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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Apr 28. 2019

번아웃 이후

재충전은 가능한 걸까

"너 말이야, 작가 맞아?"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왜?  아닌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내 눈이 세모꼴로 뾰족해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아닌 것 같아.  내가 보기에는."

그는 언제나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눈이 세모가 아니라 별이 되어도 할 말은 꿋꿋하게 하고야 마는 그다.

"왜 아닌 것 같은데?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아님,  작가라고 스스로를 부를 만큼 잘 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예민해진 내가 그의 논리를 받아친다.  그는 맑은 눈 그대로  나를 응시한다.

그 맑은 눈빛에 반했던 게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을 툭툭 집어내는 능력이 좋았던 것도.

대책 없이 직설적인 말을 해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빙긋 웃는 모습에 가슴이 뛰었던 것도.


그렇지만 오늘은 아니다.



며칠 전부터 나는 예민해져 있었다.  쓰던 소설이 잘 안 풀려서  컴퓨터 씨와 소원해졌고  그 스트레스로  입맛이 없더니 온 몸이 쑤셔왔다.  몸살과 소화불량같이 안 좋은 아이들과 부쩍 친해지고 말았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라  더더욱  그의 질문은 반갑지 않았다.  솔직히 기분이 나쁘다.   마치 작가가 되고 싶은,  더 나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내 존재 의미가 부정당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네가 작가라면,  물론 나는 작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말이야.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해야 하는 게 아닐까?   글을 쓰는 동안 삶의 의미를 느끼고 즐겁고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밤을 새워도 모르고 옆에서 말려도 계속하고 싶은 거  아닐까 싶어서.  만약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글을 쓰지?  너에게는 글을 써야 할 의무가 없어.  네가 선택한 직업이니까.  네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하는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


그는 그런 사람이다.   힘든 회사 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책을 읽거나 자전거를 타며 해소하는,  매일 자신의 행복을 재충전하는 사람.    그에 비해 나는 무조건 달리는 편이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시작하면 멈출 줄을 모르다 보니  쓰러지면 다시 채워질 때까지 오래 걸린다.  특히 요즘은 더  그랬다.  의욕도 없고  어떤 일에도 느낌이 없었다.  그는 그런 나를 가끔 놀리기도 하고  다독여 주기도 했다.   오늘도  그의 말은 옳다.  나는 요즘 행복하지 않았다.  심지어  퇴사를 했고  글만 쓰고 있음에도.


"글 쓸 때 행복하지 않다면  작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오늘 인스타에서 발견한 이 영상을 바라보며 그의 말이 떠올랐다.  영상 속 춤추는 사람들은  춤추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춤출 때 들리는 음악과  자신의 움직임,  심지어 자신이 이 순간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을  행복해하는 걸 나도 느낄 수가 있다.    마치 종교의식이라도 하듯 경건해 보이는 모습.  내 얼굴에도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열정과 행복은 더 진한 곳에서 옅은 곳으로 번져간다.  텅 비어있는 나에게도.   한참 보고 있으면 나도 그들 사이에서 함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저렇게 행복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너무 힘들 때 글을 쓰면 행복해졌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글을 써도 행복해지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일까,  지쳐버린 탓일까.  재능이 없었던 것일까.   


"오늘은 좀 쉬었어?"

그가 묻는다.  몇 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  지쳤다면서도  그의 목소리는 참 밝다.


"자전거를 타러 나갈때는 굉장히 기분도 좋고 들뜨거든. 그런데 힘든 코스를 달릴때는 내가 미쳤지, 일요일 오후에 집에서 티브이나 볼걸 왜 나와서 이 고생을 사서 하고 있을까 싶어져.  결국 완주해 내고 돌아올때는 뿌듯하지. 세상을 다 얻은것 같고."
"글 쓰는 일도 그래."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한 것 만은 아니다.  과정이 힘들어도 따라올 희열을 느끼기 위해 견뎌내는 것 뿐.
"잘 지냈어? 오늘도."

"응."

"힘들 때는 멈추고 쉬어. 쉬다 보면 잘 써질 때가 올 거야.  걱정하지 말고.  너는 작가잖아."


쉰다고 재충전할 수 있을까,  정말 잘 써질 때가 오기는 할 것인지.   생각이 또 많아지려 한다.   아니야, 생각을 멈추고  이 영상을 한 번 더 봐야겠다.  생각은 딱 멈추고  춤만 추거나 글만 쓰거나.  

다시 내가 채워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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