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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4. 2018

제1장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

1화 - (2) 


     

퇴근하기 전 내가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친구 시연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시연은  택시를 잡아 타고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시연이 올 때까지  근무하는 병원 근처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가 뭔가로 맞은 것처럼 아프고 속이 메슥거렸다.  점심을 건너뛰었지만 배고픔도 느끼지 못했다.  종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할 때마다 심장이 죄어드는 느낌이었다.  카페 안으로 달려 들어온 시연도  창백하게 질린 것은 마찬가지였다.  

"괜찮니?  경찰서에서 연락 왔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카페 의자에서 일어서는 데 어찔어찔 현기증이 났다.  혼자서는 몇 걸음 걸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  시연은 그런 나를 부축해 택시에 태웠고  우리를 태운 택시는  나른하도록 맑은 겨울 공기를 가르며  경찰서를 향해 달렸다.

     

형사는 퇴근 후 가까운 마트에 장이라도 보러 가면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남자였다.  짙은 눈썹에 양쪽 눈 끝이 처져서인지 웃을 때마다 무척이나 선량해 보이는 데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듯 볼이 잘 붉어지는 모습이 경찰관이라기보다 자선봉사 단체 직원처럼 보였다. 


"손동원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소개하고  어디선가 믹스 커피 두 잔을 가져왔다.  나와 시연 앞에 한 잔씩 커피로 채워진 종이컵이 놓였다.   나는 예의상 커피를 마시는 시늉만 하고 종이컵을 다시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긴장한 탓인지 커피 맛도 느낄 수 없다.  종이컵에는  손바닥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묻어났다. 

     

“어젯밤에 남 종훈 씨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동해안 인접 작은 마을에서 방파제에 걸려 떠 있는 것을 낚시하러 간 분이 발견한 모양이에요.”  

     

나를 경찰서로 부른 이유를 간단히 설명한 형사는 앉아 있던 책상 오른쪽 위 서랍을 열어 핸드폰과 허리띠, 지갑 같은 것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자세히 들여다볼 것도 없다.  종훈이 항상 쓰던 물건들이었다.  특히 그의 핸드폰 케이스는  내 것과 똑같은 것으로 생일 선물로 준 것이었다. 비닐 백에 담긴 종훈의  핸드폰을 본 순간 가슴이 쿵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낯익은 물건 있습니까?”

형사의 질문에 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핸드폰이 말입니다.  바닷물에 젖은 데다가 배터리도 다 나간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연락드리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약혼녀 분이 걱정 많이 하셨겠습니다.”

.....”

얼굴을 양 손으로 감싸 쥔 내가 흐느끼느라 대답을 못하자  곁에 앉아 있던 시연이 대신 대답해 주었다.  

약혼녀 분이 피해자를 마지막으로 만나신 게 언제인가요?”

일주일 전이라고 들었어요.  저녁에 데이트하고 종훈 씨가 보라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갔다고 하더군요.”

역시 시연이 내 대신 대답해 준다.  내가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까지 내며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딱했는지 형사는 책상 위에 놓인  휴지를 한 뭉텅이 가져다주었다.

"일주일 전  퇴근하고 종훈 씨가 근무하는 병원 근처에서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어요."

손 형사는 앞에 놓인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내 말을 받아 적는 모양이었다. 

" 그때가 몇 시쯤이었습니까?"

"저녁 일곱 시쯤 되었을 겁니다.  일본 음식을 잘하는 식당에서  돈가스를 먹었어요.  종훈 씨는 돈가스와 함께 나오는 생맥주를 마셨고요.  딱 한잔만 마시겠다고 하더군요.  그 사람은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생맥주를 찾는 버릇이 있거든요. 그래서 특별히 기분 좋을 일이 있는 거냐고 물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피해자가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책을 거의 마쳤다고 하더군요.  마지막 부분만 수정하면 된다면서.  술 한잔 더 하고 싶다는 말도 했어요."

"그래서  두 분이 식당에서 나와  바에 가신 거로군요."

형사는 주의 깊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물었다.

"그때가 몇 시쯤이었습니까?"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저녁 여덟 시는 넘었던 걸로 생각합니다.  그때 종훈 씨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면서  벌써 여덟 시가 넘었다고 했던 말이 기억나거든요."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근처 호텔에 있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술을 마셨다.  그와 집 앞에서 헤어진 것은 밤 열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종훈은  피곤하다며 얼른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했다.   휴가를 낸다거나  바닷가 마을로 향할 거라는 말은 전혀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평온했고  평범했었다.  종훈과의 마지막 데이트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렇게 멀쩡하던 종훈이 죽다니...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자  눈물이 또 와락 쏟아졌다.  




그렇다면  지난 일주일 동안은 피해자와  약혼녀분이 서로 전혀 연락이 안 되었겠네요.”

형사가 건네주는 휴지로 눈물을 닦아내며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  그동안 피해자를 찾지 않았습니까?”

듣는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형사의 다음 질문에는 묘한 것이 들어있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길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해 빠진 스타일의 셔츠를 입은 데다가 아침 이후로는 빗질 따위 한 적이 없는 게 확실한 헝클어진 머리 때문인지  순하게 보였던 형사의 눈빛에 날카로운 냉기가 스쳐갔다.

“연인들 사이에 일주일 동안 연락이 없었는데  약혼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고 있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를 물어보는 겁니다.”

“살해당한 건가요?  종훈 씨...   사고 사거나  자살한 게 아니고..?"

내 질문에  손형사는 말을 멈췄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그는 이내 대답했다.

"익사한 게 아닙니다.  바닷가에서 발견되었지만  칼로 여러 번 찔려서...  과다 출혈과 쇼크가 사인이라고 나왔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주위에  남종훈 씨를  죽일 만큼  사이가 나빴던 사람이 있나요?"

"종훈 씨는 성격도 원만하고  주위 평판도 좋은 편이었어요.   누군가의 원한을 사서 살해당하다니...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대답하는 도중에도  눈물이 흘러내려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혹시  남종훈 씨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거나   그런 눈치는 없었나요?"

"다른 여자요?"

순간  머리 끝에서  등까지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쓴 기분이 들었다.   다른 여자라... 다른 여자라니...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남종훈 씨가  실종된 날 밤에  어떤 여성과 함께 있는 것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형사는  사진 한 장을 내 앞에 내밀었다.   CCTV에 찍힌 영상중 한 부분을 캡처한 듯 화질은 희뿌옇게 흐렸지만  사진 속 두 사람은 확실하게 보였다.   한 쌍의 남녀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중 남성은  누가  봐도 확실한 종훈이었다.  그리고  그를 마주 바라보고 선 여성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검은 머리가  등까지  내려왔고   늘씬하고 호리호리한 체형에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상당한 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여자 누군지 아십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여자다.   

"실종 당일  남종훈 씨가  진보라 씨와 저녁을 먹고  집까지 데려다주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때가  밤 열 한시 이십 분 정도였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사진이 찍힌 것은 열 한시 사십 삼분입니다.  진 보라씨의 증언 대로라면  남종훈 씨는  진보라 씨와 헤어진 후 이 여성을  만난 게 되는군요.  진보라 씨의 집 근처  길가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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