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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Jan 15. 2018

내가 글 쓰는 이유

편린 01

견디지 못한 중얼거림을 문학이라고, 시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카프카와 니진스키와 파벨제와 첼란은 나의 스승이었고 선배였고 친구였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들의 눈빛은 맞물리지 못한 톱니바퀴처럼 삶과 따로 노는 나를 지켜본다. - 이성복

어릴 때부터 '말 연극'을 잘 했다. 사물들과 대화하고 일기를 썼다. 책을 읽고 나면 노트에 옮겨 적어야 했다. 좋은 글귀는 읽고 또 읽었다. 때때로 외워서 옮겨 적었다. 크리스마스 때 산타 할아버지께 소원을  빌었다.  
'좋은 노트와  잘 써지는 샤프펜슬을  주세요!'

크리스마스나 생일날 받은 수 십 권의 노트마다 소설을 써댔다. 그래도 끝마치지 못한 게 태반이었다. 쓰다가 다른 소재가 생각나면 다른 데 써야 했다. 쓰다가도 대부분 공부에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했다. 그보다는 체력이 다해서 끝내지 못한 채 놓아둔 것들이 꽤 되었다. 얼마 전 엄마를 만났을 때 엄마는 그 많은 노트들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셨다. 가끔 꺼내서 읽어보신다고도 하셨다. "은근히 재밌더라고." 돋보기까지 쓰고  읽으신다고 한다.    

체력이 약한 나는, 결국 초등학교 이 학년 때 엄마 손에 끌려 한의원에 갔다.  내 체력 때문에 엄마가 물어 물어 찾아간 곳이다. 소문날 정도로 용하다는 한의원이었다. 태어나 처음 가보는 어느 시골까지 찾아갔던 것 같다. 한의원은 읍내 구석에 있었다. 근처에는 군부대가 있었고 바다도 가깝다고 했다. 한의사 할아버지는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짧고 단정한 머리에 정갈한 옷을 입고 계셨다. 한약 짓는데 어쩐 일인지 사주를 짚어 주신다.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그러셨다.

"너 글 쓸 팔자로구나."
"글요? "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에게 할아버지가 그러셨다.
"글 쓸 때 몸이 약해지면 쉬었다 써야 한단다. 어떤 사람들은 글 쓰다 죽기도 해."
"네에..."

그날 한의원 방문은 지금도 가끔 기억이 난다. 아마도 겨울 이맘때쯤이었다. 한의사 할아버지는 가까운 다방에 전화를 걸어서 '유자차'와 '커피'를 주문하셨다. 그다음 진맥을 하셨다. 약을 짓는 중에 다방 언니가 왔다. 다방 언니를 내 눈으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새빨간 입술에 짧은 치마, 그리고 얇은 스타킹을 신은 언니다. 나에게는 유자차를, 엄마와 한의사 할아버지께는 커피를 따라주었다. 잊으려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유자차에 계피 넣어 마시면 네 몸에 좋을 거다." 그날 유자차라고는 처음 먹어보았다. 너무 달았다. 덕분에 두 번 다시 입에 대지 않았다. 요즘도 먹어보려 노력하지만 잘 안된다. 대신 커피나 토스트에 계핏가루를 넣어 먹는다. 추운 날 아침이면 계피향 나는 커피를 꼭 마신다. 한의사 할아버지 말씀 때문이다.

"너 남편 복 하나는 끝내주겠구나. 그 복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바로 너다."
한의사 할아버지는 마지막 인사 대신 그런 말도 하셨다. 그걸 기억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이곳에 와서는 글을 쓰지 않고 몇 년을 버텨 냈다. 말하는 것도 책 읽는 것도 영어로 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전공 서적만 보고 버텼다. 영어로 생각하고, 심지어 영어로 꿈도 꾸었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잊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를 점차 잊어 갔다. 지금도 나의 한국어는 서툴다. 한국어를 잊어가는 만큼 나 자신도 사라져 갔다. 왜 살고 있는 것인지도 점차 잊어가는 듯했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모르게 여길 정도로.  

'이렇게 살다가 죽게 되는 걸까?'
공허한 질문이 나를 채워갔다. 그때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한 번 쓰기 시작하자 미친 듯 써 내려갔다. 잠을 잊었다. 밥도 건너뛰었다. 그게 첫 번째 소설이 되었다. 그때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지금쯤 나는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글을 쓸 때면 한의사 할아버지 말씀이 기억난다. "너 글 쓸 팔자로구나."
 '누가 나에게 쓰라 하는 것도 아닌데' 무엇엔가 쫓기듯 글을 쓴다. 쓰다가 쓰다가  어느 날 공허해지면 다시 글자들을 읽어 그 허기를 채운다.  '이게 내 팔자에 있는 걸까?'  생각할 때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인사가 딸려서 나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할아버지는 돌팔이였을지도 몰라."  생각만 해도 우습다.

아직도 나는, 내 팔자라서 글을 쓰는 것인지, 내가 좋아 글 쓰는 것인지는 구분이 안된다. 오늘도 글을 쓴다. 퇴근하고 돌아와 정리해 두고 컴퓨터 씨와 또 마주 앉는다. 누가 나에게 써보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쓴다. 마치 누군가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살기 위해 밥 먹고 물먹는 것처럼. 나는 글을 쓴다.

그 이유는? 나도 아직도 모른다. 이유를 알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가기 위해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죽지 않으려고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많지 않다. 글을 쓰기 전에는 공허했다.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는 행복해졌다. 내가 왜 사는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막상 쓸 때는 괴롭다. 그래도 공허한 것보다는 나았다. 글 쓰는 일은 내 안의 쓸쓸하고 약한 빈자리를 조금씩 채워준다.  나를 채워주는 그것이 때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세상을 위해 글 쓴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철저히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쓴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주기 위해 쓰는 게 아니다. 나에게 위로받기 위해 쓰는 것일 뿐이다.

글 쓰면서 깨닫는 것들이 있다.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귀한 사람이었는지도 깨닫는다. 그리고 행복하게 글 쓰다가 이 생을 마치기를 원한다. 오늘도 글을 쓴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본다. 글쓰기는 나를 구원으로, 자유로 이끄는 유일무이한 나침반이다. 등대다. 아울러 나의 기도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어쩌면 글쓰기가  내게 주어진 복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다만, 글쓰기가 내 팔자라는 전제에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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