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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Feb 24. 2019

눈물의 기록

위로 위로 올라가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의 입버릇이 그거였다.  말을 시작할 때 마다 그러니까 말이야.’ 라고 시작하는 것.

다소 걸걸하고 무뚝뚝한 어조로 툭 내뱉듯 말을 시작한다.

그러니까 말이야.  세상에는 구원이라고 하는 게 없다는 거지.”

     

중학생이었을 때 부터였다.  그는 곧잘 그렇게 말했었다.  세상에는 구원이라는 게 없어.  끝없이 바닥으로 바닥으로 떨어지며  절망하고  포기하고 네 인생이 밑바닥이 없이 추락하더라도  운명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말이야.  아무리 착하게 살았더라도  소용없어.  사람들은 아무 이유도 없이  감옥에 가고  죄를 짊어지고 죽어가게 되어있어.

     

말을 듣고 있던 대상도 그와 마찬가지로  중학생들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중학생들은 아직 순수하고  희망적인 데가 있었다.  당연히 그의 말에 반항하는 눈빛으로 그를 쏘아본다.

믿을 수 없어?  그럼  거기서 서 있어봐.  누가 너를 구하러 와주는지.  죽을 때 까지 서 있어보라고.”

     

그가 다니던 중학교는  뒷산으로 통하는 작은 산책로가 있었다.  산책로라고 하지만 한가롭고  조용한 좁은 길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가파르게 느껴지는 계단이 주욱 연결되어 있었다.

겨울이면  그곳에는 내린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언덕처럼 변해버린다.  비가 많이내리는 날에는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물줄기 때문에  무척 미끄러웠다.  게다가 뒷산에는  공동 묘지와 군부대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뒷산쪽으로  직접 가본 일이 없다.  지도를 확인한 일도 없었다.  그래서  남들이 전하는 소문을 믿을 뿐이다.  계단을  중간쯤 오르면  위로 위로 향하던 계단의 끝이 어슴푸레 보였다.  그쯤 어딘가에서  그는 올라가기를 멈추곤 했다.  자신 보다 약하고 어린 학생들을 그곳까지 끌고 올라가 겁을 준다.  때려주겠다고  을러대기는 했지만  워낙 타고난 덩치가 큰 그가  주먹을 보여주기만 해도  희생자들은 미리 돈을 꺼내기 마련이었다.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막말하는 그는 이미 유명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참 신기하네.”

그는 카페에 들어서는 남자를 금세 알아보았다.  얼굴도 못 본지 삼십여년이 지났는데  얼굴 윤곽이 그대로인 것이 신기한 일이다.  동글동글한 얼굴과  어딘지 무심한 눈빛은  그때와 변하지 않았다.  그가 몇 번 돈을 뺏은 적 있는  중학교 동창이 틀림 없다.

, 반갑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남자는 그의 반응에  무심한 눈빛을 돌려 그를 응시했다.  차분한 표정이다.  의외라는 얼굴이었지만 그를 알아본 것같기는 했다.

우리 삼십년 만이지?”

그는 남자에게 손을 내민다.  물론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런 건 아무 의미 없다.  얼굴을 서로 알아보고 있다는 게 중요한 일이다.  악연이든  인연이든 이어진 추억이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거다.  남자도  그처럼 혼자 온 모양이었다.  특별히 용건도 없는데  두 남자가 마주 앉았다.

,  너는 그때랑 똑같구나.  하나도 안 늙었네.”

마땅히 할 말이 없었던 관계로  그는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빙긋 웃기만 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니?”

그가 남자에게 묻는다.  그러고 보니 지난 삼십여년동안 그에게도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고  그는 이모네 집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운동을 잘 한다는 말을 들었고  운동선수가 되어보지 않겠냐고 했지만 훈련을 견디지 못했다.   “야망을 가져보라거나  최선을 다하면 우주가 도와준다같은 말도 들었지만  기억하기 전에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운명이 그를 구원해 줄거라는 말들을 믿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삶의 계단을 올라 보려고 애썼던 적도 없었다.  삶의 계단을 오르려 하지 않는 이유를 지어내는데 몇 개월을 소모하고  하루하루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을 남몰래 경멸했다.  애써 살아가는 사람들의 뒷담화를 하며 그는 자신이 얼마나 비열한 인간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살던 하루 하루가 삼십여년이 되었다.

