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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07. 2018

제1장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

1화 -(1)


     

“잘 아시겠지만 저희 회장님께는 둘도 없는 외아들, 그것도 마흔다섯에 얻은 늦둥이 아들이랍니다.”

양복 입은 남자는 비밀 이야기를 폭로하듯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환자의  차트를  읽고 있던 내가 그를 올려다보자  그는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인지 확인이라도 하고 싶은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아시지요? S&J 그룹요.  그 그룹 회장님이 하늘 도련님 아버지시거든요.  우리 하늘 도련님 수술이 꼭 잘 되어야 하는 이유지요.  아주 특별히 귀한 아드님이니까요.  회장님께서 직접 못 오시고 저를 보내셨지만 마음은 수술실 앞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S&J 그룹이라면  나도 들어본 일이 있다.  한국에서도 열 손가락에 들 만큼 큰 규모의 회사라는 것도.


“아,  이 친구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  '모든 환자들에게는 평등하고 충분한 진료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갖고 사는 의사이지요.  만약 환자가 대통령 아들이라고 해도 더 비싼 치료를 해줄 사람은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그래도  이 친구,  세상 물정에는 어둡지만  대신 수술 하나는 최고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


진료실 구석 소파에 앉아  나와 양복 입은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던 원장이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진료실을 가득 채운 불편한 침묵은 좀 더 오래갔을지도 모른다.


“수술은 최선을 다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차트를 덮으며 대답했다.  환자는 이미 마취실로 옮겨졌다고 했다.  

“알지?  그 예민한 손 끝으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해 달라고.”

진료실에서 나오는 내 뒤를 따라오던 원장이 너스레를 쳤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나는 가운 주머니에 들어있던 핸드폰을 꺼내 잠시 들여다보았다.  종훈에게는 아직 연락이 없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벌써 일주일째다.  그와 연락이 전혀 닿지 않은 것이.

일주일 전 밤에 데이트를 했었다.  둘 다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를 만큼 술을 마신 후 손을 잡은 채 밤 길을 걸었다.  내가 사는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나서도  종훈은   헤어지기 아쉽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몇 번이나 '피곤할 테니 집에 가서 쉬라'는 말로  달래고 나서야 그는 돌아갔다.

“저녁에 카톡해.”

헤어지는 인사 대신 그가 말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내가 보낸 카톡부터 그는 읽지 않았다.  카톡 메시지 곁 1자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전화도 여러 번 했었지만 받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나마 신호가 가던 것이 이젠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는지 벨로 울리지 않고  곧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간다는 안내가 나온다. 어제는  그가 근무하는 병원에 전화했지만  요즘 논문 준비로 바쁠 거라는,  어제부터 휴가 중이라는 대답만 들었다.

‘휴가 중이라....’

휴가 냈었다는 것을 왜 종훈은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보라야, 종훈 씨 연락 왔니?”

전화기를 다시 가운 호주머니에 넣으려는데  카톡이 왔다.  친구 시연이 보낸 것이다.  나는 답장을 보내는 대신 벽에 걸린 시계를 흘낏 바라보았다.  오후 2시 55분이다.  환자의 수술은 3시에 예약되어 있었다.  수술실 입구에서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 걸고 수술복으로 갈아입는다.  수술할때 쓰는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 후 소독된 덧신을 신고 수술용 장갑을 끼었다. 시연에게는 나중에 대답하기로 한다. 아직 아무 연락 없어..라고.

     

그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병원에서 일하는 정신과 의사였다.   장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자주 읽는,  시간이 나면 첼로 연습을 하는,  스테이크를 잘 만드는, 꽤 잘생긴 편에 속하는 남성말이다.  그는 키스하기를 좋아했고  짙은 하늘색 셔츠를 다섯개나 가지고 있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까지도 나는 종훈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두 달이나 사귀었으니까.    


“그 선배 주특기가 그거였어요.  학교 다닐 때도  여학생들에게 참 잘해주었거든요.  알다시피 선배가 꽤 잘 생겼잖아요. 게다가 매너 좋고 성격도 괜찮고.  여학생들에게도  같이 영화도 보러 가고  술도 마시고 밥도 먹고 했으니까  당연히 여학생은 그 선배가 자신을 좋아한다,  둘 사이에 뭔가가 진행되고 있다고 믿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언제 고백이라도 하려나 기다리게 되는 거고요.  그럴 때면 종훈 선배가  갑자기  말한다는 거예요.  네가 너무 친하려고 해서 부담스럽다면서,  우리 시간을 갖자.  이런 식으로요.”

종훈과 연락이 안 된다고 걱정했을 때  동료가  해준 말이었다.

“설마...”

“그럼 여자 쪽에서는 미치는 거죠.  여태까지 우리 사이는 뭐였는데 하면서 입에 거품 무는 거예요.  그럴 때 종훈 선배가 항상 하는 주특기가 있었거든요.”

“주특기?”

“네! 잠수 이별요.  전화도 안 받고  카톡도 씹고 만나면 쌩까고... 그런 거요.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그 덕에 종훈 선배가 학교에서 욕 엄청 먹었더랬죠.”

     

잠수 이별.

     

그럴 리가 없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종훈은 결혼 이야기를 꺼냈었다.  신혼여행 가자던 말도 했다.  이별이라니.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매사에 신중해 보였던  종훈이 잠수 이별을 했을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진짜 모습이 그런 거였을까?’

종훈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다.   잠시였지만.

“종훈 씨가 잠수 이별을 했던 건 학생 때 일이었고  지금  나하고 연락 안 되는 건 아마......”

나는 애써 담담하게 보이려 애쓰며 대답했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서일 거야.  다쳤거나  무척 아프거나  정말 바쁘거나....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에 대해 잘 안다던 자신감이 완벽히 무너져 내렸다.  종훈이 갑자기 사라진 후 그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겨우 며칠만의 일이었다.



