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영인 Feb 17. 2019

커피, 카페, 커피, 책

감싸 안다


214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급히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선 그녀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늦었어요.”

카페에 들어선 그녀를 돌아본 여자 치료사가  반가운 얼굴로 웃어 보였다.

저희들도 막 시작했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그녀는  치료사가 가리키는 빈 의자에 앉았다.  물감 냄새가 훅 하고 코를 찔러왔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그릴 겁니다.  뭐든 기억나는 대로  그려 보세요.  어릴 때나 최근까지라도  가장 행복했던 추억이 있던 순간 여러분과 함께 하던 그 물건을 떠올려 보세요.  그것을 앞에 놓인 종이에  기억나는 대로  그려 보세요.  여태까지  수업 중에 배운 것들 다시 생각해 보시면서요.”

     

여태까지 수업 중에 배운 것들이라.

그녀는 지하철역에서 카페까지 달려오느라 차오른 호흡을 진정시키느라 두세 번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첫 번째 치료시간에는  여러분 자신에 대한 것을 그려 보세요’라는 주문에  그녀는 찢어져 책장이 너덜거리는 책을 그렸다.  그때 강사는 어머나!’ 하고 놀라는 표정이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여름방학 한 달 정도  미술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초상화와 정물화 소묘 법, 수채화 기법을 배워왔다.  좋아하던 헤세의 초상화를 그려  책상 앞에 붙여 두었다.

이후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이유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입시는 지옥처럼 뜨거웠고  취미출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녀가 다시 붓을 든 건 헤세의 초상화를 그린 후 십오 년 만이었다.

     

‘십오 년이라니.’

첫 번째 그림은 엉망이었다.  두 번째 그림은  자전거였는데  그럭저럭 손 끝이 의지를 따라왔다.  이 번 그림은 여섯 번째쯤.  겨우 색감이 살아나려 하고 있다.

오늘은  커피 잔을 그리시네요.”

강사가  그녀에게 소곤거리듯 말한다.  “그런데 왜 항상 그림에는 물건이 한 개씩 밖에 없을까요? 저번에 그린 양귀비도 한 송이,  자전거도,  카메라도 다 한 개씩이었고요.  저번 시간에도 사과 한 알 그리셨어요.”

     

미술 심리 치료라는 이름에는 이유가 있었구나. 한다.  잊을 뻔했었다.  치료사는 그림을 통해 그녀의 마음을 읽는 기술을 배운 사람이었던 것을.

     

  사실을 말하자면 모든 것은 기술적인 문제였다.  자전거도,  책도,  양귀비도,  카메라도    지나치게 정교하고  섬세한 것들이어서  한 개씩만 그리기에도  벅찼다.  그리기 쉬웠다면  두 개도,  세 개도  그렸을 거였다.

     

진심을 말하자면   치료사가 슬픈 기억을  그려 보라고 했을 때  남편이 던져 깨버렸던  커다란 수박 덩어리를 그리고 싶었다.  박살난 초록색 수박 안에서  벌겋게 흘러나오던 수박 즙이 흥건하게 방바닥에 고여 있었던 그 순간을.   어느새 달려온 아이가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숨 듯 바라보던 조각들을.  그날 치밀어 오르던  공포를.  

나는 네 아버지가 싫은 거야.  네가 싫은 게 아니고.”

남편의 눈이 번들거렸다.  짐승같이.  

그녀를 끌어안으려던 남편의 손을  밀어냈고  남편은 집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가출하는 열여섯 살 남학생처럼.  그날 밤에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를 끌어안은 채  밤새도록 깨어 있으면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생각이 든다.  결국 죽고 싶다’  ‘죽어야 할까’로  생각이 끝이 났다.  그런 밤은 검고  어두웠다.   그렇게 짙은 밤을 수십 번 지내야 했었다.  아침에  잠깐 선잠이 들면 아이가 깨어 부스럭거렸다.  냉장고에서 꺼낸 사과를 들고 와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엄마, 나 이거 먹고 싶어.”

깨진 수박 대신 그린 건 사과였다.  아이가 들고 왔던 예쁜 사과를.  붉고  노랗고 달콤한 색이 마구 섞여있던,  아이의 손에 겨우 들릴 만큼 큰 사과 한 알을.

     

발렌 타인데인데요,  초콜릿 그려도 돼요?”

그녀 곁에 앉아있던 고등학생이 말하자  카페 안은 웃음소리로 일렁인다.  왕따 당하다 벌써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던  남학생은 그림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가져온 초콜릿 박스 반을 비웠다.

     

발렌타인데이였구나.  오늘이.

     

결혼 후 몇 번이나 발렌타인데이를 보냈다.  연애할 때는 꽃이며 인형,  초콜릿도  꽤나 사주던 남편이었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작년엔  그녀에게  책을 한 권 내밀며 말했다.

 “난 이 결혼을 후회해.”

책 사이에 끼어있던 이혼 서류가 그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발렌타인데이라는 걸 깜박했네.


어쩌면 그런 걸 까맣게 잊었을까.  발렌타인데이는  그녀의 결혼기념일이었고  이혼 기념일이고 아이도  그때쯤 태어났으며  그러니까…….  아이를 보지 못한 1 주년 기념일 씩이나 되는 날인데.

     

오늘 커피 잔도 한 개네요.  커피 잔에 담긴 건 뭔가요?  그리신 분 마음인가요?”

그녀는 치료사의 질문에 대답할 것들을 찾아본다.  커피 잔을 그리는 이유는  요즘 커피 마실 때 조금은 행복했기 때문이다.  행복한 기억을 그려보라기에  겨우 떠오른 물건이라서 그런 것일 뿐.

커피잔에 담긴 게 뭔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당연히 따뜻하고  씁쓸하지만 뒷 맛은 달콤한 아메리카노겠지.  커피 잔에 마음을 담을 수 있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커피 잔 그림을 마저 그렸다.  발렌타인데이에 그린 커피 잔은 행복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추억을 담고 있다.  미술심리치료는 그런 거니까.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그녀와  그림의 의미를 읽고 싶은 대로 읽는 치료사가  서로를  토닥이고 위로하는 것.

아무 이유도 요구도 없이.

     


작가의 이전글 그 남자, 보헤미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