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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Mar 05. 2019

서울 여행

맥주와 잭 케루악

“당신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오지 않을 거예요.”


나름의 확신을 갖고 한 말이었지만 남자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도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괴로워할 그의 얼굴을 바라보기 힘들어서다.




“나를 기다린다는 사람이 있다기에 오긴 왔는데  약속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군요.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랍니다만."



카페 문이 덜컥 열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선 것이 그때였다.    남자가 외치듯 떠드는 소리에  카페 안 무겁던 공기가 일순 달라졌다.  절망과 초조의 회색에서 짙은 보랏빛 장난스러운 즐거움으로 변해버린 건  어두워져서 켜진 카페 불빛 때문만이 아니다.



누구시죠?”

나도 모르게 묻자 카페 안을 둘러보던 남자가 내 얼굴을 응시하며 대꾸했다.

잭 케루악입니다.  약속 시간에 늦어서 미안합니다.”


남자는 다부진 체형이었다.  유럽인 특유의  푸른 눈에는 깊은  생각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등을 다 덮을 만큼 커다란 배낭을 메고 낡은 가죽 장화를 신었다.  길게 자라 곱실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이마에 찰싹 붙어있는 것이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커피보다는 뭔가 마실만한 술이 없는지 묻는 표정으로 주위를 훑어보고 있었다.


접니다!  만나고 싶다고 연락드렸던 사람이.”

내 바로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손을 번쩍 들어 보인다.  잭 케루악은 마치 뛰듯 경쾌한 발걸음으로  남자 맞은편까지 걸어갔다.  남자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또 보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몇 번이나 꿈벅였다.

“저어기,  정말 잭 케루악 씨 맞으십니까?  온 더 로드 쓰셨던 그 소설가요. 맞으신가요?”

확인하듯  묻고 나서 남자는 손에 난 땀을 입고 있던 재킷 옆부분에 쓱쓱 닦아내고 잭 케루악이 내민 손을 덥석 잡았다.  악수를 하고 나서도 한동안 그의 손을 놓지 못했다.

“네, 제가 잭 케루악입니다.  하하하.”

     

잭은 카페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마자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에 걸치고 상반신을 뒤로 젖혀 앉더니 왜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운 겁니까?”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마주 앉은 남자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물론 술 한잔 준다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죽고 나서 딱 세 시간이 주어진다는 걸 나도 요새 알았어요. 그 세 시간이란 게  커피 한잔을 마시고  그동안 쌓였던 것들을 풀어내기에 충분할 거라고 판단한  신의 배려라는 것도 말이오.  그렇지만 그 세 시간 동안  나를 만나고 싶다던 사람은 당신까지 딱 스물 두 명이었습니다.  그중 세 명은 제 가족들이었고  네 명은 친구들이었지요.  그 나머지는 독자들이었습니다만  한국인이 나를 선택한 건  두 번째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난 아주 감명받은 상태요.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물론 기쁜 일이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이런 만남이 있을 때마다  술을 한잔쯤은 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갈 거라 생각한 적이 없었소. 매번  닥터 페퍼로 시작해서 위스키로 끝내는 하루를 살았었지요.("죽어서 천국에 갈 거라 생각하지 마. 닥터 페퍼로 시작해서 위스키로 끝내!" - 잭 케루악 '길 위에서')   죽은 후에는 술을 더 이상 마시지는 않았지만 가끔 생각날 때가 있기는 하더군.  그래,  나에게 할 말이란 게 뭡니까?”

남자는 잭 케루악에게 해야 할 대답을 고민하는 듯 한동안 생각에 빠져 있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의 책을  좋아하게 된 건  군에 가기 직전에 대학을 휴학하고 혼자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였습니다.”

, 그래요?”

,  선생님은 뉴욕에서 멕시코로 미국 대륙을 횡단하셨지만 저 같은 경우엔 서울을 혼자서 걸어보기로 했었지요.   저라는 사람은 서울에서 태어나  내내 서울에서만 살고 자란 서울 촌놈이니까 말입니다.   다니던 대학에 휴학계를 내고  입대할 때까지 약 일주일 정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입대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입대를 막상 앞두고 있으려니 머릿속이 참 복잡하기도 했고  반면에 텅 비어버린 것도 같았어요.  사귀던 여자 친구와  사소한 일 때문에 헤어진 지 몇 달 안되었을 때였고   원하던 전공이 아닌 소위 취업이 더 쉽다는 전공을 선택했던 학교 생활은  상상 이상으로 지루했습니다.  모든 게 엉망이었죠.  학교를 그만둘까 매일 고민하던 차에  입대를 하는 게 어떨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잭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손을 턱에 괴고  상대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희 집은 서울시 홍은동에 있는 꽤 커다란 빌라였습니다.  5층 건물이었지만  엘리베이터가 있는,  50평 정도의 빌라였지요.  지금도 부모님은 그곳에서 살고 계십니다만 저는 직업을 구하자마자 독립했습니다.  그때는 아직 대학에 다니던 때라 부모님과 살고 있었지.  문제는 그곳에서 어릴 때부터 자란 탓에 졸업한 학교도 그쪽이었고  주말이면 다니던 성당도 그곳이었어요.  홍은동을 벗어나면 저라는 사람은 갈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라면  한 번쯤 살던 곳을 벗어나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 지는 게 정상입니다.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부딪혀 보고 싶어 질 테니 말입니다.  저도 뉴저지라는  시골 동네에서 자랐고 대학도  뉴욕에 있는 콜럼비아에서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알고 있는 것도  경험했던 것도 지나치게 제한되어 있었던 겁니다.  저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궁금해지더군요.  마구 마구 자라고 싶다, 세상 모든 지식과 진리를 흡수해버리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끓어올랐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하여 나는 해가 져버린 미국의 어느 밤 낡고 망가진 강둑에 앉아 뉴저지 위로 펼쳐진 넓디넓은 하늘을 보고 있자면 육지가 갑자기 믿기 힘들 만큼 크게 부풀어 태평양 연안까지 이어지고 모든 길이 펼쳐지고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것을 느꼈던 겁니다.(리하여 나는 해가 져버린 미국의 어느 밤 낡고 망가진 강둑에 앉아 뉴저지 위로 펼쳐진 넓디넓은 하늘을 보고 있자면 육지가 갑자기 믿기 힘들 만큼 크게 부풀어 태평양 연안까지 이어지고 모든 길이 펼쳐지고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것을 느꼈다-잭 케루악, 길 위에서)”

     

내가 그들의 테이블 위에 맥주 두 잔과 작은 과자들을 내려놓은 것은 그때였다.  그들의 대화를 잠깐이라도 방해할까 봐 조심하느라 발소리도 죽여가며 걸어온 탓에 두 사람은 내가 그들 가까이까지 다가온 것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테이블 위에  시원한 맥주가 놓인 후 잭은 처음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주 목말랐던 사람처럼 냉기 서린 맥주잔을 한 손으로 집어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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