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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Mar 03. 2019

봄끝

기다리다

그는 눈을 잠시 감고 코로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는 익숙해진 커피 향기와  잔잔한 클래식 첼로 음악이 카페 안을 채우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빙긋 미소를 짓는다.  이런 곳에서라면 한 시간은 더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늑하다.  노곤해질만큼 평화롭다.

이곳에서 그녀를 만나고  예전 그날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것도 아주 조금만 더 기다린다면.

     

그녀는 예쁘지 않았지만 눈길을 끄는 사람이었다.  빙긋 웃는 것이나  조용조용한 목소리,  때로 심각해지는 뾰로통한 얼굴조차도 이상하리만큼 기억에 남는 데가 있었는지 그녀를 한 번 만나본 사람들은  항상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멘델스존을 좋아했고  프랑스 소설을 많이 읽는다.  어쩌면 프랑스어를 아주 잘할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녀의 똑 부러지는 입술에서 새어 나올 프랑스어는 야생 벌꿀처럼 달콤할 거라고.

왜 제가 그날 그렇게 말했냐면요.”

그는 지난밤 내내 연습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그녀가 자신에게 냉정해진 건 순전히 그가 했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그는 수많은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그녀는 예전처럼 다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조금씩 거리를 두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만나주지도 않았고  그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지난 삼 년 동안 저는요.”

그는 입술이 마른다. 지난 삼 년 동안 그의 심장도 말라갔다.  말라비틀어져 죽어버렸다.

그녀의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면  그녀는 이 카페에 자주 가는 모양이었다.  창 밖에는 n타워가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  그녀는 매번 창 밖에 보이는 n타워 사진을 찍었다.  낮에 보이는 n타워와  밤에 보이는,  안개에 가려 흐릿한,  빗속에서 녹아버릴 듯 슬픈 n타워를.  사진을 찍은 그녀는 창가 구석자리에 놓인 낡은 테이블과  폭신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게 틀림없다.  그녀가 찍은 사진을  이리저리 맞춰보면 누구나 생각해 낼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녀가  어젯밤 그에게 만나자고 했을 때는 솔직히 심장이 멈춰버리는 줄 알았다.  좋다고 대답하기도 전에  기절해 버리는 줄 알았다.  그는 좋아요라고 대답하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는 순간 옷장을 몽땅 뒤져 온 방바닥을 어질러 놓았다.  그녀와 만났을 때 입고 갈 옷들을 골라 방바닥에 주욱 늘어놓았다.  뭘 입지? 무슨 가방을 들지?  그의 머릿속에는 그녀가 항상 앉는 이 자리에  비치는 조명과 햇빛의 강도,  유리창에 비칠 자신의 모습까지 순식간에 계산되었다.  결론은 하나,  그녀가 좋아하는 노란색 셔츠에 하얀 바지,  얼마 전에 산 신발을 매치하면 그녀의 눈길을 끌 정도로 시크한 남자가 등장할게 틀림없다.  그녀가 항상 앉는 그 자리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매력적인 남성이 바로 그다.

     

그녀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그녀가 좋아하는 시의 한 구절처럼 시간은 멈추듯 한 곳을 향해 달려가고  비슷한 일들이 자꾸만 일어난다.  밤과 낮은 서로 다른 얼굴을 갖고 있으며 세상은 항상 변해간다.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할까?  변한 것들과 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그는 계속 카페 문쪽을 바라본다.  그녀가 올 시간이 다 되었다.  시계는 자꾸 움직인다.  어둠도 계속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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