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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Jan 18. 2018

도서관에 가다

편린 05

나는  도서관에  자주 간다.  가까운 곳에  구립 도서관이 있어서  거의 매일 그곳에  간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도 가는데  그렇다고 매일 가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시간에 가는 것도 아니다.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를 때도 있고  기분 내킬 때는  점심 먹고도 간다.  저녁에  갈 때도 있다.   문득  읽고 싶은 책이 떠오를 때  거실 건너  아버지의  서재에 스며드는 것처럼   아무 때나  내키는 대로  가는 곳이다.

윈도쇼핑을  싫어한다.   쇼핑하게 되면  가기 전에  꼭 사야  할 것들을  미리 정해두고  꼭 가야 할 곳만 정해서  그 물건만 사 오는 습관이 있다.   아무 계획 없이  가서  눈에 띄는  것을  참지 못하고  사와 버리는 곳은 서점 밖에 없다.   길에서 시간 버리는 것,  쇼핑하며  시간 쓰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 습관 때문인지   도서관에  가기 전에도  그날 읽고 싶은 책을 미리 정한다.   제목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늘은 어떤 종류의 책을 읽어야겠다  생각하고 간다.   도서관에  가서도  1층 열람실에만  간다.   컴퓨터에서  도서 목록을 조회하고  그  위치를 파악한다.   그렇게 찾은 책 세권 정도를  읽는다.   세 권에서 네 권 정도를  읽느라 면  보통 두세 시간 정도  도서관에서 머무른다.   

책을  한 번은  통독하고  읽고 싶은 부분만 다시 읽는다.   기억하고 싶은 곳은  적어온다.

오늘은  점심 먹고  도서관에  갔다.   문득  '하루키' 소설을 읽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어제부터  '하루키 잡문집'에 있던  '굴튀김'에  대한 부분을  다시 읽고 싶어 졌다.   하루키 책을  몇 권 가지고 있지만  다 미국에  놓아두고 왔다.   이곳에는  짐이 많아질까 봐  애써 책을 사지 않으려 한다.  덕분에  집에는 하루키 책이  없다.   점심을 집에서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도착한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가득이다.  열람실 책상마다 사람들이 앉아있다.   운 좋게 한자리를 차지했다.    언제나처럼  컴퓨터에 '하루키'를  입력한다.  
 '아하,  하루키가  이렇게도 많은 책을 썼구나! '   
많은 책 중에  세 권을 골랐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무라카미 하루키,  나쓰미 소세키 다시 읽기'
'하루키 레시피'

위치에  적힌 대로  책을 찾아본다.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이  있어야 할 곳에 없다.   그러고 보니  직원에게 문의하라는 문구가 있었다.   바로 곁에서  작업용 장갑을 낀  청년을 발견했다.  열심히 책을 정리하는 모습이  누가 봐도  도서관 직원이다.

"저,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찾는데  이 책이 없네요."
내 말에  청년은  정리하던  책을  책장에 그대로 놓아둔 후  
"그 책은 지하실에 있어요.  다른 곳에 가지 마시고  여기서 2분만 기다려 주시면  가져다 드릴게요."
대답한다.   

서툰 말투,  눈을 마주치지 않는  이 청년은  심하지 않지만  아마도 자폐증이 있는 이인 듯하다.    그런 경우 그의 '다른 곳에 가지 마시고'  나  '2분만  기다려 주시면' 은  다른 사람의  말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말 그대로  '다른 곳에 가지 마시고'와 '2분만'의 의미인 것이다.    말을 마치고  청년이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후  나도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다.   그가  거의 정확히 2 분을 지키느라  숨을 헐떡이며  뛰어오는 것이  보일 때까지.    그의 손에는 '하루키 잡문집'이  들려 있었다.
"다른 책은  여기  밑 부분에  깔려 있어요."
그는  숨을 다 추스르기도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  나쓰메 소세키  다시 읽기' 책을  찾기 위해  열람실 바닥에 엎드렸다.   책장 가장 밑 부분에 꽂힌 책을  찾아주느라.

"책이 어디에 있는지 다 기억하고 있어요?"
내가  묻자 그는
"조금 기억하고 있어요."
하고  대답한다.    
자폐증 환자들은  매우 순수하다.   말 한마디에  담긴 의미는  그 말 그대로로 이해한다.   비꼬아하는 말,  돌려하는 말을  모른다.   청년은  순수한  얼굴로  아까처럼 책을  정리한다.   장갑 낀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다.   자신의  일에  끝없는 자부심을 가진 표정이다.   
'아,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감탄한다. 지극한 순수함은 아름다움과 통한다.  백색 종이는  수많은 것들을  적을 수 있다.  색에 물들지 않고  그 자체가 순백이다.   그 깨끗함에 눈이 부신다.


하루키 잡문집은  옛날에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하루키와 소세키를  다시 읽게 하는 두 번째 책은  그들의  내면을 다시 읽게 한다.   책들은  읽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도서관에서  제 자리를 지킨다.   읽는 사람의  생각들이  아무리 더러워도  책 자체를  더럽힐 수 없다.    

책을 다 읽고  나오는데  아까 청년이  다른 직원에게 불려 가  혼나는 것을  보았다.   업무 하나를 빠뜨린 것인지  청년은  몇 번이나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인다.    청년은  업무 하나를  다시 배울 것이다.   직원의  짜증스러운  질책에  의기소침하지 않기를,   자존감을 잃지 말기를,  순 백의 세상에서  지금처럼 살아가기를 바란다.   책들 사이에서,  책을 찾아주며  지금처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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