나름대로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며 살면 그뿐이다.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있었다. 프루스트에게는 셔터를 내린 창문이 있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에게는 음이 소거된 집이 있었다. 딜런 토마스에게는 소박한 헛간이 있었다. 모두가 말들로 채울 허공을 찾는다.”

—패티 스미스 『몰입 Devotion』



잠든 모습,  혼자 거울을 들여다보는 순간,  친구에게만 고백하는 진심들을  누군가가 훔쳐보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기분이 된다.   이 영화는 다른 인간의 삶을  죄의식도 없이 들여다보며  나름대로  판단을 내리고  '너는 그런 사람이야' 정의 해 버리는,  결국은  어떤 사람의 숨겨진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의 프레임에 가둬버리는 행위를  적나라하게 그렸다.   남의 일 같지 않아 기분 나빠지는 이유는  요즘 공포로 번지는 '몰카' 이슈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트루먼은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 위해 삶이 조작되는  피해자다.


짐 캐리의  씁쓸한 웃음 뒤에 상당히  무거운 주제가  숨겨져 있음을,  돌이켜 보면  우리 모두  같은 문제를  떠안고 있음을,  다시 말하면  누구나  트루먼과 같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음을,   피해자가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내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영화였다.   


우습지만 이상하게 슬픈 이 영화가 2018년 12월에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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