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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Mar 04. 2019

숨쉬기 운동

만나러 가는 길은

미안한 일이다.

처음부터 이곳이 카페였던 것은 아니었다.  수백 년 전에는 술도 팔고 밥도 팔던 주막이라고 불렸고  그 전에도 나는 이곳에 오는 이들에게 음식을 내주었다.  이곳의 명칭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세월이 흐른 만큼이나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나는 이곳에 작은 공간을 열어두었고  들어오는 이들을 대접했다.  

밥을 달라고 하면 밥을 주고 술을 달라고 하면 술을 주었을 뿐. 그들이 누구를 만나던, 만나지 못하던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나는 공간을 준비하는 이, 그 뿐이다.  

     

재밌는 일이었다.  내가 열어둔 공간을 이용하는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할 이야기가 남은 것인지, 아직 대답하지 못한 것이 있는 건지,  아니면 전해주지 못한 선물이라도 남은 것인지.

그들은 내 작은 카페에 들어와  오래오래 뭔가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비어있던 공간에  한 명씩 한 명씩 들어온 이들로 꽉 차면  마차가 온다.  마차라지만 발이 없는 말이 이끄는 물체라 다가오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남겨두는 소리가 없다.

     

오늘이 그 날이다.

카페가 가득 찼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주섬 주섬 옷을 차려입는다.  마차가 오는 날,  카페를 차지하고 앉은 몇 명의 손님을 배웅하는 날이다.

가벼운 스웨터에 등에는 커다란 숄을 두른다. 수백 년 동안 길어진 머리를 빗어 올리고 비녀를 꽂는다.  배웅하는 사람이 흉해 보이면 안 되므로  나름대로 하는 치장이다.  발목을 살짝 덮을 만큼 긴치마를 입고  가죽 구두를 신는다.  항상 타고 다니는 작은 승용차에 오르면 곧 카페에 도착한다.  그러고 보니 수백 년 전에는 말을 타고 주막으로 달려가고는 했다.  동화책에 나오듯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닌 적은 없다.  고소 공포증이 심한 편이라 하늘을 날아다니는 데는 영 소질이 없어서다.

     

“저어, 문제가 생겼습니다.”

승용차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웅얼대듯 말했다.  

“만나러 오는 사람이 없었나 보구나.”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주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기다리고 나면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다.  다 하지 못했던 말들을 서로 나누고 ‘아하, 그랬구나’ 하며 환하게 웃으며 헤어졌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만나러 와 주는 사람이 없다.

양쪽이 다 만남을 원해야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되는 것이라 안타깝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고 떠나는 수밖에 없겠는걸.”

내 말에 남자는 고개만 끄덕인다.

     

카페에 도착하자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언덕 위에 카페를 지어놓은 이유가 바로 선명하게 보이는 노을 덕분이었다.  노을이 고운 날에는 달빛도 맑은 법.  떠나는 이들이 바깥 경치라도 보고 싶어 진다면 달빛으로라도  마지막 여행을 비춰주고 싶었다.  곧 떠날 이들이지만  나에게는 손님,  만나고 싶은 이들이 있어 찾아드는 외로운 이들이므로.

“저분이 처음으로 들어오신 분입니다.”

     

저번 마차가 떠난 후 텅 비어있던 카페에  처음으로 찾아든 사람.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던 남자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보고 기다리는 이가 아니어서 무척이나 실망한 기색이다.  그의 테이블 위에는 마시고 빈 커피잔과 카메라가 놓여있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카페를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계시는 동안 편안하셨는지요?"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카페에 앉아있던 이들의 눈이 나를 향해 쏠린다.

"안타깝지만 곧 카페를 닫을 시간입니다.  손님 여러분께 양해 부탁드립니다.”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던 그의 눈빛이 텅 비어 버렸다.  

“저... 기다리는 사람이 곧 올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도 될까요?”

남자가 묻는다.  


기다리는 사람은 있지만 그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이만큼 기다려도 오지 않았으니 더 기다린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  남자도 그것을 알고 있을까.  아니면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알지만 애써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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