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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08. 2018

제2 장

     

주인공: 아레스 (남성, 35) ‘핏빛 석양’ ‘저승사자’ 같은 별명의 소유자.  페가수스 행성 방위군 소속이었지만 글리제 행성 스파이로 파견되었다. 7년 전 글리제 행성을 탈출하고 페가수스 행성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

     

에리얼 (여군,  벨로나와 같은 부대 동료,  벨로나가 신병일 때부터 함께 전장을 누빈 전우)

     

레이첼 ( 여군, 벨로나 부대 소속 신병) 훈련소를 막 제대하고  행성 방위군에 배치된다.

     

호세  (레이첼의 선배) 종이책읽기와  클래식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다.  저격수.

     

이브; (페가수스 행성 소속 여군)  아레스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여군. 아레스 보호를 맡고 있다.

     

돌아온 것을 환영하네.”

장군은 평소와 다르게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를 향해 경례를 하고  함께 돌아온

부상자 명단을  담당자에게 넘긴다.  

갑옷이 너덜너덜 하구만.  헬멧도 새로 받아야겠는걸.  고생 많았네.  가서 푹 쉬고  저녁에는 참모 회의에 참석하게.”

!  알겠습니다!”

     

이번 전투는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한 밤중에 급습을 받았고  전우  대부분을 잃었다.  살아남은 전우 반 이상은 부상자였다.  삼천 명이 정원이라는 수송선이 거의 가득 찰 정도였으니까.

     

나는 또 살아남았다.

이번 전투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싸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살아남을 의미를 찾지 못해서 싸우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매 번 살아남았다.

살아남았으므로  나는 결심한다.

조금 더 살아남아볼까.

페가수스 행성 군을 다 죽여버릴 때까지,   전사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낼 때까지.  

     

갑옷을 벗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사격연습장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벨로나  중령님!  전투에서 막 돌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오늘도 쉬지 않으십니까?”

나에게 연습용 총을 건네주던 사병이 말한다.  전투에서 막 돌아온 내가 트레이닝 복을 입고 나타나 사격연습을 한다는 게 이상한 표정이다.  그는 내 얼굴을 신기한 동물을 연구하는 것처럼  흘낏거린다.

저격용으로 줘요.  총신이 길고  얇은 것으로.  정확도 가장 높은 걸로.”

내 말에 그는 높은 곳에 걸려있는 총을 꺼내왔다.

이번에 새로 나온 모델입니다.  소음도 없고 가벼워요.  이렇게 접어서 넣으면 칫솔만큼 작아집니다.  저격용으로는 최고죠.”

     

전투가 끝났으니  할 일이 없다.  사격 연습,  근력 운동, 정신력 강화 운동, 발란스 유지 운동,  그리고  저녁에는 작전회의에 참여한다.  조금은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지 않은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므로.  제정신으로 살아남을 자신이 없으므로.

     

훈련을 다 끝내고 샤워를 마쳤다.  깨끗한 새 군복을 입으니 불편한 예복이라도 입은 듯  어색하다.  머리를 빗어 올리고  중령 마크가 들어있는 모자를 쓴다.  작전회의에 들어갈 시간인 것이다.

작전회의에는 말 그대로  군 수뇌부 간부들이 거의 출석해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가장 오래 살아남은 사람은 나 한 명뿐이었다.  다른 장교들은  나보다 늦게 전투에 합류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신병일 때부터 함께 전장을 누빈 친구가 한 명 있기는 하다.  작전회의 때마다 내 바로 옆자리를 차지하는 에리얼이다.

내가 전투에 직접 참여하는 것과는 달리  에리얼은 신무기 개발팀에 속해 있었다.  상대적으로 전사할 가능성이 적은 부서인 셈이다.    

     

회의장에 들어가  내 자리를 찾아 앉자마자 정복을 입은 에리얼이 다급히 뛰어들어왔다.   그녀는 내 옆자리를 차지하며 싱긋 미소를 날렸다.

살아있었구나.”

너도.”

"어제 전투 피해가 컸다고 들었어.  네 걱정 많이 했지."

이번 전투는 엉망이었어.  그놈들이 어디에서 총을 쏘고 있는지 전혀 파악을 못했으니까.  달이 떴는데도 전투를 하다니.  그것도 야습을 하다니... 치사한 놈들이야. 페가수스 행성 놈들.”

