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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Jan 17. 2018

환상통, 幻想痛

편린 04

환상통幻想痛 / 김신용(1945-)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나무도 환상통을 앓는 것일까? 
몸의 수족들 중 어느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듯한, 그 상처에서 끊임없이 통증이 배어 나오는 그 환상통,
살을 꼬집으면 멍이 들 듯 아픈데도, 갑자기 없어져버린 듯 한 날 
한때, 
지게는 내 등에 접골된 
뼈였다 
목질木質의 단단한 이질감으로, 내 몸의 일부가 된 등뼈. 
언젠가 
그 지게를 부수어버렸을 때,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돌로 내리치고 뒤돌아섰을 때 
내 등은, 
텅 빈 공터처럼 변해 있었다 
그 공터에서는 쉬임 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그런 상실감일까? 새가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떨리는 것은? 
허리 굽은 할머니가 재활용 폐품을 담은 리어카를 끌고 골목길 끝으로 사라진다 
발자국은 없고, 바퀴 자국만 선명한 골목길이 흔들린다 
사는 일이, 저렇게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라면 얼마나 가벼울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창밖, 
몸에 붙어 있는 것은 분명 팔과 다리이고, 또 그것은 분명 몸에 붙어 있는데 
사라져 버린 듯한 그 상처에서, 끝없이 통증이 스며 나오는 것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


마음을 두드리는 시를 읽었다.  환상통이란, 의학용어로는  "phantom pain"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헛통증, 또는 환상으로  느끼는 통증이라고  할 수 있다. 팔이나  다리가  절단된 환자들이  많이 겪는  이 통증은  '있다가 없어져 버린  신체 한 부분을  마치 있는 것처럼  느끼는,  단지 느끼는 정도가 아닌  극단적  고통으로  느끼는  증세를 말한다.

헛통증은 여러 형태로 느낄 수 있다: 헛팔다리 통증: 실제 부위가 없으나 있는 것처럼 느끼는 증상.
움직임의 환상 (다리가 움직이는 느낌) 촉감, 온도, 압박, 가려움의 느낌, 등등.

언젠가  이십 대  청년이  교통사고로  양쪽 다리를  다 절단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나를 볼 때마다
"이불이  무겁게  다리를 짓누르고 있으니  이불을 좀 치워달라." 고  조심스럽게 부탁하고는 했었다.   이불을  들춰보면  물론  다리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그의 다리 부분을  덮고 있는 이불을  치워주면  그는 "아  시원하다.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까지 숙여가며  인사하곤 했다.

그의  인사에  가슴이  뜨끈한  고통을  느끼곤 했었다.   비슷한  아픔이  이 시에서 느껴지는 것은   아마  시의 제목 탓일지도  모르겠다.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  세상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자신에게만  없을 때 ;   말도 안 되는  상실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시인에게 있어  '지게'란 어떤 의미였을까?   

'한때, 
지게는 내 등에 접골된 
뼈였다 '

는 부분을  미루어 볼 때  시인에게 있어  지게란  '살아있음'  혹은 '살아가는 이유' 가 아니었을까?   농부에게  지게가  그런 것이었다면  시인에게는  시어들이,  소설가에게는  문장들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게를 파괴했다'는  말은  시인에게서 '시 짓는' 일을 뺏은 것과 같다.   해야만 하는,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빼앗기거나  금지당했다는  의미다.   '수족을 잘라낸'과  거의 비슷하면 비슷했지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다.    언젠가  독자님 한 분께서  '글쟁이는 천형이랍니다.'  하신 일이 있다.  '글 쓰는 일이  쉽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글쟁이는 글을 써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라고  나중에  말씀해 주셨다.    한때  자신의 일부분이었던  '지게'를  파괴해 버린  이후  몰려들었을  공허감과  상실감을  시인은  '환상통'으로 표현했다.  그렇게 텅 비어버린  삶을    새가  떠난 순간 흔들리는  빈 가지로  비유한 것도 얄궂다.   새가 떠난 순간  빈 가지의 '짧은 흔들림'으로  '새'라는  생명체의 부재를 보여준다.   나에게는  '수족이 잘리는 듯'  '죽을 것처럼 공허해진'  커다란 상실이  우주 한가운데서 보면  잔가지 흔들림으로 밖에 보이지 않음을  잡아낸 것이  이 시의 백미다.

아프게  힘들 때,  상실감으로  괴로울 때,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은 분명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그 힘이 나오게 하는 것은,  말없이 나를  지켜봐 주고 믿어주는 사람들 덕분일지도 모른다.  비록 최악의 상황일지라도 한결같이 나를 염려해 주고 함께 아파해주고,  비록 나는 포기할지라도 끝까지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 바로 그들의 사랑과 믿음 덕분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이제 감사해야 할 일이다. 언제나  그곳에  있을 거라 믿었던  당신의 팔과 다리가 사실은 고마운 존재라는 걸  깨달아야 하듯이......

너무나 익숙해서, 너무나 당연한 듯 여겨서, 그 존재마저 잊고 있었던 것들에 진심 감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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