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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19. 2018

사랑에 관한 농담

새벽의 약속,  로맹 가리

최근에  나는  소중한 사람으로 부터  아주 뜨거운 고백을 받았다.
"너는 나의  누나이기도 하고,  여동생 이기도 하고,  친구이면서  동업자이기도  하고,  때로는 엄마이기도 하고  애인이기도 하다."
는  짧지만  임팩트 있는 말이었다.   그런 말을 하고 나서  두  주인공들이 뜨거운 눈길을 교환하는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그 말을 하고 나서 현실의  우리는 한동안  어색한 공기를 마시며  수줍어져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괜시리 바쁜 척을 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고백을  몇 번이나 혼자서  곱씹어 보며  여운을 즐기고는 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로맹 가리의 책 중  그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이  바로 '새벽의 약속'이다.  요즘  읽은 책 중 가장 유쾌한 것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책을 고를 것이다.  '로맹 가리'라는 매력적인 작가의  다정한 농담과 유쾌한 묘사로 가득 찬  모성애와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애정에 대한 이야기다.

로맹 가리를 좋아하는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의 자전적 소설을 읽는 내내 미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극성맞고  교육열 강한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들의  관계처럼  미묘한 것이 있을까?   그의 어머니는  요즘  한국 엄마들의 극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  치맛바람으로  소년을 휘두른다.  어머니의  대단한 꿈 덕분에  로맹 가리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내가 로맹 가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극성인 어머니를 대하는  그의 한결같이 자상한 시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유별난 어머니를  비웃거나  비판하려 들지 않고  이해하는 눈길로  살펴주는  아들을  보면,  혼자서 아들을 키우며  좌충우돌했던  그의 어머니가  헛되게 산 건 아니라는 결론에  닿는다.

로맹 가리의  차분한 목소리를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그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하게 되었다.  로맹 가리의  어머니가  로맹 가리를  아주 위대한  무용수나   배우, 바이올리니스트,  혹은  아인 스타인 같은 천재  수학자로 키우기 위해  고군 분투하며  그가 천재라고 고집스럽게 믿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다 그렇겠지만  단순히  상대가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나도  상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주관적인  기준으로  상대를 봤을 때  존경할 만하고   훌륭하게 느껴지는 대상을  사랑하게 되는 게  아닐까 요즘 느낀 적이 있었다.   아들에게는   밝힐 수 없었던  남편의 존재였지만   남편을  사랑하는 동안에는  그가  세상 최고의 남자라고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는 것은  그녀의   맹목적이고  단순한  믿음이  너무도 확고했기 때문이다.  로맹 가리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아들 뒤에 숨어 있는 남편의  모습을 찾는  여인의 애틋한 마음이  비쳐 보였다.   아마도  로맹 가리의 아버지는  아주 잘 생긴데다  매너도  좋았으며   마음도  자상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자식은  종교이며  생명이다.  자식에 대한 믿음은  너무도 강해서  약한 여성에 불과했던  한  여성을  강인한 어머니로 재 창조한다.   로맹 가리에게  어머니가 없었더라면   그가  그만큼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은  글을 쓴 로맹 가리나   읽는 독자가  동시에  내릴 결론일 것이다.

전쟁을 겪고  남편도 없이 혼자서 아들을 억척스럽게  키우는  어머니의 이야기 치고는  유쾌하고  따뜻하다.  슬쩍 던지는 농담들 사이에  번져 있는 감사와 행복이  봄볕 같은 이야기를  이어간다.

책을 다 읽어갈 때쯤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너  로맹 가리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
이 책, '새벽의 약속' 이 영화로  개봉한다는  소식을  전해준  친구는   무심한  어조로
"영화 개봉하면  같이 보러 갈래?"
하고  다시 묻는다.   

그 책을 지금 읽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면  친구가 믿으려나.   언제나처럼 밝게 웃으며  
"농담하지 마,  어떻게 그런 우연이  있을 수 있니?"
하고 되물을 게 틀림없다.  

책은 다 읽었으니  곧 개봉한다는 같은 제목의  프랑스 영화를  예약하기로 하자.   책에서  로맹 가리가 들려주었던  다정한 농담을  영화는  어떤 식으로 풀어놓고 있는지  한 번 더  들여다 보기로 하자.

사랑은 농담처럼  다정하지만   눈물처럼  진하고  아픔을 숨긴  상처만큼이나  혹독했다.
로맹 가리가  들려주는 농담이  그랬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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