     

?  나는  시계를 만들었어.”

남자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처음이다.  나지막한 굵은 목소리가  조용한 카페안에 울려 퍼졌다.

지난 삼십여년동안 말이야?”

그의 질문에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중학생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어.  시계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지.”

설마... 시계만 만들었던 것은 아니겠지?”

시계를 만들다 보니  결혼도 하게 되었어.  아내는 보석을 만들어.  디자이너야.”

그렇구나.”

그는 마주 앉은 남자를 떨떠름한 얼굴로 한참 응시했다.

시계를 좋아했으니  시계에 대한 생각만 했어.  시계를 그려보고  만드는 법을 찾아보고 남들이 만들어놓은 것을 따라서 만들어 보는게 재미있었어.  그렇게 매일 살다보니 삼십년이 되었어.”


그는 남자가 만든 시계가  예술품 취급을 받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계를 볼때마다  기묘한 질투에 사로잡혀  비열한 욕지거리를 쏟아놓으며 지나쳤었다.  사실은 남자가 만든 시계가  그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만큼 고가의 물건이어서 였지만.

     

그는 아르바이트생이 가져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씁쓸한 뒷맛이 입안에 남았다.

“그러고 보니 사과하고 싶은 게 있었어."

난데 없는 말이었는지 남자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의 얼굴을 살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난 말이야,  너라는 놈을 경멸했었어.  솔직히 말해서 너하고 비슷한 모든 부류의 인간들을 다 경멸했지. 뭐든 무조건 열심히 하는 인간들 말이야.  욕심들만 많아가지고...  그렇게들 살아봐야 성공도 못할텐데 뭐하러 저렇게들 사는 걸까 하면서.”

“너는 성공하려고 살았던 모양이구나.  나는  산다는 건 성공이나 실패로 나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성공하려고 열심히 살았던 게 아니란 거야?”

성공하려거나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삼십년을 채우지 못했을거야.  나는 그냥 시계를 좋아했고  내가 존재하는 세상에는 시계에 대한 모든 것들로 채워져 있었을 뿐이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나를 경멸하고 있는지  아니면 존경하는 것인지도 별로 관심 없었어.  조금은 더 정확하고 섬세하고 견고한 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  물론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된 것은 아니야.  그럴때 마다 너와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나를 다잡았지.   그래서 인지 너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이 있었어.”

“나하고 있었던 추억?

놀라서 되묻는 그를 향해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다니던 중학교 뒷산에 길고 좁은 계단이 있었던 거 기억나?  뒷산으로 통하던 가파른 계단 말이야.  어느날  네가 나를 끌고 그 계단위로  올라가더니  겁을 줬어.  거기서 영원히 서 있더라도  구원은 오지 않을거라고 말이야.”

그랬지.  나도 그 일은 기억나.”

그런데 참 재미있는건  네가  먼저 내려가 버린 계단에 서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야.  왜 여기서 구원을 기다려야 하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더라고.  난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고  계단을 내려왔지.  집으로  돌아가면서  시계에 대한 생각에 다시 빠져 들었어.  그리고  깨달았어.  어떤 계단도  영원히 올라가야만 하는 건 아니구나. 하고.  계단이란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하려고 만든 구조니까 말이야.  그 이후론  살다가 계단을 만나면  올라가는 데에만 의미 두지 않게 되었어.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내 맘대로 사는 게 제일 중요한 점이라는 걸 깨달은 거야.  그 이후 나는 그렇게 살아왔어.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사선으로 가거나  내가 원하는 방향을 향해 걸었다고 생각해.”

     

남자는 빙긋 웃는다.  아주 조용하고  깊은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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