     

환자의 이름은  ‘노을’이었다.  차트의 특기사항 란에 본명은 박 노을,  곧 데뷔할 아이돌 그룹 멤버라고 적혀있었다.  수술대에 누워 있었지만 열여섯 살 고등학생이라고 하기에는 키가 무척 크다.  어림잡아 180 센티는 되어 보였다.

“184 센티래요.  키가.”

수술을 도와주던 간호사가 말해주었다. 이제 막  스물여섯이 된  그녀는 서른이 넘은 나보다 훨씬 환자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평소에도 말이 적은 편이 아니었는데 이번만큼은 숨도 안 쉬고 떠들어 댔다.


“이번에 새로 나올 그룹 리더예요.  노래도 정말 잘하고  춤은 거의 천재 수준으로 춘다고 소문이 자자 해요. 저도 유트브에서 연습 동영상은 몇 번 봤지만 노을 얼굴을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인데  진짜 잘 생겼어요.  잘 생겼다기 보다 예쁜 얼굴요.  수술해서 다른 얼굴로 바뀐다니  속상하네요.  지금 이 얼굴을  사진이라도  찍어서 간직하고 싶어요.”

내가 보기에도 환자의 얼굴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키에 걸맞게 긴 다리를 가진,  다부진 근육질 몸매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소녀처럼 또렷한 눈과  정확히 깎아 놓은 것 같은 콧날,  키스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붉고 도톰한 입술이 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조합덕이 살아 돌아온것 같은데요."

환자의 마취 상태를 체크하던 간호사의 말에 다른 간호사가 묻는다.

"조합덕이 누구야?"

"서한 시대에 유명한 미인이야.  언니는 조비연이고  동생은 조합덕인데  둘다 엄청나게 미인이었던 덕분에 한성제의 후궁이 될 정도 였대."

"정말 예쁘다.  아주 예쁜 여자라고 해도 믿겠어."

“이렇게 완벽한 얼굴에 왜 칼을 댄다는 거야?”

"나도 이렇게 한 번만 생겨봤으면 좋겠다."

간호사들이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메스를 집어 들었다.  종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찬 머릿속에는  노을이라는 환자의 아름다운 얼굴에대한 감상따위가 들어올 공간이 없다.  수술 준비로    노을의 얼굴에 그려놓은  마크를 따라 메스를 움직일 뿐이다.  코를 비틀고 보형물을 넣어 모양을 잡았다. 눈에도, 입술에도 손을 댔다.  성형 수술 치고는 대 수술이다. 오밀조밀 예쁘던 얼굴을 좀 더 남성적으로  바꾸는 중이다. 코에  깁스를 대고  눈 밑과 코에 테이핑을 마쳤다.  수술이 끝난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훈을 만난 것은 퇴근 후 그가 근무하는 병원 근처의 작은 바에서였다.  그는 ‘마티니‘ 를,   나는 ‘블러디 메리‘ 한 잔씩 마셨다.  붉은 실내 조명 탓이었는지 그는 다른 날 보다 들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바하마에 가자.  겨울이 없는 곳으로 말이야.”

내가 잔에 가득 찼던 블러디 메리를 반쯤 마셨을 때 그가 말했다.  속삭이듯 낮게 하는 말이 귓가에 닿자 내 귓불도  빨갛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신혼여행은 발리로 가자. 발리에서 하와이로 갔다가  바하마에 가는거야.”

"얼마나 걸릴까?  세 군데에 다 가려면."

"글쎄,  적어도 두어달은 걸리지 않겠어?"

그는 빙긋 웃으며 술을 홀짝였다.  쓰고 있는 책이 거의 끝나간다는 말을 하고 나서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이번에 나올 책이 꽤 마음에 든다고도 했다. 환자들 케이스가 아주 좋다는 게 이유였다.   잘 생긴 호감형 얼굴에 자신감이 한 겹 더 씌워진 탓인지  그날따라 그는 무척 근사해 보였다.  내 손을 잡아주던 그의 손도 따뜻했다. 그런 종훈이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숨이 막혀오는 듯 행복했었다.  약혼식은 생략하자는 말에도  고개만 끄덕였다.  

“ 빨리 너하고 결혼하고 싶어.  이 책만 끝나면  상견례도 하고 결혼식도 빨리 진행했으면 좋겠어.”

     

수술실 앞에는 아까 진료실에서 만났던 양복 입은 남자가 서성이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던 것인지 나를 보고 반색을 하며 뛰어왔다.  그러고 보니 수술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사실 수술을 직접 하는 집도의 입장에서는 정확히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시간이 피를 말리듯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은 수술실 밖에서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저,  우리 도련님요.  노을, 박 노을 환자 수술 끝난 겁니까?”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지금 회복실로 옮겨졌어요. 환자분  마취 깨시면 모시고 가세요.  눈 코 입 다 했기 때문에  특히 회복 과정에서 신경 많이 쓰셔야 할 겁니다.  자세한 것은 담당 간호사님과 상담하세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급히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접수 데스크에 있는 김실장이다.

“저, 선생님!  급한 전화가 왔었어요.  수술 중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끝나는 대로 전화해 달라고... 경찰서에서 온 거래요.”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예감 같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김실장이 경찰서에서 온 전화라는 말을 했을 때  머릿속에 종훈의 얼굴이 스쳐갔기 때문이다.   

“남 종훈 씨를 아십니까?”

내가 그의 약혼자라는 말에 형사는 더 설명하지 않고  경찰서에 나오라고만 했다.  자세한 것은 오시면 설명드리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좋지 않은 예감은 어느새 나를 감싸 검고 무거운 두려움으로 짓누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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