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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Jan 15. 2019

1월 13일 2019년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는 확률은  아이돌 멤버로 뽑혀 세계적 인기를 얻게 될 확률보다도 낮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허망한 꿈이라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글 쓰는 것이 좋고  글 쓸 때 행복하고  내가 만들어낼 이야기들을 상상하고  꿈꿀 때  살아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들 보기에 별것 아닌 글일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귀중한 것들이니까.

     

“그러니까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을거예요.”

그에게  선포하듯 말했다.  우리가 서로의 사랑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의 관계를 다시 정의해야 했던 그 날에.

“나는 천재적인 작가도 아니고  아직 갈길이 너무 먼 사람이므로  앞으로 남은 인생이  턱없이 짧을까봐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요.  다시 말하면.”

“다시 말하면?”

그는  그제서야  잠시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내가 글 쓰는데  도움이 안된다면  연애따위는  버릴 수 있다는 말이죠.”

어디서 튀어나온 자신감인 것일까,  글 쓰기 위해 순교라도 하겠다는 태도로 내가 대답했다.

“글 쓰는데 방해가 된다면  나를 버릴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그가 확인하듯  물었다.  나는 고개를 여러번 끄덕였다.  

“그건 맘대로 하시고.  나라는 사람을 알면 알수록  나 정도 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될테니 말입니다.  그거 말고 다른 조건이 있습니까?”

그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말 그대로 눈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생각해 보다 대답했다.

“아니오.”

“작가로서 해야 할 일들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음.  가능하다면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것만 약속한다면 사귀는 데 문제 없는 거지요?”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도 순수해 보였다.

“네.”


나는  대답했다.  그의 웃음에 속아 넘어가는 기분으로.  두 사람의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은 한 밤중 마주친 검객이 서로를 탐색하듯  팽팽한 긴장을 형성했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별문제 없이 순항 중이다. 


     


우리는 새로운 계약을 체결한 사람들이 그렇듯 갑자기 친해졌다.  처음처럼 말을 높이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지 않게 될 때까지  약간 시간이 필요했을 뿐..


서로를 보살펴 주기,  함께 여행다니기,  인생의 목표와 경험을 함께 나누기,  함께 꿈꾸고 이끌어주기, 외로움 덜어주기, 아플 때 걱정해 주기는 계약조건에 없지만  꾸준히 이행되는 것들이다.

     

우리는 둘 다 작가다.  한 사람은 인생을 쓰고  다른 사람은 인생을 산다.  한 사람이 인생을 찍어 남기고  다른 사람은 그 인생을 맛본다.  잠시 시간을 내어 하늘을 바라보며 누우면 구름처럼  펼쳐진 희망을 공유하며 한 걸음씩  서로에게 기대어 걷는 법을 배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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