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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Jan 19. 2018

술 한잔

편린 06



얼마 전에  눈 수술을 했다.   수술이 끝나고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는


"적어도 한 달동안은 절대로  술이나 담배를 하면 안됩니다." 라고 주의를 주셨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을뿐 더러 술도 거의 하지 않는다.  아니 술을 마실줄 모른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소주처럼 쓴 술은 마시지 않는다. 그래도  먹기에 부담없이 달달한  술은 조금 마신다. 이를테면, 막걸리나 와인 같은 것들이다. 그런 내가  주의를 받은 그 날 부터  술 한잔 생각이  간절해 졌다.   아직까지 술에 취하도록 마셔본 일도 없다.  딱히 좋아하는 술도 없다.  그런데도  저녁마다  술 한잔에 맛난 안주 곁들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인 동생에게 그런 말을 했더니

"하지 말라니까  더 해보고 싶은 거 아닐까?"

했다.  잠시 생각하던 동생은

"언니,  혼자 술마시지 마.  그거 습관 들면  엄청 나쁜거야.  위험한 거야.  알지?"

했다.   그런건가?  하지 말라니까  더 하고 싶은 건가?  생각했다.     

눈 수술하고는 운동도 하지 말라고 했다.  책도  읽으면 안되고  글도 쓰면 안된다고 했다.   읽지 못하는 책이어서 더 아쉽다.  누가 옆에서 읽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유혹이 와도 그냥 참는 수밖에 없다.  모든 금기가 풀릴 때 까지.

 

대신에 아침에는  평소에 보지 않던  티브이를 틀어놓았다.   하루 종일 티브이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잠들면  티브이 소리 그대로 꿈을 꾼다.   막장 드라마 주인공이  꿈에 쳐들어 올때도 있다.  누가 이렇게 싸우는거지?  하다 깨어난다.    메이크업을  어떻게  하면 예쁘다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어떻게 하는건지  보고 싶어도  잘 안보여 못보았다.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썬글라스를 끼고  집 앞 카페에 가서  테이크아웃 커피 한잔을  사온다.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쌍수 하셨어요?"

하고 물어본다.   대답을  망설이는 나에게  작게 소근댄다.

"얼마 줬어요?"

 

집으로  돌아오다  새로 생긴  편의점에 들렀다.   막걸리 한 병을 샀다.  그냥  사고 싶어서 샀다. 마시면 안되는 거라  더 사고 싶었는지 모른다.  막걸리와 커피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몇 년전에  환자 한 분이  계셨다.   젊은  남성 환자는 한국인이었다.   응급실에서  한국어 통역 필요하다는 호출을  받고 뛰어갔었다.   

"응급 수술 해야 한다고  알려줘.  간단한 심장 수술이지만  절대로  담배 피우면 안된다고.  절대로.  지금 부터  일주일동안은.   꼭 알려줘야해."

담당 의사의  말을  통역해서  알려줬지만  환자는 시큰둥했다.

"수술을 왜 한답니까?  저는 멀쩡하다구요."

"그런데요.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막혀서  수술 안하면  위험해요.  지금 담배 피우시는 것도 굉장히 위험하고요.  절대 담배는 한 모금도 피우면 안된다고 꼭 알려 달래요."

통역만 해주고  내 환자를 보러 뛰어갔다.   무척 바쁜 날이었다.

 

열흘쯤 후였나  싶다.  복도에서 만난 응급실 간호사가 나를 보자 마자  그 환자 이야기를 꺼냈다.


"수술하다  테이블 데스 ( 환자가 수술 도중  사망) 났어요.  세상에.  간단한 수술이라  별 걱정 안했는데..   수술 직전에  환자가 담배 피우는 걸 본 사람이 있대요."


"담배 피우면 안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었는데..."


안타까운 내 말에  간호사는 눈물을 훔쳤다.


"글쎄  아무도 없는데서 혼자 살더래요.  시신 거둬 갈 사람이 없어서  지금도 친척을 찾고 있대요.  장례식도 아직 못했대.   서른 두살 밖에 안 먹었다는데  너무 가엾지?"

 


그때는  환자가  가엾어서  눈물이 났었다.   혼자 살았다는 환자의  짐이  겨우  상자 두 박스 더라는 것에,  친척을 찾지 못해서 장례식도 못하고 차디찬 시신 보관소에 있다는 말에.   생각지도 못했던 죽음을 맞았을 젊은 남자의 삶에 대해, 무엇보다  마지막 순간을 참지 못하고 담배를 피웠다는  환자의 선택이  안타까워서였다.   그 후로도 한동안은  혹시 내 통역이  잘못 되었던 것이 아닐까?  좀 더 강경하게 말했어야 했던 게 아닐까  두고 두고 후회로 마음에 남아있었다.


 


눈 수술하고 나서  한 달을 잘 견뎠다.  의사 선생님께서  

"오늘 부터는 술 마셔도  됩니다."

하실때까지  말이다.   집에  돌아와  간단한  안주를 만들었다.  냉장고에 모셔 둔 막걸리를 꺼내서,  막걸리 한잔에  안주를  차려놓았다.   그동안 잘 참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런데  막걸리 맛이 생각보다  달지 않다.  시원하지도 않고, 씁쓸하기만 하다.   행복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결국 막걸리병 뚜껑을  닫고  안주만 먹기로 했다.  대신에  마테차를 끓여 마셨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퉁퉁 부었다.   큰일 났다며  전화한 나에게  동생이,

"혼자 마시는 막걸리는 반드시 후회하지." 라고 핀잔을 준다.

그래도 막걸리는 좋은 술이다.  유산균도 많고  여성들 피부에도 좋다.  단지 그날, 나에게 막걸리는  맛이 없었을 뿐이다.   술을 마음껏 마셔도 되는 날.  모든 금기가  풀렸던 날이다.   유혹은  더이상  매혹적이지 않고  술 한잔 생각도 말끔히 사라졌다.  대신  퉁퉁 부은 눈을  들여다 보며  후회만 남았다.  비록 후회는 남아도 막걸리는 분명 좋은 술이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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