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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05. 2018

비틀어 보는 세상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 동화

나는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그런 쪽에는 흥미도 없다.  그러나 한가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여성중 명이고  나만의 욕망과  꿈을 가진  독립적인 인격체이며  그렇게 대우받고 싶어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중고 서점 한 구석에서  발견한 것은 나에게 있어 일종의 행운이라고 본다.   


'잔혹동화'에 대한 소문을 전해 듣기만 했을 뿐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아름다운 공주들이 역시 멋진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고  덕분에 다시 읽을 일이 없을거라 여겼던 그림동화를  이렇게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겼다.


책은 모두 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근처 중고 서점과 온라인 서점을 다 찾아봤지만  2권은 아직 구하지 못했다.  2권이  항상 가는 알라딘 중고 서점에 들어왔다는 걸 알아내고  급히 갔었지만  얼마전 누군가가 사갔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결국  1권과 3권만 읽어보았다.  

왜 한때 '잔혹동화'가 유행이었는지  짐작하게 될 만큼 이 책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충격적이었다는 말은 나에게 있어 기분좋은 '충격'이었다고 첨언하고 싶다.    19세 이상 독자들만 읽으라는 책이니 만큼  내용은 매우  직접적이다.  아름답고 예쁘기만 한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상은  인간의 욕망과 본능에 더 가까운 질척함에 대한 것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다행스럽게도 이미 어른이 된 나는

'아하,  그렇구나, 그랬구나'  

새로운 시선을 하나 배웠다.


이 책에서 다룬 이야기 속 주인공의 성별은  대체로 여성이었다.

예쁜 드레스와 보석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욕망과 이유를 가진 인간,  여성들이다.

복수를 위해 오래 칼을 갈거나  자신이 가진 성적 매력을 십분 활용해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아름다운 공주의 가면을 써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여자 주인공들이  드디어 가면을 벗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이책만이 가진 또다른 가치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모든 주인공이  욕망을 갖고 있으며  그 욕망이 상충하고 필요에 따라 연합하며  행동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여성이므로  멋진 남성을 만나면 무조건 사랑에 빠질거라는,  인생에 대한 꿈도,  좋은 것에 대한 안목도 없을거라는 세상의 착각을  비웃어 줄 수 있는 이야기를.


그 기대와 요구를 충분히 만족 시켜줄 수 있었던 이야기를 작가,  키류 미사오가  1999년에 쓴 것이니 그때 부터 지금 2018년 까지  나의 시선은 얼마나 뒤떨어져 있었는지,  그 뒤처짐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주인공들의 행동을 심리학적 측면에서 접근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의 기원과 그에 연관된 다른 버전을 소개해 준 것도 좋았다.  


그러고 보니 세상을  제대로 선 채만  보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내 시야가 편협했고  생각이  틀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을 받고 살았을까.

반성의 끝에  앞으로는 이책에서 배운것을 써먹어 보려고 한다.


앞으로는 세상을 거꾸로도 보는 거다.  비틀어서도 보는 거다. 15도, 20도, 25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으로도.

이 책이 나에게 그러했듯  세상은 더 많고 풍부한 것들을 보여 줄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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