내 말에 에리얼은  책상 위에 놓인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쭈욱 마시고 탁 소리가 나게 잔을 내려놓더니 대답했다.

역시 페가수스 행성 놈들은 어쩔 수 없나봐.  글리제 행성 방위군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이야.  그런 걸 보면 글리제 행성 주민과  페가수스 행성 주민의 조상은 원래 같은 종족이라는 가설은 틀렸다고 봐.   눈으로 봐도 두 종족이 전혀 다르게 생긴 걸 알 수 있어.  페가수스 행성 사람들은 더 야비하고 치사하게 생겼잖아.  딱 봐도 알아차릴 만큼.  그에 비해 우리 글리제 행성 사람들은 훨씬 부드럽고  착하게 생겼어.”

에리얼은 흥분해서 떠들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 말을 멈추고 내 눈치를 봤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읽지 못한 척  앞에 놓인 자료를 뒤적이며 읽는 척했다.

괜찮아, 이젠.

7년이나 지난 일인걸.

     

어젯밤 붉은 달 행성에서  전투중 글리제 행성군이 페가수스 행성군으로 부터 야간 급습을 당했다.  여태까지 양쪽 행성간 전쟁 200년을 했지만 야간 급습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 덕에 이번 전투에서 글리제 군은 처참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치사한 놈들!”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졌다.  주먹을 불끈 쥐고 마구 흔드는 장교도 있다.

조사 결과  페가수스 행성에서 어젯밤 작전을 지시했던 새로운 인물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여태까지는 크게 드러나지 않던 인물인데...”

스크린에  남자 얼굴 사진이 떠올랐다.

이름은 미상, 계급은 대령, 부서는.. 그게 참 재밌는 게  행정병 소속이다.  직접 전투에 관여하지 않는 부서 근무자가 어제 작전을 지휘했다는 게... 무슨 의미라고 생각하나?  의견 있는 사람?”

     

그때였다.  옆에 앉아있던 에리얼이  나를 바라본 것은.  나도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맞지?  저 사람. 그... 같은 사람인 거 맞지?”

설마.

에리얼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스크린이 뚫어져라 바라보기만 했다.

짙은 눈썹,  남성적인 콧날,  웃으면 부드럽게 말려 올라가던 입꼬리,  부드러운 턱선, 장난기 가득하던 눈빛.

설마.

소곤거리듯 달콤했던 목소리,  단단하게 잡아주던 커다란 손, 가끔 슬픈 눈으로 하늘을 응시하던  얼굴.

설마, 아니겠지.

아니지?  설마... 아레스... 아레스는 아니겠지?”

에리얼은 숨이 막힌 듯 가슴을 한 손으로 몇 번 두들기더니  반쯤 남아있는 아이스커피를 물 마시듯 쭈욱 들이켰다.

말도 안 돼.”

겨우 입을 열고 나온 말이 그거였다.  

말도 안 돼.

     

세상에는 말이 되는 일 보다 말이 안 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배운 적이 있었다.  그것도  아프게.

죽을 만큼 아프게 배운 적이 있다.

7년 전에,  내가 아직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아직은 삶이 소중했던 그때, 매일 살아있음에 행복했던 그때,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배운 적이 있다.

죽을 만큼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어떤 고통은 죽어도 견디기 어려울 만큼 깊은 것도 있었다.  그런 고통에 노출된 인간은 변하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인물로.  

차라리 죽기 위해 전투에 뛰어드는 기분을 배웠다.

증오와 저주, 미움이 내 영혼을 잠식해 가는 꼴을 보면서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7년 전과는 얼굴이 좀 달라졌다.  냉정해졌다고 해야 할까,  사무적으로 변했다고 할까, 아니, 더 늙어버린 얼굴이라고 해야겠다.

그러나  나는 곧 알아보고 말았다.

그의 얼굴을.

     

행정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대령이 실제 작전을 지시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누군가의 질문에 진행자는 스크린에 다른 사진을 띄웠다.

이 건물, 페가수스 방위군 본진입니다.  문제의 인물이 이곳 3층 사무실로 출근한다는 것과  그의 관사는 지하 1층이라는 것도 새로 들어온 정보입니다.”

지하 1층이라면 그다지 안전한 곳은 아닌데  그곳을 관사로 줬다는 걸 보면 페가수스 쪽에서 볼 때 중요 인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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